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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n 11. 2020

모두가 함께 만드는 국회

조정훈 의원님, 아니 정훈님 고맙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들이 모이는 이곳에 신선한 브리핑이 있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8명의 본인 의원실 보좌관을 기자들에게 소개했다. 


시대전환은 조 의원 등이 지난 2월 창당한 중도 성향의 실용주의 정당이다. 3040대를 중심으로 '문제해결 정치'와 이념 대립에서 벗어난 '실용'을 추구하고 있다. 조 의원은 민주당 주도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창당에 기본소득당 등 다른 소수정당들과 함께 참여했다. 국회 입성에 성공한 조 의원은 민주당으로 합당하지 않고 탈당(실제로는 제명)해 시대전환으로 복귀했다.


보좌관 8명과 함께 나란히 선 조 의원의 모습은 새로웠다. 단상에서 보좌관에게 발언권을 준 의원은 거의 처음보는 것 같다. 권병태 보좌관은 이렇게 말했다. "10여 년간 세 곳 의원실 보좌관으로 일했지만 이런 자리는 상상도 안 됩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게 (의원) 그림자처럼 생각이 들고. 그런데 우리 조정훈 의원님 아니. '정훈님'은 보좌진을 같은 입법 노동자 파트너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발상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라고. 


최병현 보좌관은 "첫 기자회견, 소통관을 예약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길 때 이런식으로 하자고 조 의원이 4월 15일 당선된 날부터 얘기하셨다. 국회에 오기전부터 자신보다 주변인을 소개하는 정훈님의 성향이 이번 인사로 나타난 부분"이라고 했다. 미국 공공정책 대학교 학생인 김희연 입법보조원은 “정훈님의 의원 외교 활동을 잘 보좌하겠다”고 말했다. 남가희 비서는 한 소설 구절을 인용했으며 박설희 비서는 경력 있는 워킹맘으로서의 포지션을 내세웠다. 의원실 보좌진 막내 양소희 씨는 수평적인 의원실 문화를 바탕으로 한 지향점을 언급했다. 국회의원이 아니고 보좌관이 주인공인 브리핑이었다. 보여주기 혹은 쇼라고 해도 좋았다. 고귀한 뱃지께서 이렇게 대놓고 보좌관을 주인공을 내세운 적이 있었나.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훈님께서 향후 의정활동에 있어 이렇게 밑의 사람들을 잘 챙기며 좋은 법안을 많이 내시고, 을도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주시기 바란다.





JTBC 드라마 '보좌관'은 너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었다. 모시는 의원과 라이벌 관계인 의원이 주최하는 포럼에 가서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든지 하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국회의원이 아니고 보좌관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라 반가웠지만 보좌관을 너무 영웅시하거나 모든 일을 주도하며 국정을 끌어간다는 설정이 좀 과도했다. 


현실은 좀 다르다. 물론 국정감사나 청문회 시즌마다 수많은 국회 보좌진이 밤을 새워가며 자료를 만들고 의원님 질의 거리를 준비하지만 살인적인 업무강도와 의원님의 갑질에 힘들어하는 이가 많다. 직접 들은 사례만 해도 무수하다. 의원 자녀가 귀국하거나 출국할 때 보좌진한테 데리러 갔다 오라고 하는 경우다. 또 의원 휴가 동안 집에서 개밥을 주라는 의원도 있었다. 직원들 돈을 자잘하게 빌려간 다음 갚지 않는 사례도 있고 대학원 과제를 대필시키는 의원도 있다. 휴일마다 본인 지역구 행사에 보좌관을 대신 보내고, 의원 자녀 운동회에 의전을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런 황당한 요구에도 따를 수 밖에 없는 건 보좌관은 국회의원 앞에선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생사여탈권이 의원에 있다. 국회사무처에 팩스 한장만 보내면 보좌진을 즉각 해고할 수 있다. 국회 사무처 통계를 보니 지난 20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의원들은 1명 당 19.7명의 보좌진을 채용했다. 한 사람의 국회의원은 총 9명을 고용할 수 있다. 들어온 인원만큼 나간 인원도 많다는 뜻이다. 


특히 선거 이후 보좌진 물갈이가 심하다. 의원이 낙선하면 일자리를 잃는다.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거나 인맥이 좋은 보좌관은 ‘스카웃’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국회를 떠날 수밖에 없다. 일부 보좌관들은 스스로를 ‘사노비’ ‘머슴’이라고 부른다. 한 언론사에서 보좌진을 상대로 설문을 했는데 국회의원의 폭력이나 폭언 등의 대상이 된 적 있느냐는 질문에 답변자의 4명 중 1명인 24.1%가 있다고 했다. 국회 보좌진들의 익명게시판엔 “내 삶을 장기판의 말이라 생각하지 말아달라, 보좌직원의 사노비화를 막아달라” 등 갑질을 고발하는 글이 넘쳐난다.


직접 보좌진에게 소리를 지르는 A 의원의 모습을 목도한 적이 있다. 국회 의원회관 마와리를 돌 때였는데 밖에서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스케쥴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거의 30여분을 혼내는 것 같았다. 그 의원님은 이번 총선에서 떨어졌다. 많은 보좌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국회 복도통신에선 이런 갑질 의원에 대한 목격과 규탄이 쏟아진다. "아예 집에 들어가지 말고 일을 하라고 했대" "그냥 맘에 안든다고 나가라고 하고 제대로 다음 일자리를 알아봐주지도 않았대" 하며 서로 당한 만행을 공유한다. 


물론 모든 보좌관이 떳떳한 건 아니다. 의원에게 당한 갑질을 의원의 힘을 믿고 정부 산하기관 등에 푸는 보좌진도 있다. 다만 대부분의 보좌진은 의원을 도와 정치로 우리네 삶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좌관 갑질 논란을 보면서 다시 떠올렸다. 보좌관의 힘든 삶을. 박 의원은 4박 5일간 보좌진을 줄세워 21대 국회 1호 법안을 냈다. 그는 "법안 접수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줄 몰랐다”고 했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는 "보좌진도 줄서는게 좋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아니 그럼 의원님 한마디에 자기 밥줄이 날아가는데 설마 "못하겠다"고 할까. 1호 법안 낸 의원님 만드려고 4박 5일간 줄섰을 보좌관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조정훈 의원의 보좌진 브리핑을 보고 일부 의원들은 내게 "우리도 하면 하지. 근데 굳이 저렇게 까지 관심을 받고 싶으냐"고 했다. 그래도 그분들도 정훈님의 모습을 보며 조금이라도 느끼는 바가 있으셨으면 좋겠다. 2700여명의 국회 보좌진이 힘내서 일해야 의원들의 의정활동 질도 올라가고, 우리 국민들의 삶도 조금이나마 좋게 바뀔 것 같다. 그러니 의원님들! 우리 함께 일하는 국회, 일하고 싶은 국회 만들어요. 갑질 대신 고생했다, 수고했다, 너밖에 없다 한마디씩 부탁드려요. 본인 사소한 일은 본인이 처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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