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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27. 2020

그래도 김의겸을 응원하는 이유


나는 김의겸 대변인과 거의 같은 시기에 청와대 출입기자가 됐다. 2018년 3월 이었다. 그는 의욕적으로 새벽 6시30분에 브리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평창올림픽에 참석하면서 남북 대화가 무르익을 시기였고, 청와대의 의욕은 대단했다. 기자에서 대변인으로 전직한 그의 의욕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나는 코피를 쏟아가며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김의겸 대변인에게 거의 매일 전화를 했다. 뚜루루 신호음이 울리면 피곤한 목소리의 그가 받았다. "박세환씨 오늘은 또 뭡니까" 피곤한 목소리의 김 대변인과 얘기를 나누며 타사에 나온 기사를 확인하고, 오늘 대통령의 일정을 물어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김의겸 대변인의 외양은 칼같다.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올 것 같다. 나도 처음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기자들이 좀 이상한 질문을 하면 반박했다. 때로는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했다. JTBC, TV조선과 함께 최순실 국정농단 기사를 제일 먼저 쓴 기자. 그래서 대변인보다는 언론계 대선배라는 느낌이 여전히 강했다. 그렇게 6개월여가 흘렀다.


하루는 춘추관 정례브리핑 당시 민정수석실 관련 질문을 했다. 법조팀에서 대신 해달라고 물어온 것이라 좀 전문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는데 김 대변인은 놀란 눈치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경복궁 쪽에서 저녁에 1차로 술을 마시고 나오는데 청와대 사람들과 지나가던 김 대변인을 마주쳤다. 그도 약간 술을 마신듯 했는데 저 멀리서 쿵쿵대며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잡고 "머리 깎았어?"라고 물어봤다. 그가 내게 이렇게 친근하게 말을 한게 처음이라 좀 놀랐는데 옆에서 한 참모가 "오늘 질문 엄청 유식해보이더라"고 했다. 그러자 김 대변인은 웃으면서 "맞아. 자기 회사 기사라고 엄청 물어보더라고. 평소에나 그렇게좀 하지" 라고 했다. 난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냥 대단한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함께 호흡하는 후배 혹은 사람으로 대해주는 게 좋았다. 특히 김 대변인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아 좋았다.



행복주택 취재를 갔을 때다. 춘추관 풀러로, 펜기자는 나만 갔다. 대통령 참석 행사라 철저히 출입이 통제됐고 나와 김 대변인, 김현미 당시 국토부장관과 LH 사장, 그리고 대통령만 행복주택에 사는 부부네 집에 들어갔다. 저녁 뉴스 전에 풀을 해야 했는데 에어컨이 고장나서 한여름 중에 땀이 뻘뻘났다. 대통령 말소리는 제대로 안들리고 가슴이 터질것 같았는데 행사가 끝나고 나오다가 모르고 김현미 장관 신발을 발로 뻥 차버렸다. 어이쿠 어이쿠 하는 가운데 김 대변인이 뛰어가더니 신발을 주워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박세환씨 괜찮아? 고생이 많네"하고 대통령을 따라서 사라졌다. 별거 아닌 해프닝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김의겸 대변인이 생각보단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119442


2018년 8월 한 국민이 리비아에서 피랍당했는데 김 대변인의 논평을 가지고 원색적으로 비난한적이 있었다. 휴가였던 김 대변인이 쓴 논평이었는데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너무 문학적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참모들은 이 기사 때문에 김 대변인이 너무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에둘러 제보해왔다. 그래도 그는 내게 전화나 문자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신도 좀 논평이 그런 구석이 있는것 같아서, 틀린 말이 아니어서 전화 안했다며 웃었다.


그는 아랫 사람을 잘 챙겼다. 자신과 일하는 동료뿐 아니라 젊은 기자들에게 참 따뜻했다. 나는 출입기자를 두고 1, 2진을 나누지 않아서 김의겸 대변인이 좋았다. 열심히 하는 기자를 인정하고 뭐라도 새롭게 해보려고 하는 젊은 기자들을 그래도 챙겨주려고 했던 것 같다. 진보 매체 출신인 그는 조선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 매체와 각을 세웠지만 기자 개개인과는 척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청와대 2진 기자 여럿이서 그가 살고 있는 대경빌라에 간 적이 있다. 보수매체 기자들도 많았다.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한 기자가 "내일도 대변인님한테 안좋은 기사가 나간다"고 실토하자 그는 그냥 웃어 넘겼다. 각자 발담은 매체가 다르고, 처한 입장이 다르지만 그래도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쓴소리 할건 하되 우리 사회를 좀더 바람직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변인이 했던 백블에는 틀린 것도 있었고, 홍보 일색의 문구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취재하려는 느낌이 있었다. 발로 뛰는 대변인이었다. 그냥 청와대 각 부서가 주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화하기보다 본인 자신이 궁금해서 더 취재하고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풀건 풀고 막을건 막으면서 언론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잘 정립해 나갔던 것 같다.



그래도 자주 싸웠다.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는 어른과 싸웠다는 표현이 웃기지만 가끔 내가 삐졌고 그도 몇번 삐진 것 같은 기색이 있었다. 뭐 하나 물어보면 "나무를 보지말고 숲을 보라"고 했었는데 내가 바로 "나무랑 숲은 누가정할까요"라고 반박한 기억도 난다. 통화 문자 기록을 살펴보니 하루에 무려 40통 넘게 전화를 건적도 있었다. 그렇게 1년간 고운정 미운정이 단단히 박혔다.


흑석동 투기 사건이 터진 뒤 그는 청와대를 떠났다. 실드 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전 국민이 부동산에 허덕이고 있는데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투기를 하다니. 다만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보니 김의겸의 투기는 어찌보면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 정도다. 그는 흑석동 집을 매각했고, 차익은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정확히 기부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청와대 참모들이 솔선수범하자니까 바로 그만두고 웃으며 나간 김조원 수석도 있는데, 라는 대목에 이르면 김의겸에 대한 마음이 짠해지는 건 또 어쩔수가 없나보다. 나는 매번 논란이 터질때마다 지인들이 우르르 나서서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실드 치는걸 극혐해왔는데 김의겸 사태 때는 나도 모르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어쩔수 없는 듯 하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면 어쩌면 김 대변인이 의원직을 승계할 가능성도 있다. 오늘 하루종일 김 대변인 이름이 포털에 오르내렸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거짓말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부동산 사건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나는 가끔 김 대변인에게 전화나 문자, 카톡을 한다. 매사에 당당하고 철두철미했던 그는 많이 힘든 모양이다. 연락할 때마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라고 한다. 지난 5월 그의 생일날 안부 문자를 했더니 '고마워요'라고 답이 왔다. 같은 달 술취해서 저녁에 전화했더니 '잠시 친구를 만나서 전화를 못받아서 미안하다'고 왔다.   


난 아직도 솔직히 그가 잘 됐으면 좋겠다. 부동산 대란 가운데 그의 선택으로 박탈감을 느낀 국민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충분히 고민하고 다시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실수는 누구나 하고, 진심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법이니까. 다주택자 면서도 뻔뻔하게 숨기며 잘 사는 공직자들, 국회의원들 즐비한데 그나마 염치와 양심이 있던 김의겸이 재기해서 실수한 만큼 사회에 갚는 모습을 꼭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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