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Jul 10. 2020

"예의를 차리라"는 이해찬 대표님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0일 故(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를 찾아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고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화를 냈다. 한 통신사 기자가 이해찬 대표에게 "고인에 대한 의혹이 있는데 당 차원의 대응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 대표는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는 것인가. 최소한 가릴 게 있다. 나쁜 놈의 자식같으니"라며 해당 기자를 3초간 노려보고 자리를 떴다. 또 그놈의 기레기 기더기 타령이 이어지더니 언론개혁의 필요성 운운하고 난리 부르스다. 사람이 죽었는데 기자새끼들은 여전히 사람같지 않다나 뭐라나.


나는 이해찬 대표를 일견 이해했다. 정치적 동지가 사망했고 슬픈 상황에서 그런 의혹을 물으니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 되묻고 싶었다. 그러면 5일장이 끝나고 미투 의혹에 대한 당의 입장을 질문하면 그건 그나마 예의를 차린 것인가? 그때에도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 사람답게 좀 살라"고 힐난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이 너무 충격적이고 안타깝다. 시민사회 뿐 아니라 서울시를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해온 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선택한 것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말한다. "정확히 사실관계가 확인되지도 않은 건 가지고 시비걸지 말라"고. 그런데 박 시장이 자신의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한 사건은 그가 사망함에 따라 수사가 중단되고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실인지 아닌지 경찰 혹은 검찰, 법원에서가릴 방법이 없다. 그냥 묻힐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는 2차 가해의 손가락 속에서 평생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야 할 거다. 고인에 대한 예의 앞에서 산 자가 영원히 죽음같은 지옥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가 이해찬 대표에게 질문한 거다. "당 차원의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근데 이게 예의 운운할 문제인가? 나쁜 자식이라고 욕을 쳐먹을 사안인가? 기자는 인간 이해찬이 아니고 180석 거대여당의 대표 이해찬에게 공적으로 질문 한 거다. 박원순의 친구 이해찬이 아니고 민주당 대표로서 민주당 소속이던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정국을 이끌어가야할 당의 수장에게 물은 것이다. 그런데 예의를 갖추라니.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성에 대한 예의는 도대체 어디로 간건가. 


친 정부 커뮤니티엔 여비서의 신상을 털어 혼내줘야 한다는 빻은 글이 쏟아지고, 무슨 꽃뱀이니 계획된 사건이니 하는 잡소리도 넘쳐난다. 아무리 박 시장의 공이 크고 친구가 많고 하더라도 너무하지 않은가. 한 사람의 죽음 앞에 모든 이는 숙연해야 마땅하다. 다만 고인에 대한 예의라는 말로 퉁치기엔 여권이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취재를 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주로 죽음과 관련한 취재를 할 때다. 세월호 당시 팽목항을 바라보며 슬픔에 빠진 유족에게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 근데 아드님은 어떤 분이었나요’라고 묻는 게 2년차 병아리 기자였던 내 임무였다. 하기 싫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비치기 싫었다.


그러나 현장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분위기를 전달하고, 유족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며, 정부의 무능이 도를 넘었다는 내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버틴 건 내 짧은 기사가 상처받은 이에게 힘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당시 현장을 누비던 젊은 기자 모두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일부 유족들의 이야기를 담아 기사를 썼고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 손을 꼭 잡고 함께 식사를 했던 유족도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아닌, 당에서 왔다는 이가 나서서 "기레기들은 꺼져라. 예의를 갖춰라"라고 하며 내 수첩을 빼앗아 던지고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예의인가? 예의의 정도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박원순 시장 관련 브리핑에서 '어떻게 죽었느냐'고 묻는 정신나간 보수 유튜버 같은 치들은 당연히 단죄하는 게 맞다. 박 시장 사망장소를 찾아가서 라이브 방송을 하는 가로세로연구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그 정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예의라는 것은 얼마나 어떻게 갖춰야 하는 것인가.


나는 욕을 쳐먹더라도 질문을 하는 게 기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불법이 아니라면, 그리도 제 3자가 봐도 심각한 도덕적 결함을 내포한 취재방식이 아니라면 취재하고 질문해야 한다. 굳이 국민적 알권리 운운할 필요도 없다. 기자는 눈치보지 말고 질문하고, 끊임없이 묻고, 아픈 곳을 조망해 도려내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다. 충분히 물어볼 만한 질문이라면 쫄지 말고 질문해야 한다. 장례 기간 도중 민감한 질문을 한 것은 일부 지지자에겐 금수같은 행동이겠다만 피해 여성의 인권을 고민하는 쪽에 있어서는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니라 기자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액션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당 대표로부터 '나쁜자식'이라고 욕을 들어먹을 짓이 결코 아니었다는 뜻이다. 


어차피 본인이 원하는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레기 기더기 하는 세상인데 뭐. 박원순 시장님이 영면하시길 기도하고, 명복을 빈다. 다만 밑도끝도 없이 예의 기더기 일베 토착왜구 운운하며 본인들만 사람냄새나는 척 하는 치들에게 일일이 고개숙이며 살 바엔 기자를 그만두는 게 낫겠다. 미투 의혹 해명하라고 하면 정의당도 미래통합당 한패가 되는 그 편협하고 몰지각한 사고방식 하에서는 예의 따위 차릴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진짜 예의없는 쪽이 도대체 어디인지 한심할 뿐..

매거진의 이전글 노영민이 보증한 부동산 강남 불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