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늑대의 삶

by Lali Whale

가끔 2000년 이전의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보면 야만의 시대였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체벌하며 교육이라고 포장하고, 집에서는 가정폭력을 무능한 아빠의 유일한 탈출구인 양 묘사하는 것을 보며 저런 때도 있었다며 혀를 찬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 봉고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초등학교 여학생을 불러 세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바바리 맨이 흔하던 시대였다. 학교에서 주먹질을 하면 모두가 선생님 손에 귀를 잡혀 교무실에 끌려가서 엎드려뻗쳐 자세로 엉덩이를 맞던 시대에 학생 인권이나 학교폭력위원회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시대가 바로, 지금은 까마득히 느껴지는, 내가 20년을 살아온 삶이었다.


야만의 시대에 인간은 느슨한 목줄을 매고 야생의 동물처럼 활개를 쳤다.


1999년 데이빗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삶에 공허함을 느끼는 회사원 잭이 거친 동물 같은 매력을 가진 타일러 더든을 만나며 본능이 이끄는 삶을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잭과 타일러가 목줄에 매인 개와 야생 늑대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결국 하나로 통일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영화를 보고 내가 쓴 글이 있었다.

스크린샷 2025-12-21 오후 9.16.06.png 파이트클럽(데이빗 핀쳐 감독. 1999)
나는 이 영화를 야간에 극장에서 봤다...... 폭력과 파괴는 인간의 '본능'이다. 내 앞에서 깝죽 되는 저 아이를 패 주고 싶은 것은 나의 폭력 본능이다. 하지만 나는 패지 않는다. 사회적 조건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저 새끼 잘못 팼다가 이라도 부서지면 돈이 얼마야? 감방이라도 가면? 아니면 나보다 약해 보이는 애를 때린 다는 것은 비겁한 일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본능은 이미 수그러들어 있고 상대는 떠난 후다. 그리고 쌓이는 스트레스. 그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파이트 클럽의 폭력은 그러한 사회적 제약이 전제되지 않는다. 오직 약육강식이다. 약하면 다른 이가 배려해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알아서 힘을 키워야 한다. 동물의 세계다. 약하면 맞고 엎어지면 된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은 바로 쾌감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사회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본능적 욕구의 통쾌한 표출. 짜릿했다!
파이트클럽(1999)

스무 살의 비쩍 마른 여자애는 자신이 맞을 걱정은 안 하고 폭력을 써서 감방에 갈 걱정을 하는 철부지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 영화는 "끝내준다"라고 적었다.


누구보다 단단히 목줄을 잡았던 내 가슴속에는 파괴와 폭력의 본능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한 동안 복싱을 배우겠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현실적 여건 앞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최근에도 주짓수를 배우고 싶다고 도장을 알아봤지만 허리 디스크와 발가락 염증으로 결국 식물 같은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좀처럼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맞서 싸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내가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어찌나 철저히 바운더리를 쳐놨는지, 내 선을 밟고 넘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어릴 때처럼 투쟁할 일이 없었다.


나의 노력과 성장으로 이룬 것도 있으나 사회적 변화도 영향을 줬다.


우리나라의 과거를 기억하는 나는, 더 나아가 격변했던 역사의 산증인 나의 부모님 세대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 1950년 6.25 전쟁, 1960년 4.19 혁명, 1979년 10.26 사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겪으며 폭력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회는 고통스럽지만 점진적으로 민주화되어 갔다.

그 이후로도 한국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야만성을 벗어났다.

1987년에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었고 2005년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1994년 1월이 되어서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정폭력처벌법은 1997년도에 제정되어 1998년 7월이 되어서야 시행되었다. 시행이 된 후로도 오랫동안 부부싸움은 집안일로 치부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가정폭력이 불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공포되었고 더는 학교에서 합법적 체벌은 불가하게 되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더 이상 '사랑의 매'가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모든 법들은 꾸준히 시대에 맞게 개정되어 갔고, 사회는 과거보다 더 통제되고 더 안전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서로의 바운더리를 지키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불평등과 착취가 존재하며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중산층에 고등교육까지 받은 '운 좋은 나'는 한국이 충분히 안전하고 민주적이라고 느꼈다. 세상에 이런 태평성대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니 야만성을 버리고 더욱 세련되어져야했다.


나는 완전히 늑대의 삶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처음엔 뿌듯하기보다 슬펐다.

나는 평생 참고 통제하며 살아야 하고 이제 그것이 익숙해져 바라는 마음조차 없어진 것 같았다. 더 이상은 파괴와 폭력, 순수한 욕망을 분출하며 느낄 수 있는 거친 쾌락은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확히는 과거에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때는 몸속 어딘가에 말랑 말랑하게 살아있다고 느꼈다면 지금은 퇴화한 꼬리뼈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문득문득 다 빠져 버렸다고 생각한 송곳니가 삐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줄곧 약자 쪽이었던 나는 내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에게 달려들기만 하면 되었다. '운 좋은 나'는 그 침범을 덜 받았기에 안전을 지킬 수 있었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가 되고 사회 경제적인 수준이 올라가면서 나는 전보다 힘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살 집이 있었고 직업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은 내 몸집을 키웠고, 커진 몸집은 송곳니를 다시 솟게 했다.


강남에 빌딩을 가진 것도 아니고, 대단한 권력을 가진 정치가나 유명인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많은 경우 여전히 약자였고 통제 하는 것보다 통제 당하는 일이 많았지만, 어릴 때 보다 힘이 커진 것은 분명했다. 내 소유의 돈은 곧 힘이었다. 경제적 여유에서 가능했던 지식의 습득 역시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세금을 내 온 자국민으로서 외국인에 비해 더 큰 권리를 가졌다. 투표권이 생겨 내가 추구하는 신념을 가진 대통령과 정치인을 뽑을 힘이 생겼고 내가 산 주식의 주주로서 배당을 받고 의결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과거 나를 보호해주던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중요한 순간을 결정할 힘이 생겼다. 동시에 부모로서 자식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고 그 의무는 통제의 권리를 주었다. 왜 부모가 자식에게 거대한 존재인지, 직접 경험해보니 알 수 있었다.


그 힘의 영향력은 다양했고 하나의 욕구나 감정으로 규정하기 어려웠다. 분노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때도 있으며 통제와 권력, 쾌락의 욕망이기도 하다. 힘이라는 것은 내 분노에 부채질을 했고 실제 하지 않은 적을 막기 위해 으르렁 거리게 했다.


누군가 내 것을 빼앗지 않아도 위험하지 않아도 송곳니를 드러낼 수 있었다.

내 안의 늑대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힘이 있다면 평화로운 세상도 언제든 야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힘을 소원하지 않는다.


야만의 시대에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자는 오직 힘있는 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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