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i Whale Nov 07. 2024

회사 그만둔다고 시댁에 말해 말어?

우선 보류. 비밀유지!

어제 일하는 중에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못받고 저녁 6시 반에 퇴근을 하면서  콜백을 했다.


"어머님 전화하셨어요? 일하느라 못받았어요."

"돈벌러 갔냐?"

"네. 돈 벌었습니다.(하하)"

"애는 어쩌고?"

"애요? 학원 갔죠."

"애 밥은 어떡하고?"

"퇴근해서 같이 먹으려고요."


? 나에게 미취학 아동이 자녀로 있었던가?  애는 현재 발이 275cm 이제 청소년으로 진입한 호랭이같은 그녀의 손자라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걔는 아기가 아니고, 내가  때문에 일을  하고 싶지 않고, 지금처럼 일을 해온지 벌써 6년이 되어 갑니다.' 라고 사실을 정정하지 않았다. 또한, 오늘은 유독 '돈벌러 갔냐' 말까지 걸렸다.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그냥 넘어가면 되고, 결국 할머니가 손자 생각해서 하는 말들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 하지만 묘하게 하나 하나가 걸리는 날이었다.  


참고로 요새 나는 호저다. 고슴도치 아니고 호저.

누구든 건드려봐! 다 찔러 버릴거니까!

이성을 가진 사회성 있는 호저라 아무 때나 창같은 가시를 쏘진 않지만 가시가 서고 있다. 시어머니의 생각 속에 며느리는 우선순위 저 뒤에 있기에 저녁에 전화를 할 때는 대부분 저 순서이다. 손자가 혹시 밤에 혼자 있는 것은 아닌지, 거기에 더해 밥도 못먹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언제나 우선이다. 그 손자가 다행히 나의 피붙이라 내 자식 챙겨주시는데 감사하지라고 생각하며 넘긴다. 물론 나는 한 번도 그 피붙이를 내팽개쳐 둔 적이 없다. 내가 8시 전에 들어가면 도착하자마자 밥을 해서 함께 먹고 그 이후에 퇴근할 때면 출근 전에 도시락을 싸놓고 밥만 데워 먹도록 챙겨놓는다. 나는 강박적으로 아들과 남편의 밥을 챙기는 주방의 여왕이 아닌가! 하지만 어머니는 수년간 매번 손자의 안위와 끼니를 일순위로 걱정하신다.  '하하 어머니 지금이 6.25 때인가요? 2024년도에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나불거리려는 입을 막았다. 돈이라도 벌러 갔으니 망정이지 밥 때 애를 혼자 두고 놀러라도 갔다면 어머니는 뭐라고 하실까?


문제는 말입니다. 제가 곧 실직을 앞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창 아들과 전쟁을 치루던 2년 전. '네가 그렇게 공부가 싫다면 내가 하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초저녁 시간에 아들을 피해 주 2회 영어 학원을 다녔다. 아들이 4학년이었고, 수업이 6시니 7시 반이면 집에 왔다. 그 당시 친정엄마가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애를 혼자 두고 뭘하러 다니냐며 화를 냈다. 영어학원에 간다고 하니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갈 것도 아닌데 왜 학원에 다니냐고 미친거냐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너무 흥분해 있어 지금 버스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바로 다시 전화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고, 내가 학원에 가는 시간이 아주 늦지 않으며, 대학입시나 일이 아니어도 나는 학원에 갈 수 있고, 자녀 양육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거기까지.' 라고 엄마라도 선을 넘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라는 말을 3번정도 하니 엄마가 네 아들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며 씩씩거리다 전화를 뚝 끊었다. 이미 내가 다 알아서 하고 친정 시댁 누구의 도움도 받은적이 없는데 엄마가 까먹었나보다. 나는 오랜만에 영어로 새로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꽤 신선하고 즐거웠는데 졸지에 친모에게까지 '미친년'이 되었다.  


나를 나아주고 내 성장을 가장 바라던 엄마조차 내가 돈 버는 일이 아닌 다른 일로 내 삶을 즐기는 것에 있어 보수적이었다. 매 순간은 아니지만, 그 어떤 일도 생존의 활동이 아니면 자녀 양육보다 앞서는 것은 금기인 것이다. 엄마인 나 역시 양육에 우선순위가 있지만, 나의 엄마 세대에 비하면 훨씬 스스로에게 관대하다.


내 엄마조차 그럴진데, 시어머니는 오죽하겠는가?

엄마 한테는 욕을 먹어도 할 말을 다한다. 그래도 엄마와는 서로에게 미움이 생겨도 결국 얼음처럼 곧 녹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얼음이 아니라 돌이 되어 얹힐 것이 분명하다. 시시비비를 가릴 수도 있지만 나이든 어머니랑 굳이 그래서 뭐하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어머님에게 맞춰 줄 것도 아니라서 나는 때때로 솔직하지 않았다. 가끔은 일을 안 할 때도 그냥 일한다고 말할 때도 있고 내 가치와 다른 생각에도 장단을 맞춰드린다. 굳이 '전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하며 밥상머리를 100분 토론의 장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일한다고 하면 다른 긴 설명과 설득은 필요 없으니 대충 피해가는 것도 나쁘지않다고 생각했다. 아직 폐업도 안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이라는 방패가 사라지면 나는 내 삶의 당위성을 어떻게 변호하지?


창작과 휴식, 재교육을 위한 시간의 가치를 낮게 보는 타인으로 부터 나는 어떻게 내 시간을 존중받나? 다시 하나 하나 내 가치를 존중받기 위해 싸워야 할까 아니면 가능한 잽싸게 피해야 할까?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일하는 딸, 아내, 엄마, 며느리로 살아온 나는 일하지 않는 한국의 엄마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절실히는 겪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아들(놈)도 내가 글쓰는 중이니 '내 방'에서 나가 달라고 하면 일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하냐며 나의 염장을 지른다. 이익창출과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일이 아니고, 엄마 여자의 자아실현과 성장을 위한 일은 아들들의 밥보다 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 할 것인가? 설득은 될까? 또 설득한들 그 불편한 인정을 받아서 뭐하겠는가?    


우선 부부회의를 통해 실직 여부는 비밀로 하기로 잠정합의했다. 이러다 아무렇지 않게 내 입에서 툭 나올 확률이 제일 높긴하다. 또 아무도 내가 일을 하든 말든 신경 안 쓸 확률이 다음으로 높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