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바라본 워싱턴포스트의 추락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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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가 무너지고 있다. 기자 800명 가운데 300명 이상이 해고됐고, 국제부와 워싱턴 지역 뉴스팀은 사실상 해체 수준의 인력 감축을 겪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라는 문장을 신문의 모토로 내걸었던 언론사가, 지금은 그 등불을 스스로 끄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해외 유력지의 구조조정 소식이라고 가볍게 넘기기에는 이 장면이 주는 상징성이 너무 크다.


워싱턴포스트는 한때 권력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신문으로 불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몰락시킨 워터게이트 특종, 베트남전의 실상을 드러낸 펜타곤 페이퍼 보도는 언론이 어디까지 싸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때 워싱턴포스트를 지탱한 것은 뛰어난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정치권과 기업, 정부의 압박 속에서도 편집권 독립을 지켜낸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의 결단이 있었고, “신문은 사주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창업자의 원칙이 있었다. 언론의 역사에서 사주가 언론인의 편에 서준 드문 순간들이 이 신문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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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의 워싱턴포스트는 전혀 다른 풍경에 놓여 있다.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신문을 인수한 뒤, 워싱턴포스트는 한동안 디지털 전환과 공격적 투자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트럼프 1기 집권기 동안에는 정치 뉴스 수요가 폭증하며 유료 구독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물러난 뒤 독자 이탈이 본격화됐고, 생성형 인공지능의 확산과 검색 트래픽 감소, 광고 시장 침체가 겹치면서 경영 성적표는 급격히 나빠졌다. 2023년 7,700만 달러 적자, 2024년 1억 달러 손실이라는 숫자는 디지털 시대 언론의 위기를 상징하는 지표가 됐다.


문제는 이 위기를 대하는 태도였다. 경영진은 기술 변화와 시장 환경을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선택했지만, 동시에 신문의 논조와 편집 방향에는 노골적인 정치적 계산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워싱턴포스트는 36년 만에 특정 후보 지지 사설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내부에서 작성된 카멀라 해리스 후보 지지 초안은 사주에 의해 거부됐다. 오피니언 섹션에는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이라는 가치가 전면에 배치됐다. 베이조스가 운영하는 다른 기업들의 이해관계,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의식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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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는 곧바로 독자의 이탈로 이어졌다. 공영라디오 NPR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편집 방향 전환 이후 최소 37만 명 이상의 유료 구독자가 워싱턴포스트를 떠났다. 언론의 신뢰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자산이다. 기자들 역시 흔들렸다. 내부 반발이 이어졌고, 역량 있는 인력들은 폴리티코나 액시오스 같은 디지털 매체로 이동했다. 언론사가 가장 먼저 잃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신뢰이고, 그 다음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번 대규모 해고 과정에서 최고경영자(CEO)가 해고 발표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스포츠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되며 사임으로 이어진 장면은 상징적이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있다. 기술 변화와 산업 구조 재편 속에서 언론사 역시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줄이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조직의 신뢰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책임 윤리마저 무너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언론의 자기 포기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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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몰락을 단순히 ‘신문 산업의 사양화’나 ‘AI 시대의 필연’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기술은 언론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언론을 스스로 약하게 만든 것은 권력과 자본 앞에서의 태도였다. 사주가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 편집권 독립은 선언문 속 문장이 되고, 기자들은 자기 검열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쌓인 작은 타협들이 결국 독자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언론사는 구조적으로 모순적인 조직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면서 동시에 공익을 수행해야 하는 기관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은 언제든 충돌할 수 있다. 그래서 편집권 독립이라는 장치가 필요했고, 사주가 언론의 공공성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이 중요했다. 그러나 그 장치가 무력화되는 순간, 언론은 가장 손쉬운 길로 흘러간다. 권력을 불편하게 만들기보다는 권력과 공존하는 쪽을 택하고, 공익적 보도보다는 논쟁을 피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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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사례는 한국 언론에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소유 구조와 광고 시장, 정치 권력의 영향력 속에서 언론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는 늘 시험대에 오른다. 기자 개인의 윤리와 사명감만으로는 조직 전체를 지탱하기 어렵다. 사주와 경영진이 언론의 공적 역할을 존중하지 않는 순간, 기자는 매일의 마감 속에서 조금씩 후퇴하게 된다. 그 후퇴는 기사 한 줄의 톤에서 시작해, 다루지 않는 이슈의 목록으로 확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직업이다. 워싱턴포스트 내부에서 “미국 언론 전체에 비극적인 날”이라고 말한 기자들의 심정은, 많은 기자들이 공유하는 감정일 것이다. 기사 하나, 문장 하나를 지키기 위해 편집국 안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때로는 조직과 충돌하는 순간들이 쌓여 언론의 최소한의 품격이 유지된다. 언론의 본질은 정권과 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의 현장에서 스스로와 싸우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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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몰락은 한 신문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 진보 시대에 언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자본과 권력 앞에서 어디까지 물러설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다. 언론은 기술을 핑계로 공공성을 내려놓을 수 없고, 경영 위기를 이유로 신뢰를 담보로 잡아서는 안 된다. 살아남는 것과 살아 있는 언론으로 남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공지능의 발전과 언론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고싶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언론 산업의 위기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다. 검색 트래픽 감소, 뉴스 요약 서비스 확산, 자동 기사 작성 도구의 등장까지 겹치며 ‘기자는 이제 곧 필요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냉소적인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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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장에서 취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AI가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문장’이지 ‘취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권력자의 말 한마디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인터뷰 대상이 어떤 이해관계에 묶여 있는지, 문서 한 장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누군가를 직접 만나 확인해야 하는 과정은 알고리즘으로 자동화할 수 없다. 언론의 핵심 가치는 정보를 정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걸러내는 인간의 판단력에 있다.


더 근본적으로, 언론의 신뢰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설득해 인터뷰로 끌어내는 과정, 내부 고발자의 신변을 보호하며 보도를 설계하는 결정, 취재원이 침묵할 때까지 기다리며 쌓아온 시간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생성형 AI는 과거의 데이터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스스로 찾아 나서지는 못한다. 언론이 무너지는 이유를 AI 탓으로 돌리는 것은 편리한 변명일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그 기술을 핑계로 취재와 검증이라는 언론의 가장 고된 일을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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