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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언론 만들기

by hardy
art_1758881754.jpg 기자협회보 캡처


언론계 현업 종사자로서 나는 항상 언론 개선과 변화 관련 세미나나 토론회에 자주 참석해 왔다. 못가면 자료를 받아서 언론학계 교수나 저명한 기자들의 현상 진단과 제안을 주의깊게 들여다봤다. 항상 좀 실망스러웠다. 탁상공론 얘기가 너무 많고, 영국 가디언이나 미국 뉴욕타임즈 얘기만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올드하달까. 한국과 외국은 언론 환경 자체가 너무 다르다. 너무 동떨어진 롤모델을 가져오니까, 아예 변화를 시작조차 못하는 느낌.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야 하는데, 천지개벽 급의 제안만 들고 온다. 그래도 이런 노력이라도 있어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도 든다.


실제 한국 언론은 현재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신뢰도 하락, 수익성 악화, 그리고 정치적 독립성의 위협은 한국 언론의 공공성과 민주적 역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언론은 과거의 관행과 구조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0년대 초반,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언론은 디지털 혁명과 사회적 요구의 변화 속에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65%는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9년 대비 10% 포인트 이상 하락한 수치로,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최하위권에 속한다.


2022년 한국의 주요 일간지 5개의 총 광고 매출은 5000억원을 밑돌았다. 이는 2010년 대비 40% 감소한 수치다. 종이 신문의 급격한 매출 감소는 광고 모델의 위기를 명확히 보여준다. 아울러 보수와 진보 간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언론의 중립성 및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편향적인 보도가 이뤄지고, 또 일부는 너무 독자를 의식해서 편파적인 기사로 도배된다. 이는 일반 독자들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언론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언론의 공공성, 민주적 역할,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하다. 이에 따라, 한국 언론은 과거의 방식을 되짚어 보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9월 25일에 미디어오늘 30주년을 맞아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그동안 한국 언론의 변화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다. 한국언론학회 쪽에 연락해서 발표문을 받았다. 정독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나의 소회를 좀 남겨보고 싶었다.




제목 없음.jpg 이제는 추억이 된 2013년 성동경찰서 2진 기자실. 여기서 먹고 자며 수습 생활을 했다.


우선 짚어야할 대목은 하리꼬미의 폐지. 하리꼬미는 과거 한국 언론사에서 수습 기자들이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취재하는 방식의 교육을 의미했다. 이 방식은 기자의 기본적인 취재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강도 높은 정신적, 육체적 훈련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리꼬미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압박 속에서, 기자들이 경험하는 교육은 단순한 직무 교육을 넘어선 인권 침해와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하리꼬미는 더 이상 언론사 내에서 존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2016년부터 점차 폐지됐다. 2013년 입사한 내가 거의 마지막 하리꼬미 세대였다. 이 변화는 단순히 교육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 언론의 전반적인 조직 문화와 저널리즘의 패러다임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수습기자의 눈물겨운 하리꼬미 생존기는 내가 따로 브런치글로 정리를 해 놨다(https://brunch.co.kr/@highstem/183).


사실 하리꼬미는 일본에서 유래된 수습 기자 교육 방식이다. 한국 언론사들은 20세기 초반부터 이런 하리꼬미를 도입했고, 이 과정에서 신입 기자들은 공공의 신뢰를 얻기 위해 ‘힘든’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았다. 과거 기자들은 이를 '기자답게' 되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받아들였으나,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하나 더 짚으면 하리꼬미와 사쓰마와리는 다른 뜻이다. 하리꼬미는 경찰서에서 먹고 자면서 취재하는 거고, 사쓰마와리는 라인별로 경찰서를 돌면서 취재한다는 말이다. 한국 언론 구조는 일본 언론에서 비롯된 것이 많아 아직도 일본말을 많이 쓴다. 기사의 주제를 물어볼때, 아직도 야마가 뭐냐고 물어본다. 이 것도 좀 고쳐야할 잔재이긴하다.


아무튼 하리꼬미 폐지 이후, 한국 언론사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교육 방식을 개선할 필요성이 커졌다. 많은 언론사들이 수습 기자들을 동등한 동료로 대우하며, 보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뉴스룸 내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도 많이 사라졌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 기자를 교육하는 시스템은 미약하다. 정해진 메뉴얼과 분명한 업무 분장이 이뤄지는 대기업과 달리 언론사는 아직도 '암묵지'를 바탕으로 한 교육이 이뤄진다.


암묵지(tacit knowledge)란 경험과 학습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말이나 글로는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주관적이고 비언어적인 지식을 뜻한다. 노하우라고도 한다. 이는 책이나 공식적인 교육으로 습득하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주로 몸에 쌓인 숙련된 기술이나 통찰력, 직관 등을 포함하며, 현장에서의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되고 습득된다.


