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Mar 22. 2022

누구를 위한 단독인가


짧게 근황 소개부터. 2월부터 청와대를 떠나 더불어민주당으로 파견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유세를 따라다니고 민주당의 선거 전략을 취재했다. 그러다 선거가 끝났고, 국민의힘이 승리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청와대를 영영 떠나 국민의힘을 맡게 됐다. 불과 한달 사이에 청와대->민주당->국민의힘으로 출입처가 달라졌다. 하루만에 여당이 야당이 되고 세상이 달라졌다. 나의 세상도 달라졌다. 


정당팀 기자로서 대선을 치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한달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후보의 메시지, 후보의 SNS, 후보의 말과 표정, 옷차림 하나하나가 다 전쟁이었다. 여의도연구원과 민주연구원이 각자 치열하게 여론조사를 돌리고 보고하면 각 캠프 전략기획팀은 어떤 기조로 선거 운동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유세팀과 TV토론팀, 후보 수행팀과 배우자팀, 정책본부 등도 치열하게 돌아갔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양 측은 최선을 다한 선거였다. 


수차례 이재명 유세를 따라다니며 그의 연설을 들었다. 짧으면 20분 길면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그의 말을 받아쳤다. 그는 참 말을 잘했다. 민주당의 아웃사이더였으나 유능한 행정가로서 우뚝 선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했다. 어머니 혹은 유년시절 얘기를 꺼낼 때면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힘들었던 나날을 딛고, 자신과 같은 고학생들이 없도록 하고 싶다는 대목에선 공감이 갔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비록 이재명은 졌지만, 그가 밤을 새며 구상했을 그 단어 하나하나는 곱씹어 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가 종료되자 새로운 고난이 시작됐다. 선배들이 항상 겁을 줬던 인수위가 시작됐다. 온 국민의 관심이 인수위에 쏠려있으니 사소한 거리 하나라도 챙겨야 한다고 했다. 모든 언론사가 경쟁에 돌입했고 그 결과 선거 이후 매일매일 적어도 30개, 많게는 50개가 넘는 단독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단독의 바다라고 할 법하다. 


그 흔한 단독도 못하는 나로서는 할말이 많지 않으나, 단독이 아닌 단독기사가 95%가 넘는다. 기사를 뜯어보면 제대로 확인이 안됐는데 지르는 기사가 태반인 듯 하다. 당연히 인수위 쪽에서는 정확히 확인을 안해주겠지만 '틀리면 말고' 식의 묻지마 기사가 신문과 방송, 통신과 인터넷 상에 난무하고 있다. 제대로 확인도 안 되는 기사들이다.



물론 일부 기사는 맞는 이야기일 터다. 인수위가 맞는 기사를 틀렸다는 식으로 단도리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다만 나는 정부 출범 직전까지 이어지는 이 무한 경쟁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민의 알권리를 명목을 가장한 언론사들의 기세 싸움이 원활한 인수인계를 해치고 국민에게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열심히 인수위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물어보고, 또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전화하고 또 묻고 하는 기자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진 않다만 부정확한 정보가 팽배하고, 또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기사도 질러야 하는 지금 같은 시즌을 보면 기자질에 대한 회의가 커진다.


인수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이름 맞추기 놀이가 또 시작될 것이다.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이름 맞추기 전쟁이 펼쳐질 거다. 물론 어떤 인물이 어떤 자리를 맡느냐에 따라 윤석열정부의 국정철학이 드러나기에 중요한 취재다. 


그럼에도 공허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이른바 윤핵관 들이 대거 청와대나 내각 요직에 기용될 터다. 이재명캠프에서 일했거나 민주당 쪽 인사를 협치 차원에서 등용하지 않는 이상 그런 자리 맞추기가 그리 중요한가 싶은 생각도 든다. 


윤석열의 공약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실현 가능성과 법적 변수 등을 짚는 차분하지만 중요한 기사는 관심에서 밀리고, 단발성 혹은 휘발성 기사들이 단독을 달고 범람하는 이 행태를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 언론의 발전도 요원할 것이라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RE100'과 대통령의 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