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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29. 2020

우한 폐렴과 님비(NIMBY)


중학교 사회 시간이었다. 님비 현상을 처음 배웠다. '내 뒷마당에서는 안된다(Not In My Backyard)'는 뜻의 용어다. 위험시설, 혐오시설 등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는 시민을 말하는 신조어다. 당시 교사는 "이런 지역 이기주의는 사라져야 한다"고 설파했다. 시험에도 님비 현상의 사회적 악영향을 서술하는 문항이 나왔다. 


그저 암기하기 바빴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누구든 자신의 집 주변에 쓰레기 폐기장이나 원전이 들어오길 원치 않을 거다. 서울 근교에 그런 위험 시설이 있는걸 본적 있는가? 없다. 대부분 지방에 위치한다. 결국 서울에 사는 나는 그런 문제를 피부로 느껴볼 새도 없이 지방사람들을 '이기주의에 물들어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배웠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어느정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명제, 제 5 공화국에서나 듣던 이야기 아닌가. 혐오시설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악이 아니다. 복잡한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목소리 중 하나다.



회사에서 원전 시리즈를 연재한 적이 있다.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군산에 내려가서 취재를 했다.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주민들이 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서 나오는 전자계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자계란 TV나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와는 달리 주파수가 낮아 멀리까지 전파되지 못하고 전계와 자계로 구분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6년부터 12년간 전 세계 54개국·국제기구 8곳과 함께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자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2007년 “자계에 ‘단기간 고노출’될 경우 발암 요인이 있지만 ‘장기간 저노출’에 대해서는 그렇게 판단할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결론 냈다. 한전도 이를 근거로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자계로 인한 발암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해왔다.


원전 주변 갑상샘암 발병률도 논란이었다. 원자력발전소 지역 주민의 갑상샘암 발병과 원전 간 직접적 연관성이 정확히 밝혀진 연구는 아직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12년 갑상샘암 판정을 받고 환경운동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소송을 낸 부산 고리원전 주민 박모씨는 2년3개월간 네 차례 공판 끝에 일부 승소했다. 법원이 한수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였다. ①서울대 의학연구소가 2011년 발표한 ‘원전 종사자 및 주변 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 5㎞ 이내에 거주 중인 여성의 갑상샘암 발병률이 30㎞ 이상 떨어진 지역에 사는 여성의 2.5배에 달했다. ②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 검진 결과 기장군민 3031명 중 갑상샘암 진단을 받은 주민은 41명(1.35%)으로 서울 A병원(1.06%)이나 B병원(1.04%)의 전체 암 검진율보다 높았다. ③재판부로부터 감정 요청을 받은 대한직업환경의학회가 “갑상샘암의 가장 중요한 위험 요인은 방사선 노출이다. 원전 주변 지역에서의 방사선 노출이 갑상샘암 증가의 원인일 수 있다”고 회신했다. 한수원은 즉각 항소했다. 원전 주변의 방사선량이 인체에 영향을 줄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원전 건설에 따른 정부 지원으로 원전 주변 주민은 갑상샘암 검진 횟수가 많다는 점이 잦은 발병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설령 정말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집앞에 원전이 있다면 후쿠시마 사고가 떠오르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울 거다. 서울에 사는 내가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물론 시위대 일부는 더 큰 보상을 노리고 정부 기관을 압박하는 의도일 수 있다. 국민 모두의 원활한 생활을 위해 원전이나 폐기장은 절실하다. 공무원들도 주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최대한 맞추려 노력한다. 이쯤되면 선과 악은 없다. 박정희 정권 때처럼 공권력을 행사해 주민을 밀어부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모두가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대는 와중에 님비현상이라는 편향된 말은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협상과 대타협을 통해 최선의 길을 찾는 것이 현실이다. 님비는 그냥 허황된 용어중 하나일 뿐이다.



바야흐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 공포가 극대화되고 있다. 덩달아 '의료님비'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있다. 우한 출신 교민을 어디에 격리하느냐를 두고 한동안 골치가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28일 충남 천안 내 두곳의 시설에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를 통해 한국으로 넘어올 교민 700여명을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중앙일보의 보도로 정부 발표 전에 격리 지역이 공개되자 충청도를 중심으로 극심한 반발이 일었다. 그 두곳 중 한 곳은 내 고향집에서 불과 5분 거리였다. 주변에 대학 세곳과 초중고교가 있고 식당이 많아 유동 인구가 매우 많은 곳이다. 일단 천안 시내에서 차로 10분밖에 안걸리고 어르신도 많이 거주한다. 뉴스를 보자마자 너무 화가 났다. 왜 하필 천안인가, 충청도가 멍청도라고 만만하게 보이나, 왜 지역사회와 한마디 논의도 없이 정부가 지네 마음대로 정하는지 욕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선 시위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다친 다리를 달래가며 목발을 짚고 시위에 참석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근데 하루만에 격리 지역이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으로 바뀌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트랙터를 끌고 나와 도로를 막고 결사 반대하고 있다. 하루 전 나의 모습과 같았다. 그러니 그들을 비판할 수가 없다. 우한 교민도 소중한 우리 국민이고, 나라는 그들을 보호해야 하며,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러시안룰렛이 이어진다면 대승적으로 결단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근데 사람 마음이 약하고 간사해서 그래도 나 혹은 우리 가족, 지인들은 그 대상이 아니었으면 하고 기원한다. 어쩔 수가 없다. 건강 혹은 생명과 연관된 문제 아닌가. 정부도 난감할 것이다.   


정부는 아산과 진천을 격리 장소로 낙점하며 4가지 조건을 고려했다고 했다.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두 곳이 시설의 수용 능력, 인근 의료시설 위치, 공항에서 시설까지 이동 거리, 지역 안배 등을 따졌다는 것이다. 다만 충청도민들은 천안이었다가 진천, 아산까지로 격리 장소가 변하는 과정에서 충청도만 봉이 됐다고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두고 보라"고 맞서고 있다. 님비라고 속편히 폄하하기엔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고, 깊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선정과정과 이유, 향후 관리 방안 등에 대해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잘 설명을 구하고 이해를 구하는 방법이나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는 방법밖엔 해법이 없다. 해당 지역 사회로 병이 퍼지지 않도록 정부가 어떤 특단의 대책을 세웠는지 소상히 설명했어야 한다. 일각에선 격리 장소를 사전에 알리지 않고 처리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근데 이건 말도 안 된다. 주민들이 사전에 격리 여부를 알아야 좀더 조심하거나 대비하거나 할 것 아닌가. 지금이 박정희 독재시대도 아닌데.


그러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여러분이여. 힘 있고 돈 많고 정부 위정자와 재벌 등이 득시글한 UP-TOWN people 이여. 이거 하나만 명심해달라. 시골 사람들의 필사적인 저항을 님비라는 속 편한 한마디로 폄하하지 말아달라. 평생 이런 고민없이 좋은 인프라 누비며 잘 살 당신들도 힘없어서 서러운 일부 지방민의 마음에 공감해야 한다. '누구는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할 때 본인들은 이 '누구'에 들어갈 걱정조차 해본 적 없으면서 짐짓 국가를 생각하는 척 하는 모습은 위선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가 숨죽이는 이때 무엇이 정확한 답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정부도 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과 어떻게 소통하고 논의를 해야 하는지 하는 그 메커니즘을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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