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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n 21. 2020

군인 아들을 둔 아버지들을 위해


난 항상 그렇듯 군 초반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강원도 양구에 있던 부대에는 서울서 대학다닌 이가 많지 않았는데 선임 몇몇은 이등병인 내가 한마디하면 잘난체한다고 갈궜다. 사실 내 행동이 굼뜨고 어리바리한 게 있었다만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혼이 났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추운겨울 근무서고 들어와서 수통을 관물대에 넣다가 밑에서 자고있던 분대장 발에 몇방울이 떨어졌다. 한기를 느끼고 분대장은 잠에서 깼고 쌍욕이 이어졌다. 그걸로 6개월간은 계속 혼났던 것 같다. 


첫 유격훈련 날. 선임들은 내게 자신들의 방독면을 군장에 넣으라고 했다. 원래 풀 군장을 싸면 20kg 정도인데 야삽과 각종 간식을 내 군장에 싸고 나니 한 40kg은 되어보였다. 군화가 발에 잘 맞지 않는 상태로 20km 입소 행군을 하니 온통 물집 투성이였다. 훈련장에 도착하고 본격적인 유격이 시작됐는데 발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 타 소대 분대장이 우리 분대장에게 "니네 신입 왜케 쓸모가 없냐"고 했고 그걸로 또 혼났다. 4박5일간 훈련하고 복귀행군 40km가 남았다. 분대장은 "낙오하면 죽여버린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걸었다. 짬당한 방독면을 3개나 차고 죽기살기로 걸었다. 발에 감각이 없었다. 물집이 터져서 양말에 엉겨붙었다. 부대 바로 앞에서 도저히 걷지 못해 낙오하고, 차를 타고 부대로 왔다. 다른 선임들은 "고생했다" "그래도 대단하다"고 했다. 발상태를 보고 연고를 주는 이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 분대장은 "낙오자는 밥도 먹으면 안 된다"며 몇끼를 굶게 했다. 너무 억울하지만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백일 휴가를 나갔는데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갔다. 우리 아부지는 내 발을 보고 가슴을 쳤다. 나는 아부지 걱정할까봐 "원래 이등병 발은 다 이래요" 했다.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왔는데 밤새 앓았다. 발에서 시작된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서 견딜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는데 아부지가 "세환아 괜찮냐"라고 하는데 울컥했다.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물어보는 이가 부대엔 없었다. 너무 몸과 맘이 힘들고 고되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때 아부지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환아 아빠가 아는 사람이 없고 힘이 없어서 정말 미안하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내가 조금만 잘 났어도 네가 이런 꼴은 당하지 않을텐데.." 십년이 넘게 지났는데 그 떨리는 목소리가 생생하다. 괜히 내가 앓는 소리를 했나 싶다가도 아부지께라도 얘기하니 속이 후련했다. 


휴가를 복귀해서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혼났다. 저격수로 뽑혀서 다른부대로 파견갔는데 우리 분대장은 거기까지 쫓아와서 나를 혼냈다. 다른 부대 아저씨들이 "참 쓰레기같은 선임둬서 힘들겠다"고 했다. 참고 견디니 그 분대장은 전역했다. 전역자가 마지막으로 부대를 나갈때 모든 부대원이 도열해서 박수치는 행사가 있었는데 난 가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그가 쓰레기같은 인생을 살길 간절히 기도한다. 아무리 위계서열이 생명인 군대라해도 사람답지 못한 이까지 보듬기엔 내 맘이 좁고 약하다.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017년 10월 사재 1억원을 A상병의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A상병은 강원도 철원의 부대로 복귀하다 인근 사격장에서 날아온 유탄에 맞아 숨졌다. 당시 A상병의 아버지는 언론에 이렇게 밝혔다. “누가 쏜 유탄인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알게 되면 원망할 것이고, 그 병사 또한 얼마나 큰 자책감과 부담을 느낄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 병사도 나처럼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떤 부모의 자식 아니겠습니까.” 


A상병이 힘 있고 ‘빽’ 있는 집의 자녀였다면. 아마 최전방으로 배치되진 않았을 거다. 좋은 보직을 받아 편하게 군 생활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고된 작업을 마치고 위험한 사격장 근처를 지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불의의 위험은 어디에나 도사린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계층 구조에 따라 ‘억울한 일’을 당할 가능성은 현저히 줄거나 늘어난다. 나도, A상병도 너무나 평범한 대한민국의 젊은이이고 군대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 굳이 아들 뿐 아니라 A상병과 우리 아부지가 느꼈을 그 감정, 그 무엇보다 공평해야할 아들의 군생활이 아부지의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달라지는 현실을 보며 체감했을 박탈감과 미안함이 떠오른다.  


최근 나이스그룹 부회장 아들이 황제복무를 하며 "울 아부지 통하면 안되는게 없다"고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최 부회장의 아들 최모 상병은 서울 금천구 소재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 제3여단에서 근무하며 같은 부대 부사관에게 빨래와 음료 배달을 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너무 화가 나고 열 받는다. 최영 부회장은 얼마전 사퇴했는데 "확인되지 않은 보도로 상처를 받고 있다"고 입장을 냈다. 그 입 제발 다물기 바란다. 이땅의 수많은 자랑스런 아부지와 소중한 아들들에게 좌절감을 준 최영 부회장 부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떨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참에 대통령이 나서서 아무리해도 끊어지지 않는 이 병역비리를 발본색원해줬으면 한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로 따지면 우리에게 직접 체감되는 교육과 병역개혁이 더 중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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