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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ug 02. 2020

'후배권력'이 도대체 무슨 말이죠


오늘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가 사용하신 '후배권력' 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후배'와 '권력'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어울리는 성격의 단어가 아니라서다. 후배권력이라고 발화하는 이는 분명 선배일텐데, 선배가 후배보다 힘이 없는 게 말이 되는가. 아마 후배 여럿이 모이면 회사 내 권력이 생기고, 선배들도 예전처럼 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 괴랄한 용어를 손수 창조하신 듯하다. 대다수의 후배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진실을 위해 뛰는 자신의 노력이 후배들의 반대에 부딪쳐 산화하고 있다는 게 글의 요지였다.


그 선배님이 후배권력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지난 29일 출고된 [단독] 박재동 화백 ‘치마 밑으로 손 넣은 사람에 또 주례 부탁하나' 라는 제목의 기사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을 참고해 사실관계를 따져보자.  


강진구 기자는 박재동 화백과 성추행 피해자인 이아무개 작가가 통화한 녹취록과 미투 의혹 제기 직후 이 작가와 동료작가들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을 보도했다. 2년 전 SBS가 보도한 박 화백 성추행 의혹 보도를 반박할 만한 증거가 나왔다는 거였다. 피해자가 박 화백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에도 박 화백에게 계속 주례를 부탁했다는 거다. '이러한 정황 증거로 미뤄봤을때 성추행이 없었을 것' 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피어나오는 기사였다. 피해자는 이에 대해 '처음 당했을때는 성추행인지 몰랐지만 박 화백이 계속해서 추행을 했다. 인지하기 전까지 주례를 부탁했던 것' 이라고 했다.


강진구 기자는 그날 오전 6시 해당 기사를 출고했다. 오전 10시30분쯤 편집국장이 해당 기자분께 전화해 기사를 삭제한다고 했다. 몇몇 다른 기자들로부터 '2차 가해의 위험성이 있다'는 우려가 전달됐다는 것이다.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고 한다. 피해자 반론의 분량이 가해자 쪽 주장에 비해 너무 적고, 2012년 제정된 경향신문 성범죄보도준칙에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다. 강진구 기자는 "이제는 후배권력들이 반대하는 이유로 인터넷기사마저 삭제당한 현 상황에서 기자로서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제 3자의 입장에선 이런 전개를 두고 봤을 때 도대체 후배권력이 어디서 발동했다는 건지 모르겠다. 일선 기자가 기사를 쓰면 팀장-데스크-부장-부국장(에디터)-국장을 거치며 출고된다. 보통은 부장까지 가는데 민감한 기사는 여러명이 돌려가며 보고 고치거나 의견을 낸다. 기자의 신념과 다수의 의견이 충돌할 수 있지만 동시에 독선과 아집을 잠시 내려놓고 혼자만의 정의가 폭주하는 걸 막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우리 회사 코로나 게이클럽 기사를 두고서도 연차와 상관없이 수많은 논의와 토론이 이뤄졌다.


난 강진구 기자를 잘은 모르지만 숱한 특종으로 수많은 기자상을 휩쓰신 민완기자시라고 들었다. 그러니 자신의 취재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또 신념도 있으신 분이리라 짐작한다. 멋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나는 잘 듣는 것도 좋은 기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맞다, 나만 옳다는 자신감은 곧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장막이 된다. 정권이나 자본의 영향으로 삭제된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요즘 화두인 성 관련 기사에 대해 여러 기자들이 우려를 표하면 "아 그렇구나. 이런 의견도 맞겠다" 하고 피해자쪽 반론을 더 넣거나 몇몇 단정적인 표현을 빼거나 제목을 고치거나 하면 기사가 삭제되진 않았을 것이다. 고작 8년차 꼬꼬마 기자인 나도 알 법한 해법이다. 소통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애꿎은 후배들을 권력집단으로 몰아가는 게 과연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까.


검찰개혁 국면에서 정파에 휩쓸리지 않는 품격을 보여준 경향신문을 공격하고 싶은 이들이 강진구 기자에게 보내는 환호를 보며 묻고 싶다. 선배님, 이게 진정 원하던 그림이셨나요? 본인 기사의 질은 전혀 숙고하지않고 무작정 후배와 회사에게 칼 꽂으면 참기자가 되는 건가요?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페이스북 글 전문>


페이스북을 통해 큰 힘을 얻습니다. 


