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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pr 23. 2020

김정은 위독설이 남긴 것


김정은 위독설이 준 깨달음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북한 소식은 정말 취재하기 힘들다. 또 한국인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외신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 아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위독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CNN 보도가 맞을 가능성도 남아있긴 하다. 다만 CNN 보도가 설익은 보도였다는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중이다. 하나 더. 관계자 혹은 소식통에 기댄 익명의 보도가 주는 폐해, 그리고 일단 뜨면 무조건 받아쓰는 언론의 행태도 여전했다.


우선 북한 소식은 어떻게 취재해야 할까. 얼핏 떠오르는 건 북한 통전부와 연결돼 있는 국정원이다. 다만 국정원은 기자들에게도 미지의 세계다. 국정원 사람들은 블랙과 화이트 요원으로 나뉘는데 기자들은 보통 사무직인 화이트 요원을 만난다. 북한과 직접 접촉하는 블랙 요원을 취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국정원 사람들이라고 북한소식을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닐터다. 2018년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소원해졌고, 휴민트 혹은 대화 창구도 많이 끊겼다고 들었다.


청와대에서는 국정상황실 정도가 북한 소식을 알수 있겠다. 청와대 내 통일정책비서관실이나 통일부도 북한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기구니 취재 대상이 된다. 또 국방부도 연관이 있다. 그런데 취재가 안 된다. 국가적 보안 사안이기도 하고 극소수의 핵심 관계자만이 북한의 정보를 알기 때문이다. 최근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는데 기자들은 청와대가 발표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취재력이 딸려서도 있겠지만 애초에 접근하기 매우 어려운 정보가 북한 소식이다. 탈북자를 취재하거나 북한학과 교수를 접촉하는 것도 방법인데 그들도 아마 잘 모를 것이다. 개성공단도 가동을 멈췄고 연결 고리가 없으니 정보당국도 북한 동향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긴 하다.


특히 최고존엄인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 등은 북한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현재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 여사와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 현송월 당 부부장 등 여성 3인방에 더해 조용원 당 부부장과 김씨 일가의 ‘집사’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까지 다섯 사람 정도만 김정은의 상황을 알 수 있다고 추측된다. 또 김 위원장 전속 의료진과 ‘방탄 경호단’으로 알려진 근접 경호원 중 극히 일부가 알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핵심 그룹의 체제 충성도를 감안하면 김 위원장 수술 정보가 수일 내 유출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탈북자로서 최근 총선에서 당선된 태구민 씨 얘기다.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8일 오후 2시 사망할 당시 북한에서 김 주석의 사망 사실을 알았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한다. 당시 소식을 접한 김영남 북한 외교부장은 중국과 러시아 담당 부상을 불러 마오쩌둥 주석과 스탈린 서기장이 사망했을 당시 중국과 러시아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김 주석의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영남 외교부장에게 30분 간격으로 “왜 중국과 러시아의 자료가 올라오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결국 북한은 스탈린 서기장 사망 관련 자료는 입수하지 못하고 마오쩌둥 주석 사망 파일만 참고했다. 당시 자료를 찾기 위해 동원된 수십명의 간부도 김 주석의 사망 여부는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북한은 김 주석이 사망한지 34간이 지난 7월 9일 정오에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2008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도 일주일 동안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는 보통 북한 내각 부서에서 작성한 문서는 김 위원장에게 직접 보고되는 형식으로 결재를 받게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당시 일주일간 결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외무성 내 많은 사람들은 김 위원장이 아마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 했을 것이라 추측했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은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김 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 51시간 30분이 지난 19일 오후 12시에 사망 사실을 발표했다.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사망때와 비슷하게 모든 장례 준비 등을 지도부 선에서 끝내놓고 사망을 알렸다. 


당시 북한 외무상, 1부상, 당 위원장 등 모든 간부들이 평소와 같이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전 11시에 갑자기 당위원회에서 정오까지 강당에 집합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TV 보도에 이춘희 아나운서가 검은색 한복을 입고 나오는 순간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북한 최고 존엄의 신변은 철저히 보안이 지켜진다는 뜻이다. 북한 사람들도 모르는데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알 수 있었을까. 청와대 등이 현재 "김정은 상태를 모른다"고 하는 건 어느정도 진실이라고 본다. 





김정은 건강이상설의 타임라인을 짚어보자. CNN은 지난 21일 오전 10시30분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최근 큰 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이후에 '중대한 위험(grave danger)'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하루 전인 지난 20일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평안북도 묘향산지구 내에 위치한 김 씨 일가의 전용병원인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향산특각에 머물며 의료진들의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반신반의하던 '건강 이상설'이 미국 CNN 보도로 나오자 국내 언론은 긴급 속보를 전하고, 정부 당국을 상대로 사실 확인에 나섰다. 데일리NK는 북한 관련해서는 매우 저명한 매체다. 데일리NK 보도 이후 기자들 사이에선 확인 붐이 일었지만 정부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들 에이 확인도 안되는데 두자고 하다가 갑자기 CNN이 지르니까 "이거 진짜인 것 같다"하고 받아쓴 거다. 이후 청와대는 "확인된 바 없다"고 했고 통일부도 마찬가지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김정은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진실 여부는 좀더 봐야겠다만, 일단은 CNN이 무리하게 지른 것 처럼 되어가는 형국이다.




