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연차를 먹고, 평기자에서 관리직으로 올라가면서 드는 상념이 있습니다. 보통 회사는 경력이 늘어날수록 그나마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책임질 일이 늘어나고, 업무를 총괄하면 부담이 크고 고민도 많아질 것입니다. 근데 그걸 떠나서 그저 노동의 총량으로 치면 좀 문제가 달라집니다. 업무 시간 자체는 상무 전무가 대리 과장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실무는 실무 직급이 해야 하고, 당연히 높은 분들보다는 더 일찍 나오거나 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근데 기자는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요새 아침에 한국은행으로 출근합니다. 오전 보고를 하고, 취재원과 점심을 먹고 회사로 이동합니다. 이후 후배들의 기사를 보거나, 지면에 들어갈 사진설명을 쓰거나 제가 직접 발제한 기사 등을 씁니다. 부장을 보좌해서 지면에 들어가는 기사를 최종 확인합니다. 신경이 많이 쓰이고, 민감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기자때는 정말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오늘 쓸 기사 발제하고, 쓰고 끝이었으니까요. 어린 마음에 저는 제가 일을 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만 바쁘고,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냥 취재하고 기사 써서 올리면 마무리가 됩니다. 다만 제 기사를 고치고, 수정하고, 추가하고, 관련 그래픽을 만들고, 관련 사진을 찍고, 배치하는 작업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쓴 기사도 아닌데 힘써서 만져주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저는 잘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회사 안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비로소 알게 되네요.
이 글을 회사 선배 혹은 타사 기자 선배들이 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볼땐 기자들이 너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각 부별로 부장과 데스크가 밤 10시 이후까지 남아서 일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일반 기업 친구들이 가끔 묻더라고요. "왜 그렇게 일이 많아?" 쉽게 답을 못헀는데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보다도 선배들이 더 일을 많이하고 늦게까지 남아있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데, 또 부장 국장분들이 넘 힘들어보이기도 해서요.
일단 너무 뉴스가 많습니다. 보통 초판 강판이 이뤄지는 오후 6시30분 이후에도 기사가 쏟아집니다. 주로 정치부가 그렇고요. 국제부도 마찬가지 입니다. 긴박한 정치 이슈는 사실 시간과 상관없이 터집니다. 국제부는 시차때문에 미국이나 이런 곳의 큰 뉴스가 한국으로 치면 저녁시간에 발생하지요. KBS SBS MBC와 종편 뉴스가 저녁에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단독 기사 등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뉴스도 있지만 기존에 썼던 기사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도 빈번합니다. 가판을 보고 취재원이 수정이나 항의를 해오는 경우도 있고요. 또 문장이나 단어를 바꾸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가끔 오후 9시가 넘었는데 선배들이 기사의 방향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논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멋있다 싶으면서도 좀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저는 올해 만 39세가 되었습니다. 25살에 입사해 14년차 기자입니다. 만약 제가 계속 언론사에 있는다면 15년 넘게 다닐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제 곧 연차가 더 쌓이면 부장도 언젠가는 하겠지요. 근데 제가 부장으로서 저렇게 밤늦게까지 치열하게 살 수 있을까요? 전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엄청난 보상도 사실 없어보이긴 합니다. 신문이 좋아서, 기자질이 좋아서, 사명감을 갖고 밤까지 남아서 신문의 품격을 높인다고 생각하며 일해야 하는데 그럴 정도의 동력은 생기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네요.
전 사실 40대의 저녁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세대가 마찬가지겠지만요.
40대는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나이대입니다. 그래서 저녁시간에 운동을 조금이라도 규칙적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은퇴가 슬슬 다가오는데요, 노후 뿐 아니라 제 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저녁시간에 자기계발에 나서야 합니다. 영어를 비롯한 어학공부, 자격증 준비 등이 필요합니다. 기대여명 100세 시대에 40대는 어린 나이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2의 인생을 위해선 특단의 대책과 차근차근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전 40대에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기자는 더 그렇습니다.
어떤 선배는 20대 30대에 취재원을 많이 사귀어두고 그 인맥으로 은퇴까지 간다고 하셨는데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대 30대 기자때는 잘모릅니다. 사회생활도 서투르고,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릅니다. 하지만 40대에는 관록도 쌓이고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안목도 어느정도 정립됩니다. 이때 새롭게 만나는 취재원들과는 대화의 수준이나 분야부터 달라집니다. 오히려 더 딥한 관계로 좋은 취재원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근데 점심은 너무 짧습니다.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무슨 얘기를 나누겠어요. 그래서 요새는 취재원과 점심을 해보고, 좀 말이 잘 맞고 하면 저녁을 추후에 따로 잡습니다.
