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힘
세기의 아나키스트, 비아냥의 끝판왕, 원숭이에서 진화한 야생 멧돼지!
나의 아들, 그놈이 돌아왔다.
어제 신영복 선생님의 나의 동양고전독법 리뷰(https://brunch.co.kr/@highnoon2022/370)에서 '독락(獨樂) 보다 동락(同樂)'이라며 관계의 중요성을 고상하게 쓰던 나를 반성한다. 이래서 지식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가슴에서 발로 가는 실천은 더 어렵다고 한 것이구나. 동락은 개뿔. 나는 철저히 독락 하고 싶다.
지난 금요일에 언니네 가족이 엄마가 있는 주문진으로 간다고 하여 이때다 하고 아들을 함께 보냈다. 아들과 동갑인 조카가 있어 둘이 잘 놀기 때문에 아들도 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해야 할 공부를 다 해야 갈 수 있다고 엄포를 놨지만, 지금의 자유가 그보다 나에게 더 절실했다. 아들이 안 가면 내가 숙소를 잡아 나갈 판이었기에 난 그 어느 때 보다 아들이 숙제를 다 하길 응원했다. 물론 숙제는 완료하지 못했지만, 갔다 와서 하기로 꼭~꼭~ 약속하고 아들이 떠났다.
한 달은 가 있어도 되는데, 아들이 월요일에 돌아왔다. 3박 4일이 그렇게 빠른 시간이었던가 내 눈을 의심했다. 요가를 갔다 가뿐한 마음으로 집에 오니 현관문 앞에 가방과 패딩, 양파링 빈봉지, 다 마신 사이다 페트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오전에 청소 다 해놓고 갔는데... 어머니가 오셨는데도 조용하기에 친히 들어가 보니 침대에서 쿨쿨 주무신다. 분명 놀다 왔는데... 갔다 오면 숙제하기로 꼭꼭 건 새끼손가락이 야속하다. 솔직히 기대도 안 했다. 검도에 가라고 하니 오늘 같은 날 무슨 검도냐며 되려 소리를 지른다. 오늘 같은 날이 어떤 날인가? 그냥 평범한 월요일, 아들이 3박 4일 빤빤히 놀다가 아침에 이모부 차를 타고 집에 온 날인데 왜 검도에 가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내가 아들의 검도 회비를 내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자유에 대한 지출이었다. 나 역시 3박 4일 만끽한 자유가 무색하게 바로 또 자유롭고 싶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빵으로 잠을 깨워 어르고 달래 검도를 보냈다. 그래도 가면 땡큐~~
자... 난 배운 사람이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
나는 왜 분노했는가?
상황: 중학교 올라가는 아들에게 양치를 하라고 했으나 계속 안 해서 밤 11시에 결국 입에 칫솔을 꽂아 놓음. 자기 입에 억지로 치약을 묻혔다고 1시간이 훌쩍 지난 12시에 갑자기 고함을 지르기 시작함. 자던 남편이 화들짝 깨어 화를 냄. 난 계속 자는 척함.
감정: 분노 70% 걱정 30% 통쾌함 70%
사고: 양치는 정말 중요한 습관이다.
이를 안 닦으면 분명 썩을 것이고 결국 그 비용을 내가 지불해야 하고 병원도 같이 가야 한다. (전제: 아들의 문제상황은 내 책임이다.)
아들의 감정보다 이빨을 닦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 (전제: 감정이 상하는 것은 복구가 더 쉬울 것이다.)
10년 넘게 말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이 괘씸하다. (전제: 아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사고수정: 아들의 문제는 아들의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다. 충치가 생기면 아들 돈으로 치료하면 된다.
충치보다 아들과의 관계, 감정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수정되기 어려운 문제는 아래와 같다.
양치가(공부가, 등교시간을 지키는 것이, 핸드폰 사용절제가) 정말 중요한 일인가?
아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하는가?
사실 위의 두 문제가 갈등의 핵심이다.
나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밥상을 차리면 적어도 제때 와서 먹는 것이 염치고, 학원비를 내주면 숙제를 하는 것이 염치다. 공부를 안 해도 학교는 늦지 않게 가는 것이 염치고, 5시간씩 약속을 어기고 유튜브를 몰래 봤으면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염치다. 아들과 나는 그 염치의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나는 그 마지노선을 타협하고 싶지 않다. 아들이 내 말을 다 들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건 좀? 하는 것이 그와 맞지 않는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준이 더욱 벌어진다는 것이다.
아들에게는 양치가 공부가 등교시간이 핸드폰 사용을 절제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중요하더라도 충동이나 쾌락을 매 순간 조절할 만큼 크진 않다. 나는 내가 옳기 때문에, 내가 책임자이기 때문에 그가 내 말을 듣길 기대하는 면이 크지만, 아들 역시 내가 그의 말을 듣길 바랄 것이다.
그와의 관계를 포기하고 내 통제력을 늘리는 것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또는 덜 불행하게 할까?
또는 내 통제력을 늘리는 것이 결국 그를 더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움을 줄까?
아! 안타깝지만 나는 답을 안다.
내 통제력을 늘려 당장은 공부를 시키고 학교를 제때 보내고 충치를 잠시 예방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적이 될 것이다. 내가 그의 삶의 책임과 결정권을 가져오므로써 그가 독립심과 책임감을 갖는데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다. 그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불행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나는 그를 통제할 힘이 없다. 내가 청소년 아들의 닫힌 입을 열고 이를 닦아 줄 수 없듯, 두개골을 열어 지식을 넣어줄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는 내 생각이 전제부터 잘못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와의 관계를 망치지 않도록 애써볼 수 있고 좋은 습관을 가지게 할 수는 없어도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나는 그를 바꿀 수 없지만, 내 기분을 바꿀 수 있고 나를 덜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1. 나와 타인에게 무례하거나 불편을 끼치지 않는 한 입을 다문다.
2. 미리 해주려 하지 말고 그가 부탁하면 해 줄 수 있는 일은 가능한 도와준다.
3. 비아냥거리지 말고 친절하게 말한다.
4. 화나면 싸우지 말고 쥐도 새도 모르게 복수한다.
최고의 정신치료는 '복수'하는 거예요./ 하버드청담심리센터 최명기
https://www.youtube.com/shorts/V_xxgml7j4Y
아들아! 너도 독립해서 복수하렴. 너가 성인이 되면 엄마 보다 훨씬 강자란다! 기다리고 있을게!
화요일의 감사
- 아들의 모든 계좌가 내 손안에 있음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