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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01. 2019

출입처에 경도된다는 것


교육부 출입할 때였다. 서울의 모 한식집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했다. 장관과 가까운 자리에는 높은 연차 기자들이 앉았고 장관의 인사말, 그보다 더 간지러지는 기자단 간사의 답사가 이어졌다. 당시 교육부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많았는데 모두가 짠 듯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교육부 직원들이 장관님 너무 좋아합니다" "총선 나가셔야죠" "아유 피부가 너무 좋으십니다" 했다. 아이스브레이킹 치고는 너무 메스꺼웠다.


그러다가 어떤 젊은 기자가 장관에게 상대적으로 민감한 질문을 했다. 매우 공손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질문이었다. 장관이 주춤거리는 사이 기자단 간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난 그 워딩을 아직도 그대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좋은 날에 임마 니가 그게 할 말이냐.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를 쳤다. 장관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죽을죄를 지은 것 마냥 타사 후배를 노려보던 간사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기자가 아니고 그냥 브로커다. 난 그 선배가 쓴 교육부 기사(풀이나 자료 말고 단독이나 기획)를 단 한건도 보지 못했다. 출입처 사람들이 기자님 기자님(속으로는 호구) 이러니까 진짜 대기자가 된 줄 알았나 보다. 아니 고작 장관이 뭐라고, 얼마나 높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호들갑이야.  


이후 나는 많은 출입처를 돌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연차 기자들이 출입처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저연차의 노력과 발품을 폄하하고, "뭘 몰라서 저러는 거야"라고 무시하는 처사를 수없이 목도했다. 본인들은 전혀 몰랐으면서 "이런 기사를 왜써"라고 무시하고, "난 알았는데 안썼다"고 정신승리를 했다. 힘이 세고, 권력이 집중되는 출입처 일수록 이런 황당한 카르텔이 더 굳건하다. 잘 보여서 취재원을 더 많이 사귀고, '저 기자는 우리 편이야' 해서 출입처와 동화되는 건 좋은데 적어도 부끄러울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말만 안할 뿐 후배들이 다 두눈 뜨고 보고있으니까. 삼성 출입하다 삼성 직원이 되고, 당 출입하다 정치인이 되는 기자를 많이 봤다.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독자, 국민이 아니고 본인의 안위를 위해 책임을 방기하는 거다.


나는 청와대 오고 나서 매일 눈치보고 속앓이를 많이 했다. 내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도 그냥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영혼없이 말했다. 정당 경험도 없고 외교안보팀도 안 해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 잘못이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민감한 기사를 두고 "니가 발제한거 아니지? 기어이 니가 사고를 쳤구나"라고 했다. 난 아직도 그때 한마디도 못하고 병신처럼 죄송하다고 둘러댄 게 분하고 억울하다. 나 하나 때문에 회사에 피해가 갈까봐 참고 삭히고 했다.


당연한 걸 질문하는데도 주눅이 들고 앞으로 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하지, 무서웠다. 청와대 내 블랙리스트 기자가 될까봐, 수석과 비서관 행정관들이 나를 기피할까봐, 뒤에서 타사 기자들이 욕을 할까봐 두려웠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개 2진이지만, 나는 브로커가 아니고 기자라고 생각한다. 취재 안되면 다른 루트를 고민하고 전화 안받으면 받을 때까지 해보고. 안되면 하는 수 없고. 그러니까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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