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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14. 2020

'두 교황'과 종교라는 것


사람들은 세속에 지쳐서, 또 사람이 무서워서 종교를 찾는다. 일전에 마르크스는 종교를 두고 '인민의 아편'이라 혹평했다. 그래도 내 마음둘 곳을 찾고 기도하고 사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우연히 평일 오후에 한 대형교회 예배당을 찾은 적이 있다. 예배 시간도 아닌데 사람이 참 많았다. 넓디 넓은 예배당에 남녀노소가 홀로 혹은 2~3명씩 무리를 지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이도 보였다. 굳이 교회나 절, 모스크를 찾지 못하더라도 코로나19를 포함한 고난들로 힘들고 지친 이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신께 호소하는 걸 누가 욕할 수 있나.


그렇다면 아픔을 가진 이들을 신에게로 제대로 이끌어 줄 목회자가 절실하다. 아픈 이들과 신의 매개에서 올바른 삶의 방향과 사고 방식을 가르쳐주고, 흔들리기 쉬운 인간의 마음을 다잡으며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그런 인물 말이다. 목회자가 흑심을 품고 세속의 마음을 가지면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모두 다 똑같이 된다. 상처를 받고, 종교를 떠날 수도 있다. 아픔을 치유하는 목회자는 그래서 일반적인 직업인과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신과 소통하며 성찰과 고뇌를 거치며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아무나 할수 있는 작업이 아니고, 아무나 해서도 안 된다.



난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을 보며 많이 울었다. 실화에 기반했대도 픽션일 것이다. 과장된 측면도 많을 터다. 그래도 내가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목회자의 모습이 보여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는 신과 교황, 목회자로서의 고뇌를 그린 영화를 넘어 인간의 삶과 행동, 무엇이 옳은 삶의 방식인지 담담하게 되묻고 있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회의) 때 마주친 적 있는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앤서니 홉킨스)와 그다음 교황 프란치스코(조너선 프라이스)가 제대로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면 어떤 내용이 오갔을까를 상상해서 그린 작품이다.


격식과 예절을 중시하는 꽉 막힌 추기경 라칭거가 교황이 된다. 2005년 교황으로 추대된 베네딕토 16세다. 수년 뒤 수년 뒤 교회의 발전 방향에 회의를 느낀 호르헤 베르고글리오(후 프란치스코 교황)가 사직서를 내러 교황을 찾아오는 것부터 영화가 흥미로워진다. 상상에 기반한 대화들이 오고간다.


대화는 가볍지 않다. 보수파와 개혁파가 각자의 신념을 걸고 공방을 벌인다. 그냥 두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거나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주제가 묵직하다. 긴장감이 화면을 타고 전해진다. "변화는 타협이다." "주님이 주신 삶은 변화다." 교리가 시대에 맞게 변화해 왔다는 베르고글리오와 주님이 주신 진리는 영원하다는 라칭거가 맞선다. 종국에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단계에 이른다. 사랑하는 이를 뿌리치면서 까지 접어든 이 목회자라는 삶. 수십년에 이르는 고뇌의 세월은 그 두명의 할아버지를 외롭게 했다. 주님만 보고 달려온 지난했던 인생이 그들의 주름살과 검버섯에 알알이 새겨져 있다.


'두 교황'은 서로 너무 다른 두 인물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장면을 말없이 응시한다. 시스티나 성당 안쪽 작은 방에서 피자를 먹으며 서로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부분에서 말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 교황도 죄를 짓는다. 교황도 외롭다. 교황도 아프고, 교황도 세속에서 부는 바람에 마음이 일렁인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신을 따르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완전하지 않고 실수도 한다. 그렇게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것이다. 목회자는 신도에게서 배우고, 신도는 다른 신도를 보며 배운다. 믿지 않는 이에게서도 배울수 있다. 그 용서와 화해의 여정이 영화 내내 마음에 박혔다. 참 고마운 영화였다.




호르헤의 모델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추기경 시절 화려한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거주했다.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기 값을 빈민들에게 모두 나눠주기도 했다. 운전기사도 따로 두지 않았다. 이동은 거의 항상 사복 차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식사는 직접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손수 요리해서 먹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선출되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처럼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 놓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하는 소탈함을 보였다.


그를 보면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가 떠오른다. 공교롭게 주인공 이름도 프랜치스다! 그는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가지만 골칫덩이다. 그의 친구 '안셀모 밀리'는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금세 교계의 스타가 된다.


이 둘은 정확히 나뉜다.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 민중과 함께하는 신앙과 그들만의 신앙으로. 창녀에게 하나님을 전파하고, 흑사병이 창궐하는 중국까지 건너가 온몸을 다해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프랜치스와 교계 주류에 서서 높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큰 예배당을 차려 대주교까지 오른 안셀모 밀리, 과연 신은 누구를 칭찬하실까. 교황이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프란치스코는 낮은 자를 향한 섬김을 계속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슬람 등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신앙이 없다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고 했다. 난 항상 의문이 컸다. 아픈 사람, 힘든 이를 도우며 평생을 바쳤는데 기독교가 아니라면 지옥에 가는 것인지. 교회사람들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하나님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 천국에 가는게 맞는 일 아닌가. 소탈하고 격의 없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전세계적인 불평등과 난민 문제, 인간의 고귀함을 짓밟은 자본의 문제점에 대해 더 많이 설파해주시기를 소망한다.




최근 한 언론에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담임목사 인터뷰가 실렸다. 17년 전 이 목사가 분당의 송림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목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교인 수는 30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2만 명을 훌쩍 넘는다. 그는 성장에만 치우지지 않고 주일 설교를 제외하면 ‘묵상과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 인터뷰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목사의 정답은 물질적인 목표를 세우고, 사람 많은 교회 세워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고 옥한음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목사의 정답은 ‘예수를 닮아감’에 있다고 하셨다. 옥 목사님은 ‘말구유에서 시작해 십자가에서 끝나는 게 목사의 삶’이라고 일러주셨다. 그게 ‘목사의 정답’이다. 만약 대형교회는 성공했고, 작은 개척교회는 실패한 거라면 예수님이야말로 낙오자가 아니겠는가."


유독 흉흉한 일이 많았던 2020년이었다. 일부 재벌가의 갑질은 여전했고, ‘미투(ME TOO)’ 운동으로 성차별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부실 공사로 젊은 청춘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법 농단 사태로 국민적 충격이 컸고, 세금을 빼돌린 공무원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언론을 장식했다. 고용지표는 계속 하락세고, 자영업자는 살기 힘들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19로 우리네 삶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생이 점점 더 팍팍해져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새해에는 다시 희망을 품는다. 프란치스코 교황같은 훌륭한 목회자, 극중 호르헤 같은 종교인들이 사하라 사막같이 말라가는 세태에 빛을 던져주시길 바란다. 신의 교리란 막연한 경전에만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직접 행하는 삶과 행동에서 은은하게 뿜어지는 것이다. 좋은 교회, 좋은 절, 좋은 사원을 이끄는 훌륭한 종교인이 더욱 더 많아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당신도 넷플릭스 '두 교황'을 통해 험난한 시대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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