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라는 송곳니

by Lali Whale

최근 방영중인 프로보노(tvN. 2025)라는 드라마에서 대형 로펌의 대표인 오규장은 말한다.

프로보노(tvN. 2025)


아빠는 권력이 취미란다.

골프나 여행 같은 취미는 서민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힘 있는 사람들의 취미는 권력을 가지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니 생각만 해도 도파민이 솟구친다. 권력은, 힘에 대한 갈구는 취미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것은 본능이고 욕망이다. 특정 집단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유전적 특질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모든 이가 권력을 취사선택하고 권력을 통해 쾌감을 느낄 수 없다.


야만의 시대에 쾌감을 얻는 이는 오직 힘을 가진 자다. 힘이 있다면 평화로운 세상도 언제든 야생으로 만들 수 있다.


불과 1년 전에 우리나라는 하루아침에 계엄을 맞지 않았던가!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유례없이 지속되던 평화는 세계 곳곳에서 깨지고 벌어졌다. 권력이 있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계엄이 유지되었다면 오늘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오늘과 같을 수도 있다. 수십년 전의 한국 처럼 통금이 생기고 억울한 죽음 앞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할 수도 있다. 계엄이 실패한 것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발달해서인지 전 대통령의 힘이 충분히 강하지 못해서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힘에 대한 욕망에 목줄이 필요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웹툰원작의 드라마 송곳에서 착하지 않은 약자를 보고 당황하는 이수인(지현우 역)에게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은 노무사 구고신(안내상 역)이 말한다.

(노동운동은)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
송곳 (JTBC. 2015)

그것이 인간의 본질인 것이다.

그저 시시하다는 것.

가난하고 약하다고 선한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 악함을 드러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약했던 그들이 힘을 가졌을 때, 주저 없이 권력의 송곳니가 드러난다.


그러니 시시한 인간 대부분은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이도 부자도 약한 이도 강한 이도 말이다. 어린아이조차 화가 나면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더 쉽게 장난감으로 내리친다. 힘이 있으면 자신보다 힘이 약한 이에게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 그게 본능이다.

그럴 수 없는 것뿐이지, 그렇지 않게 태어난 것이 아니다.

권력이 취미일 만큼 넉넉히 가져본 적은 없지만, 나도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인식할 때가 있다.

그것은 모든 순간 귀신같이,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는 강자였고,

피고용인이었던 나는 고용주 앞에서 약자였지만 그 돈을 쓸 때 강자가 되었다.

성적을 주는 선생님 앞에서 학생이었던 나는 약자였지만, 강사가 되었을 때 학생들에게는 강자가 되었다.

미국에서 외국인, 특히 동양인으로 살던 나는 약자였지만, 한국에서 자국민으로 살 때 나는 강자가 되었다.

자식이었던 때 나는 약자였지만, 부모가 되었을 때 나는 자식에게 강자가 되었다.

힘은 상대적이고 나는 모든 순간 힘의 저울에서 좌우를 배회했다.


법과 윤리, 양심의 목줄을 내 목에서 풀지 않았지만,

힘을 가졌던 모든 순간 그 지위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힘이 생기면 드러나는 송곳니가 나는 두렵다.
나는 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대단한 힘이 없어서 악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최근 아들의 학교 문제로 한 달 넘게 괴로웠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삶이 망하길 바랐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난 누군가를 죽일 힘도 복수할 힘도 없다. 나는 나약하고 속이 좁고 소심한 '시시한 사람'일뿐이다. 잘해야 산책을 하면서 남편에게 그 사람을 욕하고 마음으로 미워하고 저주를 퍼부었을 뿐이다.


이런 나에게 힘이 있었다면...

무섭다.


가끔은 힘이 없었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덜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을 하면 안심이 된다. 내가 조선시대 연산군처럼 화가 났을 때,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어 미워하는 모든 사람을 칼로 베어 버렸다면, 난 분명 후회했을 것이다. 내가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처럼 권력이 없어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나는 목줄에 매인 개 같고

야생의 늑대를 꿈꿨지만,

실상은 개도 늑대도 아니었다.


시시해서 다행인, 겨우 내 목줄을 스스로 잡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 정도도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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