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생존법 - 서현
서현이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한 반에 학생들이 무려 70명이 넘게 있었다. 학 학년에 10반이 넘게 있었고 그 많은 학생을 감당하지 못했던 학교는 오전반과 오후반을 나눠서 수업을 할 정도였다. 서현처럼 썩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눈에 띄게 예쁘지도 않은, 그렇다고 누구나 알만큼 부잣집 딸도 아닌 아이가 학교는 고사하고 반에서 눈에 띄일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서현은 누군가의 눈에 띄고 싶어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눈총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리한 상황에서 충분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좀처럼 목소리를 내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서현은 남자애들이 끊어 놓은 고무줄을 붙잡고 울기나 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현을 만만하게 본 동원은 그녀와 짝이 된 이후로 줄곧 그녀에게 짓꿋게 굴었다. 그날도 그랬다. 동원은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서현을 약 올렸다. 다시 긋고 다시 그은 금이 서현의 책 한 권을 바로 놓지 못할 정도로 밀고 들어왔다. 서현의 지우개가 조금 금을 넘으면 홀랑 가져가 버렸고, 그녀의 팔꿈치가 조금이라도 금을 넘으면 깜짝 놀랄 만큼 세게 그녀의 팔꿈치를 내리쳤다. 선생님은 칠판에 판서를 하고 계셨고 교실은 조용했다. 서현은 끽끽 웃음을 참으며 다시 책상에 금을 긋는 짝의 행태를 고분고분 받아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꽤 많이 그에게 자신의 팔꿈치를 내어주었다.
"악"
서현의 송곳으로 찌르는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그녀의 철로 된 필통이 시멘트로 된 교실 바닥으로 와장창 쏟아져내렸다. 반듯하게 깎아 놓은 연필들은 뾰족했던 흑심이 분질러진 채 칠판 앞까지 떼구루루 굴러갔다.
"엉엉엉... 흐어억 흐억..."
서현은 팔꿈치를 부여잡고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교실 안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선생님이 얼굴을 찌푸리며 서현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김서현 무슨 일이야?"
"흑흑흑"
"말을 해야 알지. 무슨 일이야?"
"동원이가 책상 금 넘어왔다고 계속 때리고 밀었어요."
서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울음을 꾹 삼키며 얘기했다. 동원이 때린 팔을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스럽게 부여잡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짝인 동원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책상에는 자신이 신나게 그어놓은 금이 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뭐야. 쟤가 서현이 필통도 다 부순 거야?"
아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자리 친구들이 서현의 필통과 연필을 주섬주섬 주워 서현의 책상 위에 올려놔주기도 하고, 교실 뒤에서 놓인 휴지를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선생님의 얼굴이 삽시간에 분노로 바뀌더니, 동원이의 귀를 거세게 틀어잡았다.
"넌 따라오고, 서현이는 보건실 다녀와라."
서현이는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보건실로 갔다. 선생님의 체벌이 합법적이었던 국민학교 시절, 서현이의 짝이었던 동원이는 다시는 서현이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국민학교 때 TV에서 미래세계를 보여주는 만화가 있었는데, 기계를 통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할 수 있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했지만, 2023년의 서현은 핸드폰으로 영상통화도 하고 동영상 녹화에 전송까지 하고 있으니 자신은 정말 역사의 산증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학교라는 말도 더는 씌지 않았고, 학생인권이 강화되면서 학급 내 체벌은 불법이 되었고, 가정에서의 체벌이나 벌칙도 가정폭력이 되었다. 이제는 동원처럼 옆 짝꿍의 몸에 손을 대면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렸고, 선생님이 학생의 귀를 당기면 아동폭력으로 고발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서현은 중학생인 아들의 방에 들어가거나 언성이 높아질 순간에는 언제나 핸드폰의 녹음기능을 켜 놓았다. 녹음이 완료되면 바로 서현의 클라우드에 자동 저장 되었다. 이렇게 녹음을 시작한 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사춘기 아들과의 갈등은 이미 수년간 이어져 왔었다. 아들의 여름방학 끄트머리에서 서현과 그녀의 아들은 마치 투견처럼 싸웠다. 시작은 별 일 아니었다. 어느 집에서나 있는 뻔한 얘기였다. 아들은 여름방학 내내 자신의 방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붙들고 살았다. 방은 엉망진창이었고 먹던 과자 부스러기와 음료수 병이 나뒹굴고 다 먹지 않은 아이스크림이 녹아 바닥에 찐득하게 눌어붙어있었다. 아들이 핸드폰을 볼 때면 육아전문가가 나와 부모를 나무라는 예능프로를 보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렇게 3주 간을 잘 참았던 서현이 개학을 3일 앞두고 폭발하고 말았다. 점심때가 다되도록 자고 있던 아들이 화장실에 가려는지 부스스 일어나 나오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마침 오랫동안 닫아놨던 방문이 열리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취가 그 앞을 지나던 서현의 얼굴 위로 폭탄처럼 터졌다.