사실 취재기법이란 게 따로 없다. 기자들마다 스타일도 너무 다르다. 취재원과 금세 친해져서 단독기사를 취재할수도 있고, 아니면 페이퍼워크를 잘해서 의미있는 기획 기사를 쓸 수도 있다. 획일화된 취재 방법이나 기법이 없다. 그러니 교육이나 인수인계도 어느 취재원이 말을 잘 해준다, 누구 찾아뵙고 인사부터 드려라 하는 식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능력있는 선배를 만나면 그의 취재법을 체득해 취재능력이 확 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계속 제자리에 그칠 수도 있다. 복불복이자 운빨인 이런 관행을 바꾸면 전체 기자의 평균 역량이 늘고, 기사의 질도 개선될 가능성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해법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일단 표준화된 수습 기자 교육 매뉴얼을 도입하여, 수습기자가 어느 언론사에서 일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기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매뉴얼에는 데이터 분석, 팩트체킹, 취재 윤리 등의 필수 교육 항목을 포함시켜야 한다. 또 기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기존에는 선배 기자의 개인 역량에 의존한 부분이 많았지만, 전문 교육 담당자를 통해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다. 교육 담당자는 신입 기자뿐만 아니라 중급 기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모든 기자가 동일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직무별 트랙제를 도입하여, 각 기자가 탐사보도, 디지털 저널리즘, 데이터 분석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각 기자가 원하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 정치부 사회부 못 갔다고 못난 기자가 아니고, 저연차때부터 기자의 장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전문성을 키워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막상 써놓고 보니 약간 무릉도원 이야기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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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한국 언론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한 뉴스 소비가 급증하면서, 전통적인 종이 신문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저널리즘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전체 언론사 수익 중 60% 이상이 디지털 광고에서 발생하지만, 종이 신문 구독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독자들은 빠르고 다양한 정보를 소비하며, 전통적인 언론사들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제 기자들은 단순히 사건을 보도하는 것을 넘어, 데이터 분석, 소셜 미디어 활용,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아울러 디지털 시대 언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기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콘텐츠의 품질과 정확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만큼 디지털 환경에선 가짜뉴스와 편향된 정보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환경에서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 AI와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저널리즘 전담팀을 운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팩트체킹, 정보 분석, 오류 수정 등의 업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아울러 쌍방향 소통이 중요해졌다. 디지털 환경에선 구독형 모델을 확립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강화해 충성도 높은 독자층을 확보해야 한다. 뉴스레터와 독자 참여형 포럼을 통해 독자와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의 고질병 또 하나. 광고 수익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전체수입의 무려 60% 이상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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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기반 수익구조는 편집권 독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광고주의 요구에 부합하는 보도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약화됐고 이는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특히, 대기업 광고주가 주요 수익원인 경우, 언론이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제공할 위험이 크다.


언론이 광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독립 펀딩과 구독 모델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독립적인 독자 후원을 통해 언론사는 경제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독자 후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유료 구독 콘텐츠를 활성화해야 한다. 독자가 정기적으로 구독료를 납부하는 시스템은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편집권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중앙일보나 한국경제 등이 이런 시스템을 채택하고는 있는데, 아직도 뉴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해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걸로 안다.


이러한 구독 기반 모델에서 중요한 것은 독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독자들이 가치 있는 콘텐츠에 대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투명성과 보도의 질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뉴스레터, 웹세미나, 디지털 기사 및 분석 보고서 등 독자 참여형 콘텐츠를 제공하여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


또 디지털 전환을 통해 언론사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디지털 기사와 동영상 콘텐츠를 판매하거나, 디지털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독자와 시청자의 경험을 개선하여, 이들이 더욱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SNS와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여 구독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모델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광고 및 브랜드 협찬을 유치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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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편집권 독립과 함께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과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언론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신 편집권의 독립성이 침해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에 따라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언론사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기술적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때, 이 지원이 언론사의 편집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편집권 보장을 위한 감독 기관을 설립하여, 공공자금을 지원받는 언론사들이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실 이건 욕심이긴 한데 디지털 전환을 위한 지원 펀드를 신설하여, 중소 언론사가 기술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좋겠다. 디지털 뉴스 생산 시스템과 빅데이터 분석에 대한 기술 지원을 제공하고,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에 특화된 모바일 및 웹 콘텐츠 개발 지원을 통해 중소 언론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은 그동안 상업화, 편향된 보도, 편집권 독립의 위기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미디어 환경의 급변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미래 지향적인 언론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 언론사의 내부적 혁신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정책적 지원이 동반되어야 한다.


언론의 자율성과 객관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내부의 조직 문화와 정책 변화가 필수적이다. 특히, 디지털 전환은 단기적인 대응이 아닌, 전략적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청년 기자들에게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미래 지향적인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다.


아울러 한국 언론은 이제 소수의 대기업과 편향된 보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수익 모델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독자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도를 통해, 신뢰 회복의 길을 열어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내부의 조직 문화 혁신뿐만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필요하다. 언론의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정책적 지원을 통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 언론이 직면한 위기는 외부 환경의 변화, 디지털 혁명, 청년 세대의 요구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언론의 독립성, 공정성, 투명성을 강화하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대안들이 실행된다면, 한국 언론은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기자 교육, 뉴스룸 문화 개선, 디지털 전환, 경제적 자립 등 각 분야에서의 혁신은 단기적인 개선을 넘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각 언론사는 지속적인 변화를 위한 실천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스스로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좋은 언론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근데 가능할까. 내일 발제 없어서 또 머리에 쥐나는데 이런 뜬구름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그래도 하루하루 좀더 달라지는 그런 한국 언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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