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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Sep 13. 2020

MBC 필기시험 유감


한창 언론사 시험을 볼때 동아일보 필기시험장에 갔는데 '공지영 소고'가 논제로 나왔다. 고민이 됐다. 보수 언론과 공지영이 사이가 안 좋은 건 모두가 다 아니까. 왠지 공지영을 까야 붙을 것 같았는데 한번 더 생각했다. 지원자 대부분이 동아의 성향을 의식해 공지영을 비판할테니 나는 공지영을 옹호하면 차별화 되지 않을까. 조지 오웰의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쓸 때에는 한결같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는 구절로 시작해 공지영을 옹호했고 필기는 어떻게 통과했다.


문화일보 최종면접은 무려 3번을 봤는데 딱 자리에 앉자마자 기가 죽었다. 사장님을 포함해 7명의 면접관을 앞에두고 혼자서 40분간 질답을 했다. 첫 질문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였다. 동아일보 시험 때 기억이 났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문화도 보수언론으로 분류되니까 어찌보면 도박이었는데 1차 면접은 합격했다.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굳이 지원자가 언론사의 논조에 맞출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나름의 논리와 근거와 뚝심이 있다면 내 소신을 확실히 드러내는 게 더 좋은 어필이 되지 않을까.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우리 편을 뽑는 건 너무 저열하다. 하물며 다양한 사회를 담아야 할 언론사에서 그래서야 쓰겠나.  


오늘 있었던 MBC 필기시험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은데 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논술시험 논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문제 제기자를 피해자로 칭해야 하는가, 피해 호소자라고 칭해야 하는가(제3의 호칭도 상관없음)' 였다. 


공지영 혹은 박정희 평가와 다르게 이 건은 현재 서울시청 관계자들의 방조 혐의 등에 대한 경찰 수사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판단을 내릴만한 근거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가 2차 가해라는 말도 많았다. 대부분이 확실한 근거 대신 정파와 친소관계에 따라 용어를 다르게 불렀다. 실제로 오늘 MBC 기자 시험을 보고 온 지원자들 상당수가 "논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아랑에 증언을 올리고 있다. 


2차 필기 시험의 논제는 해당 언론사가 현재 가장 어떤 이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대개 1년에 한번 진행되는 그 소중한 시험의 논제를 굳이 저렇게 민감하고 논란이 될 만한 사안으로 정한 MBC의 저의가 뭘까. 부디 서슬퍼런 논리로 언론사의 노골적인 편가르기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피해자라 부르는 게 맞다"고 적은 지원자가 1명이라도 최종합격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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