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라는 폭력

엘레나는 알고 있다.

by Lali Whale

* 책 내용의 중요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분들은 완독 후 읽어주세요! 스포 있음 주의!!!


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네이로. 2023)를 읽었다. 이 책은 죽은 딸의 사인을 밝히기 위한 엄마의 고군분투를 다루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여성의 낙태, 자살, 장애인 처우와 같은 무겁고 예민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성당 종탑에 목을 매고 딸, 리타가 죽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성당 종탑 위의 피뢰침이 무서워 비 오는 날에는 절대로 성당에 가지 않던 딸이었다.
자살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엄마, 엘레나는 파킨슨병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일할 때 내담자들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어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우울의 증상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태어났으니 사는 거라고, 삶의 의미 따윈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하지 않았다.

삶의 의미라는 것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삶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나는 불치병에 걸리거나 치매에 걸리면 의식이 있을 때 누구보다 빨리 존엄사를 택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지구의 종말이 와도 좀비가 출몰해도 살려고 버둥거리지 않고 더러운 꼴 보기 전에 죽겠다고 말이다.

어쩌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게 아니라 죽을 이유가 없어서 사는 것 같다.


영화 <전우치>에서 악당 화담이 어린 여자애를 죽이기 전에 말한다. 더 살아봐야 별것 없다고.

물론 그 의미 없는 삶을 주야장천 제멋대로 살려고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빌런이 할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사는 게 재미없을 때 문득문득 그 말이 생각난다.


책에서는 파킨슨병에 걸린 엘레나가 얼마나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사는지, 그 엄마를 돌보는 딸 리타의 삶이 얼마나 괴롭고 희망이 없는지 길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리타가 죽기 이틀 전, 엘레나의 담당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에게는 일반적인 파킨슨 병에 플러스로 더 많은 증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리타가 소리친다.

늘 침을 질질 흘리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잖아요. 옷에 오줌을 싸서 아무리 씻어도 옷에 밴 오줌 냄새가 가시지 않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잖아요. 자기 마음대로 한 걸음도 못 걷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잖아요...... 하루 종일 바닥만 봐야 하는 데다 죄진 사람처럼 머리를 푹 숙인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잖아요... 뭐가 더 있다고요?......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리에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거잖아요. 혼자서는 발톱도 못 깎고, 운동화 끈도 매지 못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거잖아요...... 지금 엄마는 음식을 입에 넣어봤자 제대로 삼키지도 못해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다고요...... 혼자서는 팬티를 올릴 수도 없는 데다, 대변을 눈 다음에 닦지도 못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잖아요. (p.228~232)

울부짖는 리타에게 의사는 말한다. 어머니가 살고자 하는 강한 마음을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가지고 딸인 네가 이번에는 엄마가 되어 지금의 어머니를 돌보라고 말이다.


그 이틀 후, 리타는 주검이 되어 발견된다.


엘레나는 리타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몸을 대신해 줄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 사람은 바로 과거 리타가 구해준 이사벨이다. 리타는 낙태 수술을 받으려는 이사벨을 설득해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엘레나는 이사벨이 리타에게 생명의 빚이 있고 그 빚을 리타의 죽음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청산하려 했다.

하지만 이사벨은 자신은 매일 리타를 죽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사벨은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의 강간으로 생긴 아이를 지우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낙태를 하러 갔다. 하지만 그런 이사벨을 붙잡아 다시 남편의 감옥으로 강제로 끌고 간 것이 리타였다고 말한다. 타인의 충격과 상심 앞에 편견으로 일관했던 리타는 결국 자신의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무너졌다. 그리고 과거 자신처럼 리타에게 옳은 말씀을 하는 의사에게 분노한다.


결과적으로 이사벨은 리타가 죽게된 원인을 찾아주었다. 엘레나는 리타가 죽음보다 자신을 더 두려워했다고 고백한다.


나는 리타와 이사벨을 보며 살아내라는 말이 참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끔은 극한 고통이 없는 때에도 왜 살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내가 이상하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 것 같다. 분명한 이유라도 있으면 당장에 스위스행 비행기표를 살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의 이유는 없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우울의 증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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