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주요 정책을 발표하기 전, 해당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이메일 하나를 뿌린다. ‘○월 ○일 ○시까지 보도 금지’라는 문장이 적힌 이메일에는 정책 발표 자료가 동봉돼 있다. 기자들은 이런 류의 기사를 ‘엠바고 기사’라고 부른다.
엠바고는 정부나 기관이 정책자료를 미리 기자들에게 제공하되, 정해진 시각 전에는 기사로 내보내지 말라는 약속이다. 기자들은 그 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미리 써두고, 엠바고가 풀리는 시각에 맞춰 일제히 송고한다. 덕분에 복잡한 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정부도 발표 즉시 깔끔한 기사들이 동시에 나가길 원한다. 겉으로 보면 ‘정부와 언론이 함께 만드는 효율적인 제도’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약속은 자주 깨진다. 한 정책 자료가 공식 발표되기 전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퍼졌고, 시장이 요동친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해당 매체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다. 단톡방을 통해, 메신저를 통해, USB를 통해, 누군가의 손을 거쳐 퍼진 자료 한 장이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기자들은 “또 터졌다”고 말했다. 몇 달에 한 번꼴로 되풀이되는 장면이었다.
엠바고는 원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기자는 정부의 설명을 듣고, 충분히 취재해 정확한 보도를 준비할 수 있다. 정부는 기자들이 자료를 미리 검토함으로써 오보와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다.
그러나 이 관계는 언제나 ‘시간’이라는 긴장 위에 놓여 있다. 정보는 빠르게 흘러야 가치가 있다. 엠바고의 시각이 다가올수록 기자들의 손끝은 바빠진다. 누군가는 초 단위로 시간을 계산한다. 누군가는 서버 시간을 앞당긴다. 엠바고 해제 시각이 오전 10시라면, 9시 59분 58초에 송고 버튼을 누른다. 2초라도 빨라야 검색창의 맨 위에 걸린다. 그것이 업계의 생리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 경쟁만이 아니다. 출입처 제도의 구조가 엠바고 참사를 키운다. 기자들은 각자 맡은 기관에 ‘출입 등록’을 하고, 그 기관의 공식 자료와 브리핑을 전담 취재한다. 국토부, 기재부, 복지부, 경찰청, 법무부 등 각 부처별로 기자들이 묶여 있다. 정부는 이 기자단을 통해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브리핑을 진행한다.
기자단은 ‘공동취재단’을 꾸려 취재 순서를 조율하고, 질문권을 나눈다. 이 제도는 1970년대 권위주의 시대부터 이어져 온 구조다. 정부가 기자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통제하기 쉬웠던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출입처는 기자들에게 정보 접근권을 준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는 ‘정보 배급자’가 된다. 기자들은 늘 받는 입장에 선다. 엠바고는 이 관계의 상징이다. 정부는 “미리 줄게, 대신 시간을 지켜달라”고 말한다. 기자는 “받겠다, 대신 먼저 쓰지 않겠다”고 답한다.
언뜻 공정한 거래 같지만, 그 속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정부는 언제 어떤 정보를 배포할지를 결정하고, 기자들은 그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때로는 정부가 발표 시각을 의도적으로 조정하기도 한다. 금요일 오후 5시, 주말 직전 같은 시간에 불리한 정책이 발표된다. 국민의 관심이 줄어드는 시간대다. 기자는 엠바고 때문에 그 시각에 맞춰 기사를 낼 수밖에 없다. 결국 엠바고는 ‘정보 제공’의 형태를 띤 통제다.
이 구조는 때때로 터무니없는 사고를 낳는다. 2014년에는 한 방송사가 금리 인하 발표문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가 외부로 유출돼 증권시장이 요동쳤다. 2020년에는 방역지침 변경안이 SNS에 흘러나가 국민 혼란을 불렀다. 한 기자가 보도금지 문구가 찍힌 정부 문서를 그대로 기사로 송고한 일도 있었다.
