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 이론

평생 끊기지 않는 원웨이 연결

by Lali Whale

이 이론의 시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남편과 강아지 산책을 하며 이루어졌다. 전두엽이 도통 발달할 생각이 없는 중학생 아들과의 갈등으로 하루하루가 살얼음 판에 있으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나와 달리 태평한 남편에게 짜증이 났다. 솔직히 부럽다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이놈의 탯줄은 내가 죽어야 끊기는겨. 아니 죽어서도 안 끊길지도. 그러니 탯줄은 네가 아니라 내가 끊었어야 해. 뱃속에 아이를 만들어 키운 나와 이미 만들어진 생명을 키운 너는 유사한 강도로 연결될 수가 없어. 그러니 탯줄이야 말로 엄마인 내가 끊었어야 해!"


나보다 아들과 자신의 삶을 잘 분리하는 남편을 보며, 엄마인 내가 그렇지 못한 것은 탯줄이 끊기지 않아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며 나는 바보가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합리화 하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탯줄이론"이었다.


엄마와 자식은 끊으려해도 끊을 수 없는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나의 "탯줄이론"이다.
by Pixabay

엄마와 자식 사이에 질기고 질긴 태초의 끈이 도무지 끊어지지 않는 것! 동일시가 이루어지고 운명공동체로 느끼는 것. 그것이 나의 탯줄 이론의 핵심이다! 출산과 함께 물리적인 탯줄을 끊었음에도 엄마는 여전히 자식과의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내 것을 주고 끝없이 키운다. 그리고 그 탯줄은 오직 한 방향이다. 자식은 언제든 끊고 가고 자신의 것을 주지 않는다. 뱃속에서 태아가 자신의 영양분을 엄마에게 되돌려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자식놈은 탯줄을 통해 엄마에게 노폐물만 보낸다! 이러니 커서도 엄마에게 똥만 싸질러 놓는 것이다!)


과학적 증거는 없다. 모성이 Nature vs. Nuture 냐에 대한 질문과 유사할 수는 있겠다. 이제까지 모성은 본성이 아닌 사회적 학습이라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살아보니 도무지 그렇지가 않았다. 갈수록 모성은 본투비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심지어 본성이 아니라도 자식을 낳으면 그 끈이 평생 붙어 있다고 느껴지기에 이르렀다. 모성애라고 하지 않는 것은, '연결'이라는 것이 반드시 '사랑'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연결되어 있다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옳은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와 아들처럼 지긋지긋하게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고 있는 것이다.


모두 그런 것도 아니고 예외도 있다. 수많은 아빠들과 입양가정 어머님들의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어딘가에 김은숙의 <더 글로리> 속 문동은 엄마 같은 사람도 분명 있다. 누군가는 더 굵고 누군가는 더 얇을 수 있으나, 많은 엄마들이 탯줄을 끊지 못하고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야 말로 이 진득진득한 탯줄이론이 박살나길 바란다. 엄마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다양하고 유동적이며 언제든 끊고 또 원하면 붙일 수 있는 유연한 '연결'이 되길 바란다. 불행히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나의 탯줄이론의 대표 샘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굉장히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임에도 아들과의 관계에서는 종종 기괴한 괴물로 변하고 만다. 화를 참지 못하고, 불안은 잦은 거짓 경보를 울리며, 나의 삶과 그의 삶을 떨어뜨리지 못해 절절맨다.


나는 아들이 공부를 잘하고 성실하며 자율적이길 바라는 기대 중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가졌던 평생의 기대이기도 한데 아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아들이 연락 없이 늦으면 상식적으로 오차범위를 넘지 않는 시간임에도 과도한 불안으로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아들의 미래를 나의 미래와 같이 보고 그가 불행하거나 힘들면 나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들을 낳은 순간부터 젠더 이슈에 공평할 수가 없다. 자꾸만 남성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가끔은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목숨을 걸고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나는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모든 밝은 빛은 다 꺼져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 이외에 누구도 나를 불행하게 하지 못한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감정폭발이 오직 아들에게만 발현된다.

아들의 약점이 나의 약점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문장들이 나의 탯줄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젠장!

이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도저히 끊을 수 없다면 이 지긋지긋한 탯줄을 가능한 얇게 가능한 긴 고무줄처럼 만들어보고 싶다.


이것이 나의 2026년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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