경향신문은 박재동 화백 가짜 미투의혹 기사 삭제에서 보여지듯 현재 소위 ‘후배권력’에 의해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조중동경’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있음에도 위기의 심각성을 모릅니다. 사내 게시판에 여러차례 문제를 제기해봤지만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고참기자들은 공연히 후배권력에 저항해봐야 ‘꼰데’소리 듣고 나만 피곤해진다며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고요. 

 

얼마전 진혜원 검사 개인 페이스북 글에 경향신문이 집단성명으로 과잉대응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사태때 검찰수뇌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찍힌 검사에 대검이 감찰을 계획하고 있다면 ‘보복성 감찰’에 초점을 맞추고 취재를 하는게 정상 아닌가요. 하지만 경향신문 집단성명은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가 개인비리로 감찰을 받으면 그자체로 보도가치가 있다’였습니다.


정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진검사의 표적이 된 후배 개인이 상처를 받을까봐 대놓고 말은 못하고 사내게시판에 “집단성명에서 제 이름을 빼달라”고 소심한 저항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고참기자 1명이 동조의견을 밝혔을뿐 아무런 반성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것은 치졸한 보복이었죠. 진혜원 검사 사건후 KT&G가 신약사기 보도와 관련해 제 급여에 가압류를 신청해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편집국장이 마찬가지로 경향신문 이름으로 집단성명을 발표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으나 하루만에 취소했습니다.


이유는 첫째가 법원에서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고, 둘째가 후배들이 반대한다는 거였습니다. 후배들이 반대한 이유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죠. 진혜원 검사 사건때 동료 고통 모른척한 사람 위해 회사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할 수 없다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기자들이 아무런 고민없이 법원이 내린 결정이라는 이유로 순응적태도를 보인것도 그렇고 후배권력의 치졸함과 저열한 인식수준을 확인한 씁쓸한 시간이었습니다.

그후로도 후배권력의 전횡은 중단될줄 모릅니다. KT&G 신약사기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편집국장은 후배들 의견이라는 이유로 취재 및 기사작성 권한을 후배기자들에게 넘기라고 지시했습니다. KT&G와 소송 진행중인 저는 소송 당사자기 때문에 직접 기사를 작성하는게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알고보니 ‘강진구는 소송당사자가 때문에 후속기사를 쓰면 안된다’는 KT&G홍보실에서 개발한 논리와 동일하더군요. 안타깝게도 KT&G 신약사기 사건은 이런 연유로 경찰이 수사진행중임에도 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수사를 취재하시겠다는 후배기자님들에게 사건을 설명해주겠다고 제안한지 두달이 넘어가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후로도 제가 발제한 기사는 번번히 ‘킬’이 되고 있습니다. 검사6명이 진범이 따로 있다는 피의자 진술을 무시하고 진범을 바꿔치기 한 사연은 근 1년동안 공을 들인 기사였고 윤석열 항명파동 정국에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아이템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 얘기를 너무 길게 썼다’는 이유로 킬이 되고 결국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박재동 가짜 미투의혹 기사는 어차피 지면에는 반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아예 처음부터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전송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기사를 전송했다고 타박이네요. 뭘 어쩌라는 건지. 이제는 후배권력들이 반대하는 이유로 인터넷 기사 마저 삭제당한 현 상황에서 기자로서 심한 무력감을 느낍니다.


4년전 제가 탐사보도팀장을 맡으면서 후배들과 ‘안봉근 대출외압’ 기사를 놓고 심하게 다툰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당신들은 완성된 기자가 아니다’고 얘기한적이 있습니다. 후배권력앞에서 큰 ‘실언’을 한 셈이죠. 저는 그 사건을 계기로 후배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결국 탐사보도팀장을 내려놓고 지금은 혼자서 1인 탐사기자로 뛰고 있지만 지금도 그때 발언을 후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완성된 기자가 아니다’는 제 호통에 불만을 가졌던 후배는 그후 조국사태 당시 가장 많이 1면에 단독보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는 여러분이 아시는바와 같습니다.


아테네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소크라테스에게 사약을 내리는 광경을 보고 민주정 대신 철인정치를 고민한 플라톤의 심정이 절절이 이해가 되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오래된 TV광고를 통해서도 밝혀듯이 사원주주회사인 경향신문이 오직 두려워하는 것은 독자입니다. 후배권력에 맞설 유일한 힘은 독자권력입니다. 부디 애정어린 죽비로 경향신문이 다시 정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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