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7일 충남 천안서 서울까지 대절한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왔다. 마음 맞는 친구 동료들과 함께였다. 버스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앞서가던 버스와 추돌한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여의도에 도착했다. 수많은 인파에 예순이 넘은 아버지가 걱정되서 만류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말했다. "도저히 안 갈수가 없겠더라고. 나라도 힘을 보태야지."
표결은 무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단체로 퇴장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시민들은 국회 앞에 남았다. 우리 팀원이 국회 앞을 청소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국힘의힘 쪽에서 또 시위에 나선 이들의 처절한 시민의식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시위의 흔적을 치우고 있다고 했다. 시위에는 문제집을 들고 온 고3 수험생과 수능을 끝내고 참석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좋아하는 아이돌 응원봉을 든 친구들도 다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이 와중에도 당의 안위만 생각하는 국힘 의원들 탓에 탄핵 열차는 일단 멈춰섰다. 곧 다시 움직일 터다.
나는 국정이 제 맘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계엄령을 내려버린 정치적 무능력자를 더 이상 대통령으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힘 측에서 탄핵은 또다른 국민 혼란을 낳는다고 하던데, 이미 계엄령을 통해 혼란의 고점을 보여준 대통령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대혼란의 서막이다.
이탈표를 막기 위해 줄을 서서 퇴장하는 국힘 의원중에는 아는 얼굴이 많았다. 정치부 당시 나와 친하게 지냈던 의원들도 여럿 보였다.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봤다. 그들도 사람이고, 총선을 거쳐 선출된 헌법기관인데 염치를 모를리 없다. 투표를 거부하고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염치없고 비겁한 짓인 걸 다 알 것이다.
그럼에도 욕 먹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며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회의장 밖으로 줄지어 나가는 그 모습은 퍽 역겨운 것이었다. 국민적 위기와 불안을 줄이기 위해 여당을 제발 한번만 더 믿어달라는데, 본인들이 추대한 대통령이 저지른 유아틱한 사고 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모르는 저 집단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이젠 여당이 내놓은 정책과 국정 기조 모두를 믿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믿음이 안 간다. 본인의 정치력 부족을 탓하는 게 아니라, 선량한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활까지 쉽게 위협할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을 같은 편이라고 일단 옹호하는것 자체부터가 저들의 마음속에 국민이라는 존재는 단 한 톨도 없다는 뜻이다.
국정원 1차장은 시켰다고 하고, 국정원장은 아니라고 하고, 군 내부에서도 각자 살아남으려고 상충되는 의견을 제시하며 싸우는 지금 우리 나라의 모든 분야는 멈춰선 듯 싶다. 다른 국가 대통령이 방한중인데도 계엄을 발령하는 그 대담함은 무식함의 발로라고 밖에 볼수가 없다. 외교 안보 경제 다 쇼크 상태다. 진짜 한 사람 때문에 온 국가가 퇴행하고 있다.
참 우리나라는 국민적 지성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정치권을 두었다. 박근혜 국정농단 이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남북 정상회담 때 지지율이 80%를 넘겼으나 부동산 자승자박으로 마지막에는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그 반사작용으로 윤석열정권이 개막했는데 반환점을 돌자마자 윤석열이 그 밑바닥을 스스로 드러내보이게 됐다. 당연히 무게추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향할 터다.
근데 그 조차도 이런저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국민들의 선택지가 너무 없다. 한쪽에 갔다가 망하면 또 다른쪽으로 가야하고, 중간이 없고 새로운 인물이 없다. 좋은 사람을 뽑는게 아니고 바닥친 이의 반대를 뽑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제3, 제4의 대통령 후보가 없는 나라. 아니, 언제부턴가 없어진 나라. 우리는 이 문제부터 좀더 심도있게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왜 우리는 이렇게 정치적 극단주의가 판치는 나라에 살수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
우리 사건팀원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10시간 넘게 바깥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만났다. 그들이 온 국민을 대표한다 할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집에서 쉬어도 될 시간에 나와서 나라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모습.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뛰는 기자들이 많다. 또 한번 탄핵국면을 준비하며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