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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Oct 07. 2015

직장 생활의 고통

학교를 졸업하고 나쁘지 않은 직장에 다니기 시작할 때는 희망이 가득하다. 그러나 해가 거듭되고 책무가 무거워지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어려워진다. 난관에 부딪힐수록 생각도 많아지기 시작한다. 사람 관계라고 편하면 좋겠지만 몇몇 사람과는 관계 갈등도 일어난다. 어떤 선배와는 너무 맞지 않아 곤혹스럽다. 집에서 잠자리에 들 때면 무력감이 찾아온다. 때로는 우울하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고통스러운 시기가 찾아온다. 심신이 지치고 감수해야 할 스트레스도 크다. 원치 않지만 눈치껏 하게되는 야근이나 휴일 근무는 언제나 적응이 잘 안 된다. 스스로는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았지만 인내를 발휘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모든 불편함을 '고통'이라 한다. 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가설은 바로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이다.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

열심히 노력해서 잘 된 사람이 감수하는 고통의 총량과 덜 노력해서 잘 안된 사람이 감수하는 고통의 총량은 같다. 그렇지 않다면 상쇄되는 고통만큼 다른 등가가치의 교환이 발생한다.

더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부럽고 자신의 초라한 직장에서 낮은 연봉을 받는 것을 크게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집안 경제적 여건이 둘 다 유사했다면 두 사람이 감수하는 고통의 총질량은 같다는 가정이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긴 시간 공부하고 마음대로 뛰어놀지 못한 고통(불편)을 감수했으므로 잘 되어 더 편안히 살 수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미래에 대한 노력 없이 비교적 편안히 지냈으므로 이후에 좋지 못한 직장에서 더 불편하게 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문제는 어떤 고통을 언제 감수하는가이다. 사회 살아가면서 나이를 먹을수록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현재 삶의 만족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가치에서 손해를 보거나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 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벌을 예로 들어 보자. 학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과 직장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경력이라는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 물론 경력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야근이나 특근 같은 가치를 추가적으로 생산해서 동등한 대우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에는 한 가지 원리가 흐른다. 직장에서 일정 수준의 가치를 얻기 위해 고통 감수 또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 교환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면 직장 생활에서의 고통은 막연히 참아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산을 타는 고통이 없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받아들일 수 있고 나아가서는 즐길 수 있으며 심지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고통이므로 취미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침내 선한 목적의 성취하는 과정상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단련에 가까워 보인다. 고통을 재료로 다시 성과나 인정 같은 가치로 재생산하는 사람은 더 유익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고통이라 표현했지만 자유 시간의 부족, 스트레스, 수면 부족, 만성피로, 멀어지는 친구 관계 등도 직장 생활에 따르는 고통이라 할 수 있다. 극단적 고통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겠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을 건설적이거나 즐길만한 고통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지혜는 무척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는 인내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고통을 찬양하며 고행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통을 회피의 대상에서 승화의 대상으로 바꿀 수 있고 단련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를 거쳐 마침내 어느 정도 조절과 제어가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한다면 직장 생활에서 고통이 제1의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또다시 가족이나 자녀와의 유대 관계를 감안할 경우 어디까지 고통을 감수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로써 밸런스 차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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