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순 by 양귀자

나는 선장이 되는 배에 올랐다

by Lali Whale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낯선 삶의 모순


(소설의 결말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난 인생의 복잡한 핑계가 싫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사랑하면서 떠난다였다. 참. 개똥 같은 말이다. 사랑하면 만나고 싫으면 헤어지고 힘들면 쉬면 된다. 내 삶의 원리는 참으로 명쾌하고 그렇게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았다. 소전제 안에서 충돌은 있었을지언정 대전제는 명확했기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삶의 모순에 오래 빠지지 않았다.


양귀자의 <모순>은 25살의 안진진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모와 엄마의 삶을 바라보며 연인인 나영규와 김장우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며 삶의 모순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이렇게 써놓으니 참 없어 보이나, 꽤 정확한 요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장통에서 양말을 팔며 알코올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과 사고뭉치 건달 아들을 건사하던 엄마가 아닌, 부잣집 사모님으로 엄친아인 자식들과 가정밖에 모르는 남편을 둔 엄마의 쌍둥이 자매가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모순은 꽤나 충격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극 중 화자인 안진진보다 어린 나이였다.

그때, 1장을 읽으며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라는 외침이 나를 설레게 했다. 무엇에 내 인생을 걸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할까 봐 동분서주했다. 그때는 '무엇'보다는 '건다'에 더 매달려 나를 소비했다.

20살에 떠난 영국 워킹홀리데이에서 나는 아카시아라는 샌드위치가게에서 일했는데, 거기에는 잡도둑이 참 많았다. 한 번은 사장님이 샌드위치를 가지고 달아나던 도둑을 잡으라고 했는데 나는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고 냅다 달리는 바람에 도둑을 놓치고 말았다. 맨손으로 돌아온 나에게 "도둑이 널 보고 웃었어."라며 사장이 비웃었다. 그것이 20대를 아우르는 내 모습이었다.


우사인 볼트처럼 달렸으나 종종 트랙을 벗어났고 이 산이 나의 고지인 줄 알고 올라가면 내 깃발은 저 산에 꽂혀있었다.


새파랗게 설익은 청춘의 나는 안진진의 외침에 동참하고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채 온전히 나를 걸었다.


(독서모임 한 멤버 분이 자신은 인생에 온 생애를 건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그 의문이 참 정확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작가는 그것을 몰랐기에-또는 미지수로 두고자 모호하게 인생에 생애를 다 건다는 동어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2025년에 다시 <모순>을 읽었다. 무려 20년의 삶이 쏜살같이 흐른 뒤였다.


역시 1장은 멋졌다. 뭘 걸지 모르는 청춘의 근거 없는 패기가 귀여웠다.

하지만, 결말에서 그 패기의 끝이 고작 두 명의 남자 중에 한 명을 고르는 것이라니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선택하지 못한 남편을 그 딸은 적어도 선택은 할 수 있다는 진화는 너무 옹색했다. 고작 그것이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린" 선택이었단 말인가? 차라리 자신의 겨우 2마리 있는 어장을 과감히 정리하고 넓은 바다로 나아갔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나는 안타까워 무릎을 쳤다. (아마도 <모순 2>가 나온다면 안진진의 삶은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MBC)이나 이혼숙려캠프(JTBC)의 한가운데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했다.)


하지만 이 실망은 아마도 이제 나는 삶이 향해야 하는 진짜 방향을 알았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넓은 바다로의 탐험'은 나에게는 옳고 그녀에게는 틀릴 수도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거만하게 찍으려는 나의 마침표에 꼬리를 달고 쉼표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 쉼표와 문장 사이에서 잠시 멈추고, 도둑이 누군지도 모르고 깃발이 어디에 꽂혔는지도 모르고 달리기만 하던 우를 피해야한다.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내가 내 인생의 선장이라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배의 조타석을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어설픈 선택을 하여 좌초되던 순간조차, 나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모든 책임을 졌으며 배의 키를 놓아본 적이 없다. 더불어 내 것이 아닌 책임은 욕을 먹어도 지지않았다. 그러기 위해 타인의 배에 함부로 발을 딛지 않았다. 방향을 정하는 기준은 일관성이 있었고, 마음이 가지 않는 길에 키를 돌리지 않았다. 예상컨대, 그 사실만큼은 미래에도 변할 것 같지 않다.

그것이 나의 대전제이고 존재방식이니 말이다.


* 표지의 그림은 교보문고에서 빌려왔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먼저 온 미래 by 장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