"방 좀 치우라고! 이게 방이야 돼지우리야!"
그게 시작이었다. 자다가 나오니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엄마에게 중2인 아들이 '네 죄송합니다. 어머니' 할 리가 만무했다. 아들의 반격과 비난이 1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서현에게 집중포화되었고, 방학 동안 사리가 나올 정도로 참았던 서현의 분노가 봇물 터지듯 넘쳐흘렀다. 하지만 이제 서현보다 한 뼘은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는 서현을 억세게 끌어안고 방 밖으로 밀어 버렸다. 서현은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그렇게 덜렁 들려 내동댕이 쳐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들 방의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아들의 버릇없는 태도를 야단쳐야 하는데 서현의 몸이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겁을 먹었다.
그때부터였다. 서현은 아들과 대적하는 모든 순간에 미리미리 핸드폰의 음성녹음을 켜 놓았다. 아들이 피시방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도, 학원 숙제를 쌓아놓고 핸드폰을 할 때도, 입던 옷을 산처럼 켜켜이 쌓아놓았을 때도 서현은 아들의 방문을 노크하기 전에 미리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켜놓았다. 아들이 소리를 지를 때면 이전에는 화가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지금은 속으로 박수를 치는 때도 있었다.
그날도 역시 아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약속한 통금시간을 넘기고도 뻔뻔한 얼굴로 귀에는 서현이 사준 아이팟을 끼고 친구랑 전화를 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서현은 아들이 어떤 포인트에서 이성을 잃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서현은 아들이 통화 중임에도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뻔했다. '왜 늦게 왔니, 방은 왜 안 치우니, 학원 숙제는 왜 안 했니, 넌 핸드폰중독이다.' 아들이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서현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이제까지 레퍼토리를 반복하면 되었다. 아들은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고 이제 곧 있으면 서현을 자신의 방에서 밀어낼 것이다. 서현은 순순히 나가지 않을 것이란 듯이 아들의 침대 위에 앉아 조곤조곤 얘기했다.
"아이씨 나가라고! 진짜."
이제 3분 이내로 아들은 폭발할 것이다. 서현은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조용조용 아들의 결점과 무례함을 비난했다. 아들은 드디어 책상 위에 던져 놓았던 책가방을 바닥에 패댕이 치고는 서현의 팔뚝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서현은 진짜 당황한 척 연기를 했지만, 속으로는 '그럼 그렇지'라는 마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들이 서현을 문밖으로 미는 순간 서현은 아들 방문 옆의 장식장을 잡고 바닥으로 쿵하고 넘어졌다. 분명한 할리우드액션이었지만 평소의 조심스럽고 침착한 서현의 모습을 고려할 때 선뜻 의심하긴 어려웠다. 싸구려 찻잔세트와 오늘 사온 화사한 꽃이 꼽힌 꽃병이 대리석 마룻바닥 위로 와장창 깨어졌다.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유리잔의 파편이 서현의 손바닥과 엉덩이에 찍혀 물이 흔건한 바닥에 빨간 피가 번졌다. 서현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웅크려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미리 설정해 놓은 긴급번호 버튼을 세 번 눌렀다. 아들은 당황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고요하고 처절한 순간은 얼마 못 가 경찰의 등장으로 끝이 났다.
엄마보다 덩치가 큰 아들과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엄마.
엄마의 핸드폰 속에는 아들의 고함소리와 물건을 던지는 소리, 엄마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모두 녹음되어 있었다. 서현은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힘든 척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서현은 엄마지만 약하고 나이 든 여자였다. 적어도 지금은 누가 봐도 그랬다. 난장판이 된 집안에서 서현은 흐느끼며 신고의사가 없음을 호소했다.
"아들이 때렸을 때는 당장은 너무 놀라 긴급버튼을 눌렀지만,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아들이 너무 늦게 와서 걱정돼서 얘기를 좀 하려고 했던 건데... 제가 엄마로서 너무 부족해서..."
서현은 다시 흐느껴 울었다. 감정이 고조되어서 그런지 상황에 깊이 이입되어 눈물이 줄줄 나왔다. 두 명의 남자 경찰관 중 한 명이 아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원래도 말을 조리 있게 하는 녀석이 아닌 것을 엄마인 서현이 모르지 않았다. 아들은 상황 설명도 제대로 못하고 결국은 어떤 훈계를 들었는지 거실로 나와서 서현에게 울며 사과를 했다. 서현은 세상에 둘도 없이 인자한 어머니인척 아들을 끌어안고 토닥여 주었다. 그러곤 아들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며 많이 놀라진 않았는지 물으며 엄마는 괜찮다고 아들을 안심시켰다. 집안은 난리가 나고 살면서 처음으로 경찰까지 집에 들어왔지만, 마무리는 서현의 계획대로 훈훈했다.
서현은 국민학교 때, 깡통 필통 위아래를 연결하여 벌어지지 않게 해주는 철심을 미리 빼놓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용한 수업시간에 필통이 굉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도록, 동원이 때리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의 필통을 팔꿈치로 툭 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