기자들도 그 긴장 속에서 불안하다. 기자단 안에서는 “누가 먼저 내느냐”가 중요한 평판이 된다. 엠바고가 풀리는 순간, 같은 문장이 수십 개 매체에서 동시에 쏟아진다. 이때 1초라도 먼저 걸리면 노출이 더 커질 수 있다. 기자들이 이를 ‘선점 경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실질적인 단독이 아니다. 정부가 똑같이 배포한 자료를 누가 먼저 눌렀는가의 싸움이다. 그럼에도 이 경쟁은 매일 반복된다.
사내 시스템의 허술함도 문제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내부 메신저, 단체방, 협업툴을 통해 엠바고 자료를 공유한다. “오늘 정부 대책 나왔어요”라는 말과 함께 PDF 파일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퇴사자 계정이거나, 외주 인력이 포함돼 있을 수도 있다. 내부 보안이 철저하지 않다면 엠바고는 ‘공공비밀’로 전락한다. 파일 한 장이 단톡방을 거쳐 인터넷에 퍼지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내부 공유만 했다”고 항변해도, 이미 세상에 퍼진 뒤다.
이쯤 되면 엠바고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일종의 ‘신뢰 실험’이다. 기자와 정부, 언론사 내부, 그리고 독자와의 신뢰가 동시에 걸려 있다. 한쪽이라도 약속을 깨면 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 정부는 “언론이 약속을 깼다”고 비판하고, 기자들은 “정부가 과도하게 통제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 정부는 여전히 출입처 중심의 폐쇄적 구조를 유지하고, 언론은 그 안에서 경쟁과 편의에 익숙해졌다.
엠바고는 원래 공공의 이해를 위한 장치였다. 정부가 복잡한 정책을 설명하고, 기자가 그 내용을 정리해 국민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준비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엠바고는 그 본래 취지와 멀어졌다. 오히려 정부는 이를 언론 통제의 도구로, 언론은 이를 ‘정보 선점의 보증서’로 이용하고 있다.
현직 기자로서 가장 불편한 순간은, 엠바고 위반 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들이 “역시 언론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이다. 언론이 정부의 통로로 전락했다는 말보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말이 더 아프다. 기자의 세계에서 신뢰란 ‘보이지 않는 화폐’다. 기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독자는 더 이상 언론을 믿지 않는다.
엠바고 제도를 무조건 없앨 수는 없다. 정책 보도에는 여전히 사전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정부는 특정 기자단에만 자료를 제공하는 ‘폐쇄적 배포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브리핑 시스템을 열고, 같은 시각에 자료를 공개하면 된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기자에게 사전 브리핑을 하더라도 ‘등록 언론사’만의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보 접근의 공평성이 신뢰의 출발점이다.
언론사 내부의 보안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자료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접근 권한을 개인별로 구분해야 한다. 엠바고 위반이 발생했을 때는 ‘누가 올렸는지’만이 아니라, ‘어떤 과정에서 유출이 가능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기자 한 명의 잘못으로 끝내지 않고, 구조적 허점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자 개인의 윤리다. 엠바고를 지키는 건 단순히 규칙 준수가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사람의 품격’이다. 기자는 정보를 먼저 접한다.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아무리 치열한 경쟁이라도, 공공의 이익보다 앞설 수는 없다. 빠른 보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가 중요하다.
정보의 흐름은 이미 바뀌었다. SNS에서는 정부의 발표보다 빠르게 정책 요약본이 떠돌고, 유튜브에서는 일반 시민이 전문가보다 먼저 해석을 내놓는다. 이런 시대에 ‘기자단만 아는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엠바고는 구시대의 잔재처럼 보인다. 정부와 언론이 권위를 지키려 붙잡고 있는 마지막 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신뢰는 권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투명함에서 나온다.
엠바고가 다시 제 기능을 하려면, ‘시간의 약속’이 아니라 ‘책임의 약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 내느냐보다, 어떻게 내느냐가 중요하다. 자료를 먼저 받은 기자는 더 깊이 취재하고, 더 정확하게 쓰는 것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게 엠바고의 존재 이유다.
엠바고가 또 깨졌다. 하지만 이건 한 기자의 실수가 아니다. 언론의 신뢰를 지탱하는 구조가 흔들린 신호다. 정부와 언론, 기자단 모두가 함께 만든 결과다. 정보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신뢰의 흐름은 지킬 수 있다. 기자가 그 출발점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