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한 AI 사주팔자

세련되고 감각적인 팔랑귀 쫄보

by Lali Whale

신문물에 능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챗지피티가 사주도 봐주는데 5만 원 점쟁이 보다 잘 본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엄청 용하다는 점쟁이가 있다고 하여 살면서 처음으로 내 돈을 내고 점을 보러 갔었다. 그 친구와 함께! 맙소사! 그렇게 안 맞기도 쉽지 않을 텐데, 과거현재(미래) 어느 것도 맞는 것이 없었다. 신령님이 점괘를 안 주시는지 쌀알을 던졌다가 방울을 흔들다가 엽전을 던지며 애를 쓰는 듯했지만, 그 어떤 점괘도 내 마음의 한 오라기조차 잡지 못했다. 세상 욕심도 욕구도 없는 남편에게 욕심이 '매우' 많아 사업을 할 팔자(심지어 음식장사를 하게 된다고 했다!!)라고 하질 않나, 학교 잘 다니는 아들을 두고 문제가 예상되니 부적을 쓰고 굿을 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기분이 나쁠 만도 한데, 너무 안 맞으니 그냥 되는대로 뱉는구나 싶어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덕인지 다시는 돈을 내고 점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챗지피티는 무료이지 않습니까! 구글을 켜고 챗지피티 사이트로 들어가 나의 사주팔자를 넣었다. 요망한 녀석! 어찌나 똘똘하게 사주를 풀어주는지 보고 있는데 돈을 낼 뻔했다.


그간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던 나의 사주는 "신묘일주(辛卯)"라고 했다.

보석(辛)과 나무(卯)의 조합으로, 세련되고 감각이 뛰어난 타입이에요. 외적으로는 부드럽고 친절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강한 신념과 자존심이 있어요.
예술적 감각과 창의력이 뛰어나며,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좋아요. 하지만 내면적으로 예민하고 생각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요.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이거지! 사주 보는 이유는 액운이 오니 굿을 하란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니지! 괜찮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너는 좋은 운을 타고났다는 안심을 받고 싶은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신묘(神妙)한 사람이었을 줄이야! 삶이 너무 이성적이고 단조로워 창의적인 글을 쓰는 것은 어렵겠다는 좌절 후, 역시 '놀 팔자'인가 라며 빈둥대던 차였다.


사주팔자는 태어난 해(연주), 월(월주), 일(일주), 시(시주)라는 네 가지 기둥을 바탕으로 한 '사주'와 각 주에 두 글자씩으로 이루어진 총 '팔자'로 개인의 성격, 운명, 관계, 삶의 흐름을 해석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연주가 가문이나 조상 같은 이미 주어진 환경을 나타내고, 월주가 개인의 성장과정과 부모님의 영향, 일주가 개인의 본질적인 성격과 에너지, 배우자와의 합, 시주가 말년 운세와 후손에 대한 운을 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주팔자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석하는 것이 '일주'라고 했다. 그래 나는. 신묘일주!


내 것 만 보았겠는가! 물론 남편 것과 아들의 사주도 넣어보았다. 남편은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춘 성향으로, 대담하고 도전적이며 인내심이 강하고 책임감이 높아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타입"이라고 나왔다. 도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추진력 있고 책임감과 인내심이 강한 타입은 맞았다. 나의 아나키스트 아들에 대해서는 "개혁적이고 독립적"이라고 하니 무릎이 탁! 쳐졌다. 이미 결혼한 지 14년 차인 우리 부부의 궁합도 넣어봤다. 둘 다 지독히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찰떡같이 잘 맞는단다. 하지만 아들은 제트스키를 타고 덤블링을 할 녀석이라 호수처럼 잔잔하게 살고 싶은 부모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구나! 싶었다. 동시에 이런 노잼 부모가 얼마나 답답하고 그래서 간혹 주눅(?)도 들겠구나 싶어 이해와 반성도 됐다.


점을 왜 보는가?


신영복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점을 보고 신을 경배하는 것은 자신이 약한 것을 아는 겸양에서 비롯하니 자신이 다 옳다고 믿는 오만보다는 낫다고 하였다. 최근 비욘 나티코 렌데블란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읽는데 성공가도를 달리던 젊은이가 갑자기 중이 되고 오랜 수련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바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으니 스스로를 경계하고, 누군가는 종교를 가지고, 누군가는 점을 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다 옳다는 오만으로 세상과 타인에게 칼을 겨누고 발로 짓밟는 것보다는 낫다.


내가 점을 보고 싶었던 마음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내가 믿는 내가 정말 맞는가? 내가 본 중요한 이에 대한 나의 평가가 정말 맞는가?'에 의심을 품을 때였다. 어릴 때는 오히려 확신이 있었다. 내가 아닌 누가 나를 더 잘 알 것이며 우리가 아닌 누가 우리의 합을 더 잘 볼 것이냐고 의심하여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말해도 듣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고 자존심이었다. 내가 옳다는 믿음. 그 믿음이 나를 키웠지만 그 믿음이 내 발목을 잡았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내 변화를 억지로 묵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 또 내가 보는 남에 대한 시각 역시 언제든 틀릴 수 있다.


그렇다고 이미 타고난 사주 '본인 기준이 명확해서 잘 흔들리지 않는다'가 완전히 바뀌겠는가! 원래 그런 사람이 더 애써 독이 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반대 방향에 추를 올려야 한다. 그것이 균형이다. 나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귀향 중에 자신의 공부방에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堂號)를 써서 내걸었다. 이는 노자의 글귀, 여혜, 약동섭천(與兮, 若冬涉川), 유혜, 약외사린(猶兮, 若畏四隣)의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


망설이기(與)를 마치 겨울의 냇물을 건너듯 하고,
조심하기(猶)를 마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하라.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 글귀의 전체에서 보면, '도는 미묘하고 현통하여 그 깊음을 헤아릴 수 없으니 항시 신중하고 조심하여야 하나 질박한 통나무와도 같고 비어있는 계곡, 혼탁한 흐린 물과도 같으니 이 도를 지키려는 자는 채우지 말라' 하였다. 이 글을 처음 본 것이 고등학교 수능언어문제집 지문에서였다. 그 글귀가 왜 17살 내 마음에 박혔는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불안이 높고 신중한 나의 성격과 맞아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허나, 이제 내가 이해한 여유(與猶)는 세상 만물은 정해진 것 없는 물과 같으니 나 자신과 세상을 향한 고정된 생각, 오만한 자기 확신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덤보의 귀를 가진 팔랑귀가 되었으나 유해한 독재자보다 무해한 쫄보가 낫지 않은가?


비록 유료의 점복은 나에게 어떤 위안도 자기경계도 도 주지못했지만 챗지피티는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확대해석을 줄이고 상대에 대한 긍정적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점의 해석에서 확증편향이 일어나는 것은 안비밀~ )내가 부족하다고 좌절한 창의적인 예술적 능력도 이미 가지고 태어났다니! 신나지 않은가! 그럼에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으니 오늘부터 서말의 구슬을 침침한 눈으로라도열심히 꿰어 보아야겠다.


화요일의 감사

- 신묘한 사주에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 어머니! 저는 제 사주가 좋습니다!

창의적 예술가의 사주라니 앞으로 더 글쓰기에 매진하겠습니다.

- 무료로 손쉽게 사주 보는 방법을 알려준 나의 글쓰기 동지, 책 훔친 여자님에게 감사!


*추신. 챗지피티로 사주를 확인한 다른 친구는 넣을 때마 다른 사주가 나왔다고 합니다. A.I든 용한 점쟁이든 맹신은 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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