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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ug 08. 2021

쓸데없는 질문


최근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되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여야 5당 대표를 초청해 오찬을 한뒤 진행된 브리핑 전문을 입수했다고 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진행한 브리핑 가운데 기자들의 첫 질문은 오찬 메뉴였다. 고발뉴스는 '청와대 기자단이 고작 물어본다는 게 메뉴인가' '기레기들도 참 한심하다'고 낄낄댔다. 


저 질문을 한 건 나였다. '메뉴가 뭐 나왔는지 좀 알려달라'고 질문했다. 박 대변인은 '유자 마늘 소스의 새우말이 냉채, 밤죽(밤응이), 미나리 향의 고추장 소스 도미찜, 오색 고명을 올린 전복 갈비찜, 비빔밥과 아욱된장국, 나박김치, 백김치, 계절 과일과 오미자 냉채'라고 답했다. 다시 질문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요'라고. 박 대변인은 '여야가 함께 모일 때는 비빔밥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아마도 그런 의미를 담아서 비빔밥으로 정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내 질문 이후에는 대통령과 5당 대표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한 질답이 10여분간 이어졌다. 오찬을 마치고 각 정당이 브리핑 한 내용에 대한 의미를 묻는 질문이 다수였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라서 당 차원의 당부를 하는 문 대통령의 워딩도 집중 관심을 받았다. 메뉴 질문만 나온게 아니고, 5당 대표 회동과 관련한 수십개의 질문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난 도대체 이 메뉴를 묻는 질문이 왜 폄하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크랩케이크로 오찬을 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앞선 한일회담에서 햄버거 오찬을 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모든 언론은 이 오찬 메뉴를 토대로 일본보다 한국이 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해석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모든 행사를 꼼꼼히 준비하기 때문에 오찬 혹은 만찬 메뉴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담겨있다. 탁현민 씨가 의전비서관이 된 이후로 이런 기류는 더 심해진 것 같다. 나쁘다는 게 아니고, 그만큼 일거수일투족에 청와대가 신경쓴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누구와 뭘 먹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어차피 대통령이 나눈 대화는 국가안보에 준해 모든게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라도 더 취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가. 실제로 저날 모든 언론은 기사 말미에 오찬메뉴를 넣었다. 뻔하지만 비빔밥을 통해 화합을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러니 청와대 측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메뉴 하나하나를 언급하며 성심성의껏 답하는 것이다. 


고발뉴스의 해당 방송편을 보면 이상호 기자뿐 아니라 스탭과 아나운서로 보이는 여성까지 이 질문을 비웃으며 하하호호 했는데 난 이게 청와대 기자단이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를 비웃는 것으로 느껴졌다. 본인들이 오면 어떤 질문을 할건지 궁금하다. 어차피 민감한 사안에 대해 청와대는 최대한 로키모드를 유지하며 답을 안하려고 하는데 어떤 신박하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관계자의 답변을 어떻게 끌어낼지 정말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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