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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Feb 25. 2020

아버지의 퇴직


30년 가까이 교편을 잡은 부모님을 두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가족들과 백화점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저기 혹시 박모 선생님이세요?” 뒤를 돌아보니 옷을 팔고 있는 한 청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부지를 보며 물었다. 5년 전 선생님께 배웠다며 활짝 웃는다. 15살짜리 중학생은 어느덧 스무살의 청년이 됐다. 학창시절 깊은 교감도 없었고, 담임 선생님도 아니었다. 교내 먼 발치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이다. 그래도 선생님을 만난 게 그저 반가운 거다. 그의 이름 맞추기에 실패한 아부지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열심히 일하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매장 사장이 아부지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괜히 으쓱해진다. 교권이 무너진다고 그렇게 난리여도 선생님이란 직업이 주는 울림이 아직 이 정도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교사 짬밥 30년에 엄니 아부지의 첫 제자들도 어느새 나이가 꽤 들었다. 중딩이었던 소년 소녀가 어느새 40을 넘긴 중년이 됐다. 그들은 가끔 한 손엔 먹을 거리를, 다른 손엔 자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온다. 웃으면서 엄니 아부지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또 때로는 얼마나 자상했는지 이런저런 일화를 털어놓는다. 몇십년전 과거를 들춰내며 한 아저씨 아줌마가 그보다 더 나이를 먹은 엄니 아부지와 함께 한바탕 웃는 장면은 퍽 정겨운 것이었다. 퇴직한 교사에게 훈장처럼 남는 것은 제자의 주기적인 방문이다. 교사 생활을 어떻게 보냈냐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국영수가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이 인생을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칠 터였다.


아부지는 교육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15~20년 전 교복이 없고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에게 교내에서라도 체계적인 지원을 하자고 주장했다. 아직도 고향 집에는 헌 교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아부지의 사진이 많다. 학생들과 어깨동무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사진을 보며 나는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촌지를 받거나 애들에게 비인격적인 욕을 하거나 무작정 때리는 교사는 아니었겠구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2005년 한 지방지엔 아부지의 인터뷰가 실렸다. 교육복지 사업의 필요성을 담은 내용인데 사진속 그는 퍽 젊어 보였다. 기사 링크를 보내자 아부지는 "언론은 원래 포장을 잘 하잖아"라고 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되기는 싫었다. 학부모의 극성에 그저 고개를 숙여야하는 게 싫었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던 문제아들의 부모들은 항상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아들은 죄가 없다”고 소리쳤다. 당신네 아들이 친구를 때려서 이 사달이 났는데도 무조건 학교의 책임이라고 했다. 오해라고 삿대질을 했다. 엄니 아부지의 시름섞인 표정을 보며 내 성질에 저렇게 가만히 있기는 고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인권 운운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믿지 않는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그네들의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얼마전 공무원연금 개혁은 집안의 화두였다. 개혁의 선두에 서있던 새누리당의 모 의원과 취재 차 통화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교사신데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건강하시라고요.” 그 의원은 웃으며 답했다.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아부지는 “언제 한번 그 사람 좀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 국회의원의 건강을 위해 아부지에게 걸리지 않기를 맘속으로 기원했다.



그랬던 아부지가 38년 잡았던 교편을 내려놓고 퇴직했다. 요즘은 기념식도 간소화한다며 한사코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쳐서 내려가진 못했다. 대신 동생과 각각 난 하나씩을 보냈다. 저녁에 전화를 드렸는데 후배 교사들과 한잔 하신 모양이다. "아무 탈 없이 마쳐서 다행이다.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두 아들 잘 키워냈다. 감사하다. 참 재미있었다"고 했다.    

 

어제 친구 한명이 추천해준 우치다테 마키코의 '끝난 사람'이라는 소설을 고향집으로 보냈다. 정년퇴직한 이의 삶을 다룬 책이다. 이런 구절이 있다. "여생이란 말이 맘에 안 든다. 산 사람에게 어찌 남은 인생이 있을 수 있나. 여든이건 아흔이건 혹 병이 들었건 살아 있는 한 그냥 인생이지 남은인생이라고 해선 안 된다"고. 아부지는 어제 밤을 새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싱그러운 젊음을 바친 아버지의 40년 세월이 어땠을 지 짐작하기 어렵다. 후련하지만 아쉽고, 뿌듯하지만 헛헛한 그 마음의 구멍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당신은 곧 다가올 내 미래이기도 하다. "이제 좀 쉬면서 재밌게 놀고 싶다. 나를 위한 시간을 좀 찾고 싶다"는 아부지가 지난 40년보다 더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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