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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Jul 14. 2020

코로나가 만든 변화들

감염병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씻을 수 없는 아픔과 변화를 불러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감염병으로부터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도 사소한 잔병치레나 배탈 같은 것이 신기하리만큼 피해간다. 이제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맛집에서 여럿이 모여 긴 시간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는 일이 즐겁지 않게 되었다. 또, 감염병은 남녀 성평등을 더욱 어렵게 한다. 자녀들을 학교나 기관에 보내지 않고 엄마가 돌보게 되면서 여성이 가정에 순전히 종속적인 위치에 놓인다. 이로써 사회적으로 남녀간 사회활동과 참여의 균형이 깨진다. 이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심리학과 마이클 바넘 교수의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모처럼 집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공부하고 노는 방법을 익힌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이유와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이제 불필요하게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 극장이나 도서관 등 낯선 사람들이 밀집한 장소는 부담스럽다. 붐비는 쇼핑몰에 가지 않고도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쇼핑은 더 요긴 해졌다. 택배가 꽤 늦어지는 것을 편안히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 인내도 생겼다. 웃어른께 말씀드릴 때는 마스크를 벗고 또렷또렷 말씀드려야 하는 오래된 예절이 잘못된 관습인 것도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나 인파 속에서 침묵하는 것은 더욱 더 잘 지켜야 할 예절이 되었다.

감염병은 우리의 의식과 생활과 관습을 확연히 바뀌게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안전을 위해서라면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인다.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외출하지 않고 집안에만 머문다. 개인의 자유를 뜻밖에도 쉽게 포기할 줄 알게 되었다. 기업에서는 재택근무가 가속화되고, 가정에서는 여가 문화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년 2월22일에서 25일 사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매일 200명 가량 늘면서 넷플릭스 이용건수가 36% 이상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심각한 감염병은 우리의 역사 조차 바뀌게 한다. 전염병에 의한 역사적 변화 사례를 볼 때, 중세 시대에 흑사병이 대유행하고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희생되면서 신앙의 관점에서 세속, 인본의 관점으로 의식이 전환되는 과정이 있었다. 서구사회에서 과학혁명과 르네상스가 일어나는데 흑사병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경제적으로, 코로나19는 공급 지연과 수요 부진을 동시에 낳았다. 중국에서 제공하는 원자재 공급이 지연되어 글로벌 제조사는 경제적 손실을 겪고 있다. 거리의 식당이나 상점들은 손님이 끊어졌다며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마스크나 위생용품, 배달음식, 신선제품, 간편식 등의 품목에서는 수요가 치솟았지만 그것으로 침체된 경기를 상쇄할 수는 없었다. 2020년 3월, 우리나라는 사상 최초 0%대 금리를 선언하였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각 개인에게 2000달러를 긴급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한 가지 특이점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학계를 뒤흔들 만한 새로운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감염 초기 증상이 비교적 가벼워 전파 속도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된 이유는 현대 사회의 대도시화 및 현대인의 삶의 속도와 관련이 높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하루 평균 인천공항에 이착륙 하는 항공기 수는 1062대에 달한다. 법무부 이민정보과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우리나라에 입국하거나 출국한 총 인원은 8,800만 명을 넘는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 관련해서 현대 사회의 대도시화와 병균의 전파 속도로 인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판데믹 위험이 커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말은, 이번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일회성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다시 유사하게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사태라는 뜻이다. 2018년 기준, 세계 인구 중 절반이 넘는 55%가 도시(10만명 이상 집결지) 거주자이다. 이제 지금까지 들어왔던 사회, 경제적 미래 예측을 점차 수정할 필요가 생겼다.

