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가난 그러나 일 인분은 아닌
시절인연 같던 기형도의 시집을 보내며.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 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 걱정"은 기형도 시인의 유작인 <입 속의 검은 잎>의 제일 마지막 장에 있는 시이다. 1990년대 중반 내가 고등학교 무렵, 새벽밤을 지새우며 듣던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는 클로징으로 시를 한편씩 읊어 주었다. 그때 종종 들었던 기형도의 시는 내 삶에서 가장 감성적이던 시기를 장악했었다. 우울했고 선량했고 날카롭고 섬세했던 그의 감성에 나는 푹 빠졌었다.
최근 독서모임에서 읽던 책을 랜덤 선물로 주는 연말이벤트를 했다. 나는 기형도의 시집과 그의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을 함께 포장했다. 내가 사랑했던 기형도의 시집은 다행히 두 권 이어 한 권을 가뿐한 마음으로 선물하고 산문집은 이미 다 읽었기에 아낌없이 넣었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그의 시가 그의 소설이 한 번 더 살아난다면 그것은 기쁜 일이라 그의 선하고 쓸쓸한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길 바랐는데 마침한 분이 내 선물을 집어주셔서 참 좋았다.
포장을 하기 전에 그의 소설을 한 번 더 읽고 내가 좋아했던 시에도 띠를 붙여 드렸다. 그중에 첫 번째 시가 "엄마 걱정"이었다. 나는 그 시를 참 좋아했다. 1960년대 생 인 시인이 경험한 극한의 가난과 이별, 죽음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비통함은 없었지만 내 유년과의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1979년 생인 나에게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애국가가 울릴 때까지 티브이를 봐도 엄마가 오지 않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 그녀의 발소리도 시든 배춧잎 같아 한 번도 원망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깝고 측은했으며 미안했다.
지금의 세대가 기형도의 시를 어떻게 이해할지 또는 공감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중학생인 내 아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은 가난과 죽음, 외로움과 부채감의 정서가 지금도 통용이 될까?
최근 읽은 안온의 <일인칭 가난: 그러나 일 인분은 아닌> 은 20년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임대주택에 살며 술에 빠져있던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던 작가의 현실적인 삶이 녹아있는 책이다. 결국 살기 위해 도망 나온 모녀를 보란 듯이, 딸의 방에서 번갯불을 피워 자살한 아버지와 글을 쓰고 싶었지만 살기 위해 학원강사로 밤낮없이 일했던 작가의 경험이 들어있었다. 기형도의 슬픔과는 다른, 어쩌면 분노에 가까운 그 정서가 안타까웠다.
각각 다른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쓰인 20대 젊은이들의 가난과 상실, 외로움의 기록이 다른 것 같으면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일인칭 가난>의 '우리를 아는 건 우리뿐이야'라는 챕터에서 어린 시절 함께 가난했던 임대아파트의 친구와의 비통한 경험을 해학적으로 비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안에서 공감은 그 경험을 실제 겪은 이들만이 온전히 느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과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내면의 기록을 타인에게 이해받고자 책으로 냈다.
완벽한 이해라는 것은 없지만, 적어도 나의 세계 안에서 공감이 나를 함께 쓸쓸하고 슬프고 그러면서 따뜻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