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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Feb 26. 2020

브런치를 까고 나서 쓰는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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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highstem/102




오늘은 유난히 바빴다. 아침부터 청와대가 코로나 때문에 들썩였다. 발제를 마치고 한숨 돌리는데 휴대전화가 쉬지않고 울렸다. 뭐지? 하고 봤더니 저번달에 썼던 글에 댓글이 폭주하고 있었다. 갑자기 민망해졌다. 육아 결혼 연애 퇴사 일상 요리 여행 등 다양한 주제를 새롭거나 알차게 풀어낸 브런치 글이 많이 없다고 썼다. 또 브런치 팀의 편집 능력 혹은 글 분류 매커니즘에 상당한 애로가 있어 지겹고 빤한 글들이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고 적었다.


많은 분들은 공감했고 또 다른 분들은 '니가 뭔데 이런 글을 쓰냐. 편협하다. 너나 잘하라'고 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나도 남의 글을 신나게 까댔으면서 누군가 공격을 해 오니 '욱' 하는 마음이 생겼다. 기자질 8년을 했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절대 아닐 터다. 아직도 매일 8매 짜리 기사를 쓰면서 쩔쩔맨다. 내 주제에 남의 컨텐츠, 그리고 남이 혼신을 다해 적어 내려간 글을 평가하는 건 자만한 일이었다. 너무 확신에 차서 토해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브런치 작가님들께 상처를 주고, 브런치팀에도 폭력을 가한 것 같아 죄송하다. 누구나 누려야 할 글쓰기의 즐거움을 해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부디 저 따위 때문에 자기검열 같은 거는 하지 마시고 지금껏 그래오셨듯 좋은 글 많이 써주셨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아마 열등감이 불현듯 터져나온 것 같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작을 눈팅하며 깨달은 게 있다. 작가님들 모두 한 가지 분야에 대해 풍부한 경험과 독특한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었다. 여러 사례나 내용을 변주하며 종국에는 하나의 커다란 주제의식을 전달하고 있었다.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절대 책을 쓸 수가 없다. 숱한 사회 문제에 대해 지나가듯 가볍게 쓰는 글로는 수백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만들 수 없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출판의 선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칼럼을 모은다 해도 몇십년간의 기자생활을 거친 후에 권석천 선생님만큼의 내공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좌절감이 들었고 만사가 꼬여보였다. 그러니 남의 좋은 컨텐츠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고 남의 성공이 부러웠다. 술 먹고 집에 와서 뭐에 홀린 듯이 '브런치에 읽을 글 없다'는 얘기를 쓴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 같다.


다만 작가님들이 좀 더 솔직하게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짐짓 어려운 용어나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쓰는 대신 날것이라도 작가님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원한 글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일부 브런치 글들을 보며 예쁜 유리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게 쌓아올렸지만 공허하다. 글솜씨를 뽐내기 위한 글들은 쉽게 지친다. 컨텐츠가 충분하지 않은데 억지로 늘린 글은 티가 난다. 어떤 작가님이 '기자라면 중립적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는데 일견 맞는 말이지만 그럴수록 글이 딱딱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브런치에선 욕 먹는 일이 있더라도 좀더 솔직하게 계속 쓰고자 한다.


브런치를 신랄하게 깠는데도 글이 메인에도 올라가고, 브런치 총괄 기획자가 좋아요도 눌러주었다. 기분 나쁠수도 있을텐데 일개 유저의 의견을 수용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출판의 대중화, 글쓰기의 평등화를 넘어 브런치는 많은 사람에게 글쓰는 재미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더 많은 이가 브런치의 매력을 알 수 있도록 브런치팀이 좀더 노력해주셨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미천한 제 글로 상처받은 분이 계시다면 사과드리고, 많은 작가님들과 가감없는 교류를 거치며 서로의 글쓰기가 좀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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