물론 외신이 한국언론에 비해 정확도가 높은 것 같긴 하다. 특히 대북 취재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취재인력과 비용이 한국 언론과 비교가 안 된다. 특히 일본 언론사의 대북 특종은 끝도 없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2009년 6월 14일자 1면을 통해 스위스 베른 공립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16세 김정은의 모습을 공개했다. TBS방송은 베른의 급우들과 찍은 2000년 무렵 김정은 사진을, 요미우리신문은 15세 전후 소년 김정은 모습을 연달아 보도했다. 보름 뒤에는 니혼TV가 13분짜리 동영상을 공개했다. 1998년 학교 행사에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탬버린을 치는 김정은이 나온다. 니혼TV는 마카오에서 장남 김정남을 인터뷰했다.


일본 TBS가 포착한 담배피는 김정은


차남 김정철의 모습을 잡아낸 것도 일본 언론이었다. 후지TV는 영국 가수 에릭 클랩튼의 2006년 독일 콘서트 때, TBS방송은 2015년 영국 공연 때 김정철을 포착했다. 2017년 2월 김정남 암살사건 당시 후지TV는 사건 발생 6일 뒤인 19일 암살 현장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의 CCTV 영상을 단독 입수했다. 2001년에는 마이니치신문의 김정남 위조여권 밀입국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2월에는 중국 난닝역 플랫폼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길이었다. 크리스털 재떨이를 받쳐 든 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 그 옆에 선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까지 보였다. TBS 제작진은 김정은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일동안 끈질기게 주변 상황을 취재해서 특종을 건졌다. 요미우리 신문은 이번 국면에서도 '북한에서 작년 말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긴급시 최고지도자 권한을 대행하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이 어떻게 대북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지 그 경로와 루트는 잘 모르겠다. 그 끈질긴 취재는 놀랍고 대단하다. 다만 이번 김정은 위독설을 보며 외신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런데 한국 독자들과 기자들 모두 좀 이상한 게, 외국 언론은 매우 높게 쳐준다. 데일리NK 기사는 그냥 넘겨도 CNN은 철썩같이 믿는다. 뉴욕타임즈와 BBC, CNN 등이 역사가 깊은 저명한 언론이라쳐도 한국 사람들의 외신 사랑은 좀 유별나다. 한국 언론을 두고는 '기레기'라고 해도 '외신은 역시 달라. 한국 기레기들이 배워야 해'라고 한다. 물론 생존 위기에 놓여있는 한국 언론의 그릇된 취재 행태는 분명 문제다. 다만 김정은 위독설을 계기로 외신에 대한 맹신은 좀 내려놔야 하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소식통, 관계자로 가려진 익명 보도에 대해서 얘길 해야겠다. 예전 글(https://brunch.co.kr/@highstem/10) 에서도 한번 썼었는데 기자들이 자꾸 기사를 민주당 관계자, 청와대 관계자, 대북 소식통, 한미일 사정에 저명한 소식통으로 해서 쓰는 것은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정보를 준 소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실명보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근데 요새는 이게 자꾸 변질되어서 책임 회피 수단처럼 되어 버렸다. 


얼마전 통일부를 오래 출입한 기자에게 우스개 소리를 들었는데 대북 소식통이라는게 대부분 별거 아니라고 했다. 탈북자이거나 북한학과 교수 등도 때로는 대북소식통으로 분류해서 막 기사를 쓴다고 했다. 탈북자 A씨가 대북소식통으로 등극하면 기사가 좀 있어보인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도 비슷하다. 더불어민주당의 높은 직책에 있는 의원이 아니고 그냥 비서관 보좌관 비서 혹은 동료 기자(...)까지도 관계자가 될 수 있다. 이번 cnn 사태를 보니 이런 관행은 굳이 우리나라 언론에만 적용되는 건 아닌것 같다. 


굳이 기자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취재원들도 좀 민감한 얘기를 할라치면 실명대신 관계자로 넣어달라고 하니까. 청와대 사람중에는 얘기를 하면서 "여권 관계자로 해달라"는 사람이 많았다. 민감한 상황에서 정보는 얻어야 하고, 상대방도 민감해하니 괴상한 관계자와 소식통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겠다만 기자들부터가 익명의 그늘에서 숨으려 하지 말고 좀더 자신감있게 그리고 더 꼼꼼하게 취재하는 습관을 들여야 익명보도의 악영향을 그나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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