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Jul 25. 2019

여의도 저승사자와 스폰서 문화


그는 항상 ‘친구’라는 말로 끝맺었다. 계좌 보낼테니 돈 좀 보내줘, 친구야. 오피스텔 시세 좀 알아봐주라, 친구야. 나 승진했으니 난 하나만 보내줘, 친구야. 사무실로 블루투스 스피커좀 부쳐주라, 친구야.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중·고교 동창인 자신의 ‘스폰서’와 나눈 대화는 서글프다. 그들은 과연 친구였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향응 접대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검사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여의도 증권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금융통 검사의 몰락이다.


사실 뻔한 이야기다. 사업가가 만약을 대비해 검사인 친구에게 접대를 했다. 검사는 사업가 친구를 십분 활용하다 적발돼 싸움 끝에 둘 다 파국을 맞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35개국) 가운데 국가청렴도 29위(2017년 기준)에 그치는 한국에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전개다.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권력과 자본의 위태로운 공생이 활자화되면서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벤츠여검사’ 등 공무원 혹은 권력자와 스폰서가 빚어낸 비위 범죄가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또 가슴을 쓸어내린다. “배운 분들이 왜, 사회를 밝혀야 할 공무원이 도대체 왜, 뒷돈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이들이 뭐가 부족해서…” 하는 것이다.  


스폰서 판사 무마 당사자들.


친분이 있던 교육부 고위 공무원은 한 대학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아 해임됐다. 서울시교육감의 전 비서실장은 공사업체에게,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은 한국전력 납품업체에게 뇌물을 받았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원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부당한 돈으로 윗사람과 이해 관계자의 환심을 사고, 먼저 승진하고, 정직한 사람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사는 사회. 재수 없게 걸리지만 않으면 돈을 준 자와 받은 자 모두 행복한 현실이 건강한 사회는 분명 아닐 터다. 그렇게 우리는 스폰이 넘치는 ‘아픈’ 나라에 살고 있다.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 사이에선 스폰이라는 말이 억울하다는 항변도 나온다. 한 경찰 정보관 얘기다. 관내 기관을 돌아다니며 보고서를 쓰는 그는 “주로 술자리에서 A급 정보가 나온다”고 했다. 판공비는 적고, 술값은 본인이 내야한다. 이른바 ‘정보’ 값이다. 대출을 받지 않는 이상 사비로 충당이 어렵다. 자연스럽게 재력가와 친하게 되고, 식사비 등을 받는 게 관행이라고 한다. 한 검찰 수사관은 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과 건설업자 최두영과의 관계가 이해가 간다고 했다. '을'이었던 김태우가 국정 운영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고자 어떻게든 '갑'인 최두영의 마음을 사야 했다는 것이다. 마치 기자가 취재원을 대하듯 말이다.


부당한 재력없이 충실히 업무를 수행하는 사정기관 직원들을 보면 이런 워딩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싶으면서도 한켠으로 이해도 간다. 술과 골프로 점철돼 수십년간 이어진 사회 문화를 바꾸거나, 성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거나 둘 중 하나가 필요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처벌만 강화해 봤자 스폰문화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말만 바꾼다고 다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