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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25. 2019

신재민 사무관과 언론


지난 1월 3일 오전 10시 30분쯤 신재민 전 사무관과 관련해 자살의심 신고가 들어왔다는 경찰 PG(Press guideline, 언론대응 지침)를 받았다. 10분 후 '받은글'로 그가 학생일 때 보수우파 활동을 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47분 모 경제신문에 '단독'이라고 기사가 떴다. 관악경찰서 여성 청소년과장 풀이라는 찌라시가 48분, 서울지방 경찰청이 "동명이인"이라고 확인했다는 풀이 51분에 왔다. 55분 관악서 발로 "신재민 맞다"라고 정정하는 글이 또 돌았다. 11시 28분에는 신 사무관이 고파스에 올린 유서가 카톡으로 퍼졌다. 37분 그가 비트코인 때문에 돈이 없어 기재부를 나왔다는 글도 돌았다. 12시 28분 신 사무관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얘기가 들렸고, 48분쯤 관악서 형사과장 발로 "생명에 지장없다"는 풀이 왔다. 그 즈음부터 기사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2시간 20분 간 카톡창 수십여개에 불이 났다. 받고, 전달하고 하면서 뭐가 찌라시고 뭐가 경찰 발이고 뭐가 뉴스인지,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한 공무원은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건데 언론이 너무 빠르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미드 '뉴스룸' 4화는 사고보도와 속보에 대해 다룬다. 정규 뉴스 도중 총격 사건으로 한 여성 하원의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미국 공영 라디오(NPR), CNN, FOX, MSNBC 등에서 사망 소식을 전하지만 뉴스 제작진은 경찰이나 의사로부터 아직 사망 사실 확인을 하지 못했다며 총격 사건이 일어난 사실만 보도한다. 언론사 사장은 질책한다. "왜 우리는 사망 소식을 발표 안 하는 거야? CNN, FOX, MSNBC에서 다 죽었다잖아"라고 한다. 그때 다른 스태프가 외친다. “아직 살아있대요! 마취의사가 수술 준비 중이라고 확인해줬어요.” 콜드플레이의 fix you가 흐르면서 한 스태프가 자막 담당에게 말한다. "이제 숨 크게 쉬어도 돼." 속보, 시청자, 시청률과 광고, 돈 vs 인간의 존엄성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다. 당시 나는 언론고시생이었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 사망 기사에 단독을 다는 행태 등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와 현실은 분명 다르다. 모두가 따라가는데 곤조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혼자만 물먹은 게 된다. 내 신념은 나만 알고 아무도 모른다. 다 틀렸어도 여럿이 함께하면 사실 비슷한 게 된다. 수사기관의 발표도 실시간으로 새기 때문에 계속 말이 바뀔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인간성을 지키려면 일을 아예 못 한다. 비리로 자살한 한 공무원의 장례식장에 가서 가족에게 정황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듣고 한참동안 문 앞에 서성댔던 기억이 난다. 울고 있는 유족에게 당당히 말을 거는게 꼭 좋은 기자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못 하겠다"고 하는 게 바람직한 자세도 아니다. 본인도 기자면서 "언론만이 문제다. 언론이 썩었다"며 참 언론인 코스프레 하시는 KBS 최경영 님처럼 대처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저널리즘 J에 나와 정신승리하실 시간에 취재 한글자나 더 하시길..).


다만 신 사무관의 범법 여부를 떠나서 나부터가 그의 목숨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경마처럼 그의 안위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평가하는 모습이 굳이 기자들만의 모습은 아닐터지만..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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