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

이 여자의 생존법 - 금옥

by Lali Whale

올해부터는 결코 잡초를 뽑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금옥은 다시 호미를 들고 집 앞 텃밭으로 나갔다. 지난해 잡초를 뽑다가 허리 디스크가 터져 서울의 병원까지 가서 시술을 받았었다. 그깟 필요도 없는 잡초 따위를 뽑다가 생때같은 4백만 원을 병원비로 썼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졌다. 그나마 서울 사는 자식들이 병원비를 내주었지만 면목이 안 섰다. 그 바람에 한 달 뒤 금옥의 일흔네 번째 생일은 선물 하나 없이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난 뒤로는 잡초를 뽑지 마라, 텃밭은 뭐 하려고 그렇게 하시냐, 길가에 돈이 떨어져도 줍지도 말라는 둥 온갖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차라리 대출을 받더라도 괜히 자식들의 도움을 받았나 해서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전원생활을 하면서 내 앞마당에 본데없이 자라는 잡초를 뽑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번 봄에는 텃밭으로 가는 길에 무성히 자란 풀숲 사이로 겨울잠에서 깨어난 독사 한 마리가 소리도 없이 세모난 대가리를 쑥 빼고 나와 뒤로 자빠질뻔했다. 다시 나타날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잡아야 했지만 이제 금옥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금을 들여 비싼 예초기도 장만했지만 금옥이 짊어지고 풀을 자르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어깨에 메고 두어 번 시도를 해봤지만, 30분만 작업을 해도 어깨와 겨드랑이가 보라색으로 피멍이 들고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파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밉살맞은 자식들이 한 번씩 오면 잔디나 좀 베어줄 생각은 안 하고 전원인데 풀이 좀 있으면 어떠냐며 되려 훈계질이었다.


텃밭에는 보라색과 하얀색 도라지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이것이 잡초 밭인 지 도라지 밭인 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금옥은 남편을 따라 이곳으로 터를 잡았다. 전원생활을 노래 부르던 금옥의 남편은 환갑이 넘어 기어이 서울살이를 접고 시골로 내려왔다. 금옥에게는 손에 흙한 톨 묻히게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들어왔지만, 집이 완공된 후로 금옥의 손이 닿지 않는 일이 없었다. 금옥은 원체 손이 야물었고 어릴 적부터 과수원을 하던 부모님 옆에서 나무나 식용 풀, 약초에 대한 지식도 촘촘히 알고 있었다. 1000평이 넘는 대지에 남편은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이런저런 작물을 곳곳에 심었다.


처음 도라지를 심은 것도 남편이었다. 기관지염을 달고 사는 금옥을 위해 도라지를 직접 키워 반드시 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하지만 도라지 씨앗을 파종하고 서너 해가 지나도록 제대로 된 도라지를 뽑아보지도 못하였다. 첫해는 파종부터 잘못해서 새싹도 잘 나지 않았고, 다음 해에는 싹은 났으나 정작 도라지가 너무 작고 형편없어 먹을 것이 없었다. 세 번째 해가 될 때에는 시중에서 파는 도라지와 비교할 것은 아니었지만, 하얗고 작고 못나게 꼬부라져있을지언정 먹을만한 도라지가 자라 있었다. 성미가 급한 남편은 다른 작물은 잘 안되면 갈아엎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였지만, 유독 도라지만큼은 실패해도 또 심고 또 심기를 반복하였다.


그랬던 남편이 몇 해 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금옥은 눈앞이 캄캄하였다. 남편이 없는 삶을 살아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언제나 골골하던 것은 금옥이었다. 자신이 먼저 죽으면 남편이 혼자 어찌 사나 이곳에 오고부터는 밥 짓는 것부터 간단한 반찬이나 찌개 끓이는 법부터 세탁기 사용법까지 하나하나 아이에게 가르치듯 알려줬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이 먼저 덜컥 세상을 떠나니 금옥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식들은 이곳 집과 땅을 팔고 자신들이 사는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사라고 권하였지만, 금옥은 선뜻 마음이 돌아서지 않았다. 남편이 일궈놓은 꽃과 나무, 블루베리와 아로니아... 남편이 죽기 전에 심었던 작약도 아직 꽃을 피우지 못했고, 몇 해 전 심은 호두나무에 이제야 먹을 만한 호두가 대롱대롱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처음 들어올 때 여러 그루 심어 놓은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이제 제법 자기 밥값을 하여 매해 가을이면 자식들은 물로 지인들에게 인심을 쓰기 좋았다. 무엇보다, 남편이 제일 심혈을 기울였던 도라지밭을 그냥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금옥은 도라지밭에 삐죽삐죽 솟아난 잡초를 호미로 캐서 뽑고 또 뽑았다. 높게 자란 보랏빛의 도라지꽃이 남편의 웃음처럼 화사했다. 이마로 땀이 주룩주룩 흐르니 눈물과 분간이 되지 않았다. 올해는 도라지를 캐면 덕어서 차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남편 제삿날에는 술대신 남편이 좋아하던 도라지차를 올려야지 생각하니 잡초를 뽑던 손아귀에 힘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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