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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11. 2020

생각이 다른 당신도 행복한 연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913606


머리가 어지러운 날엔 2년 전 이 칼럼을 꺼내 읽는다. 사정상 일본 여행을 못가게 된 필자가 같은 이름의 사람을 휴학생에게 항공권을 양도했다. 이 과정을 페이스북으로 공지했는데 수많은 이들이 각자 버스 승차권이나 일본현지 여행패스 등을 보내줬다. 취업 준비에 지친 이 휴학생은 세상이 너무나 따뜻한 걸 알게됐다며 자신도 열심히 노력해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베풀겠다고 다짐하며 칼럼이 끝난다. 너무 정겹고 고마워서 오히려 한편의 판타지 같은 이 글을 한글자 한글자 곱씹으면 덩달아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 회사서 연재하는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코너가 있다. 매우 드라마틱한 사연은 아니다. 한 아파트에 사는 수험생 언니오빠를 위해 엘베에 사탕을 놓아둔 어린이나 소방관에게 감사 편지를 전한 익명의 기부가 등의 이야기를 전한다. 난 항상 이상했는데 이 '아살세'에는 댓글이 엄청나게 많이 달린다.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싸우고 죽이고 조롱하는 뉴스 가운데 가뭄의 단비네요' '그래도 살만한 세상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식이다. 


코로나19를 포함해 여러 이유로 살 맛 안나는 세상을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소소하지만 따뜻한 남의 이야기를 읽고 공유하며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려 말하면 사람들이 일상에서 따뜻함을 잘 못 느끼고 있다는 말이겠다.


확증 편향이 지배한 SNS 세상에선 더더욱 그렇다. 검찰개혁을 두고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생각이 다른 이와 토론하다가 결국 인신공격을 하고 차단하고 우리편으로 친구를 꾸리며 확증편향을 확대 재생산한다. 요새 들어선 페이스북을 포함한 SNS가 대화의 가능성을 오히려 차단해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 같다. 나와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가 판이하더라도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해괴한 논리에 열광하면서도 기부와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며 인정할 건 인정하는 관용이 필요한데 그런게 전혀 없어서 결국 우리는 좋은 사람을 사귀고 만나고 대화할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사실 우리 편만 잘살면 도대체 무슨 재미인가 싶은데 각 이슈를 두고 건널 수 없는 강이 너무나 깊고 험난하니 언론이나 정치권이 신년마다 부르짖는 사회통합은 그저 지난할 뿐이다.


어차피 완벽한 통합은 곧 전체주의이자 독재라고 해도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여유, 그리고 다른 생각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신감조차 사라지는 현실은 너무 암울하다. 결국 니편 내편 나누고 피아 식별에만 급급하니 과거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다. 나는 주진우 기자를 두고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관계를 밝히라며 진보 진영이 힘을 모아 저격하는 것을 두고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MB에 맞서서 함께 싸운 진보 진영이 둘로 나눠져 한쪽은 주진우에게 배신자라 욕하고 다른 한쪽은 그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고 맞선다.  


어느새 연말이 됐다. 코로나19로 흉흉해서 연말 분위기도 잘 안난다. 사람과 온기가 그리운 이때 좀 따뜻한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온라인에서 누군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고 또 맞대응하고 싸우고 할 시간에 고개를 돌려 오프라인의 소중한 이들을 한번 더 생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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