연인간의 키스 경험이 그렇고, 자가용 운전자가 그렇고, 대부분의 소비 경험이 그렇듯, 한 번 어떤 상태의 의식과 경험이 발생하고 적응하면 그것을 경험하기 전 상태로 돌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가져다 줄 변화도 그러한 비가역(非可逆)적인 성질을 가질 것이다. 앞으로 비대면, 비접촉 자동화 서비스를 능동적으로 도입하는데 더 망설여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공항 자동체크인, 식당 무인주문기 형태로 알려진 키오스크(무인자동화기기) 서비스는 더 확충될 것이다. 이커머스가 다시 도약하겠지만, 이번 사태로 볼 때 대구에서 유일하게 거의 정상 가동된 온라인 유통업체는 쿠팡이 유일하다고 소문이 났다. 1, 2월 증가한 국내 온라인 주문의 절반을 쿠팡이 처리했다. 평소 하루 200만 건을 처리하던 쿠팡은 기간동안 하루 300만 건 이상 주문을 처리했고,대구 지역에서는 평소 4배 물량을 처리했다고 알려졌다. 쿠팡의 사례를 통해 향후 이커머스 산업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이제 안전을 위해서라면 외식이나 극장, 놀이동산 등 재미거리를 쉽게 포기할 수 있다. 감염병의 위협과 그로부터 안전에 대한 의식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국가적 재난 시나리오에서 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대책은 더 연구될 것이고, 이를 위한 예방/진단 산업과 의료 서비스는 도약할 것 같다. 노래방, 극장, 시장, 실내 놀이터, 수영장, 사우나 등 인구가 밀집되고 밀폐된 장소에서의 여가보다는 더 안전하고 위생적인 곳에서 여가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많은 스트리트 매장과 대형마트는 과거처럼 주말에 빽빽하게 들어서는 고객을 다시는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오프라인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연계할지를 검토해야 한다. 온라인이 단순히 오프라인을 연계하는 O2O 형태에서, 온라인 기업이 고객 빅데이터와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해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경험, 기술, 편의성을 제공할 수 있는 O4O 플랫폼이 확산될 충분한 이유가 생겼다. 이제 고객들은 더 나은 가치 없이 예전과 같은 오프라인 매장을 같은 규모로 배회하지 않을 것이다.

병원도 앞으로 변화를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병원가기를 좋아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연평균 1인당 병원 방문 횟수는 17회로 OECD가입국 중 1위다. 평균 7.4회 대비 2.3배가 높다. 스웨덴(2.8회)보다 여섯 배나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병원이 감염원의 허브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값비싸게 배웠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한선 교수는 영국의 경우에서 거대화된 현대식 병원 시스템으로 인해 매년 2만 명이 병원내 감염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밝힌 바 있다***. 앞으로 원격진료, 진단의료 및 관련 의료기기 산업에서 혁신이 도래해야 할 니즈는 비약적으로 커졌다. 원격교육과 원격근무, 원격 종교활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수요가 커질 것이다.

정신 건강 부분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국가 재난시 미숙한 한 가지 부분은 파국적 사고(catastrophic thought)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파국적 사고란, 모든 것이 잘못될 것 같고 망칠 것 같은 불안감을 갖게 하는 사고이다. 모든 개인은 상황마다 해석하는 방식이 다른데, 과거 경험과 학습 등에 의존한다. 이런 개인적이고 내면적으로 고정된 시각을 심리학에서는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자기 자신과 세계, 미래를 보는 개인의 습관적인 방식을 가르킨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마인드루트리더쉽랩을 운영하는 이경민 대표는 재난적 상황을 대하는 습관적 사고방식에서 위협에 과도하게 압도되는 유형의 리더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주의를 준다****.

대한민국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는 경제적 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에 다른 방식으로 재난이 일상화될 것이라 말한다*****. 삶은 재앙을 통과하는 긴 여정이다. 재앙의 공공성을 책임지기 위한 새로운 영역에서 금융기법과 예방기법이 발굴될 것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실험적으로 도입하는 가계소득주도 모델의 응용이 효력을 발휘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상예측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곳이 기상청이나 어떤 공사가 아닌 삼성지구환경연구소였듯, 미래에 일상적 재앙 사태가 온다면 국가간 신경전이나 비건설적 경쟁 의식 사이에 민간 기업의 역할은 더 중요해 질 것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M. 스캇 펙은 대표적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촉구한다. 삶은 고해(苦海)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은 문제에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다.

* 중앙일보 2020.1.30, 종합20면, 문명의 발전이 낳은 공포 판데믹 인류의 치명적 위협
** 2018년 보건복지부 OECD 건강통계-OECD주요국 국민1인당 진료현황
*** 박한선, “메르스와 전염병 인류학”, 생명윤리포험 제4권 제3호(2015)
**** 이경민, 쇼크를 이기는 리더심리학, DBR 293호 스페셜리포트
***** 우석훈, “한평생의 지식:재난의 일상화” (민음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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