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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25. 2019

말만 바꾼다고 다 되나요?

서울시교육청의 조직문화 개편 방안


입사 직후엔 사내에서 '~님'을 붙이지 않는 언론사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다. 기자들이 내부적으로 이런 문화를 체화하며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출입처에서 주눅들지 말고 당당히 행동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했다. '선배님' 대신 '선배'라고 하니 사이도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부장님' 대신 '부장'이라는 호칭으로 통화하자 타 업계 친구들이 신기해한적도 있었다. 데면데면한 회사 구성원이라기 보다, 가족 혹은 동아리 같은 느낌도 들었다.


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다. 군대보다 더 심한 언론사의 위계 서열을 자유로운 용어로 한껏 포장한다고 분위기 자체가 유해질리 없다. 물론 부서별로 문화는 좀 달라야 한다고 본다. 수습을 교육하는 사회부 등은 어느정도의 기강을 유지하되, 창의성을 요하는 컨텐츠 부서는 되도록 동등한 관계에서의 토론이 필요할 거다. 요지는 말과 호칭이 결코 조직문화 개선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카카오 등 IT 업계는 굳이 영어 이름을 쓰지 않아도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한다.  


'형님'이라는 용어도 비슷하다. 수습 시절 선배들은 경찰분들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가르쳤다. 과장님 계장님 데스크 님 등 직급을 부르는 게 정없어 보인다는 거다. 입에 잘 안 붙었다. 어떤 경찰은 "당신 같은 동생을 둔 적 없다"고 했다. 난 아직도 취재원에게 형님이라고 하지 않는다. 취재원과 나이 차가 10살이 넘는데도 ~형, ~형님이라고 칭하는 기자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다만 겨우 한두번 봤는데 형이라고 호칭하는 모습은 여전히 좀 어색하고 의아하다. 형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취재원도 여럿 봤다. 각자 스타일에 맞는 호칭이 필요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추진하고 있는 학교 구성원 간 '수평적 호칭제'를 살펴보다 빵 터졌다. ‘과장’ ‘국장’ 같은 직급 대신 ‘○○님’ ‘○○쌤’과 같이 통일된 호칭을 쓰자는 취지인데, '~프로'라는 예시도 포함됐다. 수년 전 한 70대 어르신을 인터뷰하는데, 그가 자꾸 "박프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박프로는 결혼은 했나"라고 했다. "전 프로가 아니라 아직 아마추어"라고 웃었는데 홍보팀 분들이 그 단어를 많이 썼다. 현대차나 SK텔레콤, 대한항공 등 전통의 회사들은 기자들에게 '형'이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처음엔 좀 이상했는데 서로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땅에 떨어진 교권은 안중에도 없고, 교장-교감과 선생 사이의 제도적, 관행적인 위계는 바로잡을 생각도 별로 하지 않는 조희연 교육감이 '프로'라는 구시대적인 용어를 혁신이라 우겨가며 말로 전쟁을 벌이는 게 그저 황당할 뿐이다. 난 교육감 자리는 정치인이나 교수가 아니라 현장 출신 교직원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서 있는 교사들에게 스탠딩 회의를 권장한다니 도대체 생각이 있는 처사인가. 말 하나 호칭 하나, 회의 방식 하나 바꿔서 될 거였으면 구태한 한국 교육은 진작에 바뀌고도 남았다.


두 아들은 외고에 보내놓고 정작 외고는 사교육과 교육불평등의 온상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을 수장으로 뒀으니 서울의 교육이, 나아가 한국 교육이 내실있게 바뀌겠는가. 서울시 교육청이 꾸린 ‘조직문화혁신 TF’ 위원 13명 가운데 현장 교사가 한명도 없는 것 자체가 조 교육감이 교육을 정치화시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조 교육감은 학교와 교사가 아닌, 오로지 학생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해 왔는데 일부 학생조차 반발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작은 것 부터 바꿔 나가려고 했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정신승리하기엔 재선 교육감으로서 지금까지 이뤄낸게 도대체 무엇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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