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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pr 16. 2020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진 이유


난 기자지만 정치부를 떠났고, 국회 출입도 안 해봐서 여의도 바닥에 대해선 잘 모른다. 여러 유수한 기자와 평론가들이 미래통합당의 총선 패배 이유를 이미 많이 분석하고있다. 그러니 전문적인 정치분석글을 보시려는 분은 스킵하시고..


우연히 온라인 기사를 쓰다가 이석연 전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 겸 위원장 권한대행이 15일 밤 늦게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깨달았다. 통합당이 질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내용은 이렇다.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국민의 선택에 절망했다. 이 정권의 폭주를 막지 못한 대가는 고스란이 국민한테 되돌아 올 것이다. 우리 사회를 떠 받쳐 왔던 자유와 창의의 헌법적 가치가 퇴보하고 결과의 평등을 앞세운 철저한 나눠 먹기 사회로 전락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목을 놓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 시일야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이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칠흑 같은 어둠의 끝에 와 있다는 한가닥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헛웃음이 났다. 본인들이 무능한 건 생각 안하고 하다하다 국민 탓 하는게 같잖아서다. 도대체 어디까지 구차해질지.. 선거 결과는 공정하다. 졌으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부족한 점을 돌아보며 다음을 고민하는게 순리일터인데 끝까지 국민 물고 늘어지는 모양새 보니까 왜 졌는지 매우 잘 알 것 같다. 국민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여전히 쌍팔년도 사고 방식으로 국민을 도의 대상으로 착각하니까 지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총선 국면 내내 명확한 어젠다를 내놓지 않았다. 차명진, 김대호 후보 등 막말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극렬 보수 세력의 눈치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극하지 말자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제정신인가? 어느 선거보다 중도층이 많은 걸로 예상됐는데 민생 공약 등으로 그들의 마음을 붙잡고 외연을 넓히려고 해야지 어차피 보수 찍을 유권자들만 보고 있다니..


미래통합당은 계속 악수만 뒀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n번방에 여권 인사가 관련이 있다고 헛발질을 했다(제대로 사실 확인도 안된 상황이었다). 여당이 내놓은 것에 대해 반대만 하는 국면으로 판이 짜여지니까 당췌 야당에 믿음이 가질 않았다. 황교안 대표는 장애인 비하 발언을 했고, 코로나 국면에서 '신천지'와 '교회'는 다르다는 식으로 말했다. 황 대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거 모르는 사람있나? 본인의 소신을 숨기라는 게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보다 전략적으로 스무스하게 의견을 피력할 방법을 찾아야지 그냥 되는대로 말하고 다니면서 점수를 까먹었다.


코로나 사태는 야당에 분명 유리한 패였다. 코로나 초기 정부는 마스크 수급에 실패했고 신천지 탓에 사안이 커지면서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능수능란하다. 빠르게 마스크 공급을 늘렸고 방역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같은 스타도 탄생했다. 그에 반해 통합당은 계속 중국인 입국금지에만 매달렸다. 사태 초반에야 핫한 이슈였다만 정부가 불가 방침을 밝히고 방역에 집중하겠다고 하면서 떡밥이 점점 쉬어가는 건이었다. 그런데도 통합당은 중국발 입국금지만 주구장창 붙들어맸다.


코로나는 최초 발생->신천지->서울 집단 감염->현재 소강 국면 등의 큰 변곡점이 있었다. 중국인 입국금지는 신천지 감염에서 서울 집단감염 사이에나 중요한 거였다. 그렇다면 미통당은 상황을 적절히 파악해가며 정부나 청와대의 방역 자체는 넌지시 칭찬하고 새로운 공격거리를 찾아야 했다. 근데 아무것도 없었다. 본인들이 다수당이 되거나 집권하면 이번 정부의 방역문제 가운데 이런점을 고쳐서 잘 대응하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자꾸 뒤늦은 떡밥만 무니까 종국에는 통합당이 오히려 코로나 수습에 방해되는 세력같이 느껴지는 지경까지 됐다.



정치신인 황교안이 진중한 이낙연에게 완벽히 졌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신뢰감 있는 말투와 행동, 표정, 메시지가 가볍디 가벼운 황교안 대표를 찍어 눌렀다. 이낙연이 기자들에게 "난 황교안 대표 좋아한다"고 했더니 황교안 대표는 "난 이낙연 싫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부터 이미 승패는 정해져있었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본인의 소신을 꺾거나 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아왔던 사람과 다년간 정치 활동을 거치며 떨어지는 잎새 하나도 조심하며 치밀한 정치전략을 구사해온 이는 이렇게 다르다. 김종인 씨가 좀 더 일찍 통합당에 왔어도 글쎄. 황교안 대표보단 낫겠지만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이미 통합당은 그런 지경에까지 와 있다. 비전도 고민도 인재도 자신감도 활력도 없다. 이석연 씨처럼 국민을 탓하고 꼰대질하는 구시대 인물들로만 가득 차 있다. 어차피 다음 대선은 망했고 그 다음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노려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또 폭망할 것이다. 문제는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어떻게 뭘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 미통당 의원에게 이런 얘길 했더니 본인도 잘 안다고 했다. 왜 안바꾸냐고 하니까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휴.. 이게 제1 야당이라니.




제대로 된 적수가 없어서 여당은 롱런 할거다. 감히 내가 볼때 의원이 될 깜냥도 능력도 안되는 분들이 다수 이번 총선에 여당 후보로 나와서 당선되셨다.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으니 나같은 기레기가 감히 훈수둬서도 안되고 참견하는 순간 미통당 틀딱들처럼 보일 것이다. 그들도 나름의 장점과 카리스마가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아니면 정말 기회를 잘 잡았거나 운이 좋았거나. 운도 실력이니까 할말은 없다.


다만 이거는 짚어야 겠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허접한 야당보다 그나마 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 다수당이 될 거다. 본인들만 정의롭다고 믿으며 본인들의 허물을 지적하면 적폐라고 몰아갈 거다. 사회를 다원적으로 보지 않고 우리와 적으로 치환하며 오만한 모습을 또 보일테다. 제대로 이를 지적하고 능수능란하게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할 야당이 생떼나 쓰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랴. 제대로 정신 박혀있고 사지 멀쩡하고 여유롭게 여당을 구워삶으면서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참 야당 정치인이 혜성처럼 나타나주길 바란다. 아직 먼 대선과 다음 총선이 예측 가능하다면 그거야 말로 재미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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