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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기자가 본 경찰청장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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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앞서 나는 조지호 경찰청장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는 국회에서 거짓을 행했다. 조 청장은 지난 3일 계엄 발령 직전 대통령 안가에서 윤석열로부터 직접 계엄관련 지시사항을 하달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5일 국회에 출석해 "계엄 발령은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고 했다. 거짓말 이었다. 그의 구속 과정에서도 이 거짓말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가 경찰 병력을 보내 국회를 막고, 국회의원의 출입을 통제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그도 윤석열의 지시를 일정부분 이행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아무리 그가 혈액암을 앓고 있다고 해도, 윤석열의 지시 가운데 상당수를 거부했다고 해도 그가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사건팀장(캡)을 합쳐 4년 가까이 경찰기자를 해온 내 입장에서 경찰 조직의 수장인 청하나(경찰청장)가 비정상적인 상황 끝에 구속되는 모습 자체가 착잡한 게 사실이다. 만약 상명하복이 기본인 공무원 사회에서 내가 조지호 청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상사가 제정신이 아닌 지시를 내렸을 때, 내가 만약 공무원이라면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가. 제정신이 아닌 지시의 범위는 어디까지이고, 나는 어디까지 거부할 수 있는가. 수십년 간 쌓아온 나의 인생이 한순간의 선택으로 날아갈 수 있다면, 나는 단호히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모든 리더가 합리적인 선택과 지시를 내린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다만, 가끔은 이렇게 정신나간 상사가 때아닌 악몽처럼 현실에 짠 하고 나타날 수 있다는걸 우리 모두 이번 사태를 거치며 깨닫지 않았나.


아무튼 조 청장이 탄핵되고 구속까지 된 마당에 그저 내가 겪었던 조지호 경찰청장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고자 한다.




그는 딱 경찰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올해 1월 내가 서울경찰청으로 올 때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청장 발령을 받았다. 첫 기자간담회에서 느낀 것은 성격이 참 시원시원하다는 것이었다. 그 흔한 서류한장 없이 기자실로 내려 와선 약 1시간 가량 이어지는 캡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막힘 없이 답했다. 그건 그만큼 사건 공부가 잘 돼 있다는 뜻이었다.


언론을 잘 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냥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게 아니라 경찰이 그 시점에서 국민에게 알리고 싶은 수사 야마를 한 두개씩 제시했다. 지난 6월 고려제약 리베이트 사태에 의사 수백명이 연루돼 있다는 내용도 조 청장이 직접 언론에 먼저 알린 것이다. 항상 수사 상황을 숨기기 급급한 경찰들만 보다가 좀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수사에 자신감이 갖고 있었다는 뜻이 되겠다.


나는 그의 집무실을 자주 찾았다. 그는 냉철하고 강인한 인상과 달리 은근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의 아들들은 나처럼 쌍둥이라서 묘한 동질감도 느꼈다.


그는 내가 목숨이 위험할 때 몇번 도와준 적도 있다. 어떤 사건이 터졌는데 밤 늦게 확인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 청장한테 전화해서 제발 확인해달라고 읍소한 기억이 난다. 수습 기자가 계장한테 할만한 급의 수준 낮은 질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웃으면서 확인을 해 줬다. "캡이 참 고생이 많다"고 하는 그의 말에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조 청장은 내부에 적이 많았다. 그의 가감없는 성격과 말투 탓이었다. 그에게 심하게 혼이 났다거나 하는 경찰 간부들이 많았다. 경찰청에 오래 있었기에, 올해 초만해도 서울청 내부에선 그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발령 한달만에 호평으로 바뀌었다. 수장에 따라 당연히 달라지는게 경찰 내부 여론이라지만 뒤끝이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진짜 일을 못했을 경우에는 조 청장에게 제대로 털리지만, 다음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하는 모습이 신기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그를 좋아하는 후배 경찰도 많았다. 일을 정말 잘한다는 이유였다. 무슨 일을 시킬때 후배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책임질테니까 너는 이러이러한 일만 확실히 해와"라는 식이라고 했다. 그러니 일을 못해서 혼나도 납득이 간다는 사람도 많았다. 사심이 없고, 오직 일과 성과만 생각하는 경찰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 기강을 중시했다. 취임 초기 기동대발 사건 사고가 빈발하자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후 경찰 블라인드 등에는 그를 독재자처럼 지적하고, 만화에 합성해 비꼬는 글이 쇄도했다. 젊은 경찰들이 올린 것이다. 올해 중반 숱하게 쏟아지던 기동대발 비위 사건은 김봉식 서울청장이 취임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일각에선 술 먹고 난동을 부리는 식의 기동대원 사고는 항상 있는데, 조 청장이 경찰청장이 되는 걸 견제하는 세력이 언론에 기동대 사고를 뿌린다는 루머도 있었다.


아무튼 그는 결국 경찰청장에 올랐다. 초고속 승진이다. 만약 계엄 사태가 없었다면 조 청장은 좋은 경찰청장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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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계엄 국면을 거치면서 힘없는 경찰 조직의 현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수사와 행정, 치안 등이 결합된 경찰은 숫자도 많고 광범위하다. 다만 그만큼 논란도, 약점도 즐비하다. 검찰이 약간 B2B 느낌이라면, 경찰은 B2C 구조다. 대중과의 접점이 넓고 노출 빈도도 잦다. 그러니 자주 동원되고, 논란도 빈발한다. 동네북이라면 동네북인데, 좀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아서 제3자로서 답답한 부분도 있다. 나도 경찰 조직에 어느정도 애정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경찰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유의 수장 구속 사태를 딛고, 다시 또 우뚝 섰으면 한다. 작금의 사태는 국정 운영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군대를 동원해버린 비상식적인 리더 때문이다. 그러니 자괴감 갖지 말고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밤낮없이 국민을 위해 뛰는 훌륭한 경찰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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