근데 기자가 데스크가 되어 매일 회사에 있다보면 저녁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신경도 쓰이고요. 안에서 혼자 고생하는 부장께도 죄송하고요. 그래서 저녁을 잘 안하게 됩니다. 굳이 술자리를 원하는게 아니고 뭔가 취재원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쌓아나갈 시간을 놓치게 됩니다. 이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연차가 올라갈 수록 오히려 매일 야근 비슷하게 하는 직업은 아마 기자가 유일할 겁니다. 정말 젊을때가 좋았다는 말이 확 와닿네요.
사실 왜 언론만 이래야하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선우정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6년전 취임당시 인터뷰한 내용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https://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3310
기자들의 불만은 꼭 마감 시간 때문은 아니고
쓸데없는 야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낮 시간에 비효율적인 게 많은데 30년 전 그대로의 방법,
시스템으로 반복되는 부분이 있다.
속보를 처리하기 위한 야근은 어쩔 수가 없지만
그 뉴스를 기다리기 위해 주야장천 새벽까지
회사에 앉아 있는 시스템은 고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즘은 집에서 다 해도 되니까
그런 야근을 줄이고 효율화 하는 건
정말 동의하고 많이 바꿔나가려 한다.
이런 내용이었는데요. 조선일보 기자 여러명에게 물어보니 안타깝게도 별로 변한게 없다고 합니다. 여전히 다들 힘들게 일하고 있고요.
사실 조선일보처럼 매일경제와 동아일보도 비슷하게 야근자를 최소화한다고 했었는데, 별로 달라진게 없다고 합니다. 책임이라는 게 부담이 되긴 하거든요.
저는 젊고 유능한 기자들이 떠나는 원인 중 하나가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일하는 시간이 깁니다. 근데 사실 치열하게 일하는 시간은 얼마 안되고, 그냥 야근을 위한 야근도 너무 많아보입니다. 수십년 전 방식으로 계속 일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그만큼의 보상은 없습니다. 일한만큼 돈이나 뭐 다른 보상으로 줘야 하는데 그러기 힘들죠. 언론사의 자산 자체가 흔들리고 있으니까요.
국내 신문사의 야근 구조는 개인의 근성이나 직업윤리의 문제라기보다, 산업 구조 전반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에 가깝습니다. 디지털 전환 이후 언론은 24시간 뉴스를 생산하는 체제로 바뀌었고, 온라인 속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마감 개념이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기자들은 밤낮 없이 대기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일상화됐고, 휴식과 업무의 경계가 흐려진 채 상시 대응 체제가 굳어지고 있습니다. 인력은 줄어드는 반면 기사 생산량과 플랫폼 요구는 늘어나면서, 야근은 일시적 예외가 아니라 상시적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소모적인 노동을 반복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야근이 반복되면서 기사 완성도와 취재 깊이가 떨어지고, 단기적인 속보 처리에 에너지가 소진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자 개인의 헌신과 책임감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조직 차원의 개선 동력이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야근이 ‘당연한 관행’으로 굳어질수록, 이를 문제로 제기하는 목소리는 조직 적응력이 부족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해외 주요 언론사는 야근 문제를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영국 BBC와 가디언 등은 야간·주말 전담 근무조를 별도로 운영해, 낮 근무 인력이 밤중에 호출되는 상황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브레이킹 뉴스 전담 데스크를 두고, 일반 취재 기자는 원칙적으로 야간 대응에서 분리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유럽 대륙권 언론사는 야간·휴일 근무를 가중 노동으로 인정해 수당이나 대체휴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기자 역시 노동자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비교적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사도 야근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구조적 개편이 필요합니다. 우선 야간과 주말에 속보를 전담하는 데스크를 별도로 구성해, 모든 기자가 24시간 대기하는 구조를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처럼 모든 부서가 상시 대기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기자 개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잠식하는 구조입니다. 야간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호출과 과로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습니다.
‘대기근무’를 공식 제도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온콜 근무자를 사전에 지정하고, 대기 시간 자체를 근무로 인정해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실제 호출이 발생할 경우 추가 보상을 제공하는 체계도 함께 마련돼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대기 상태를 비공식적 관행으로 남겨두면, 기자들은 언제든 호출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이는 업무 몰입도와 삶의 질 모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야근 이후의 보상 체계 역시 명확히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야 시간대 기사 작성이나 취재가 발생한 경우, 다음 날 출근 시간을 자동으로 조정하거나 대체휴무를 부여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현재처럼 팀 분위기나 상급자의 판단에 따라 휴식 여부가 달라지는 구조에서는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야근에 대한 보상은 ‘배려’의 영역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할 노동권의 문제입니다.
아울러 모든 기사를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한다는 관행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합니다. 속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안까지도 야간에 무리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해외 언론은 속보에도 등급을 매겨 반드시 즉시 처리해야 할 사안과, 다음 날 보도해도 되는 사안을 구분합니다. 국내 언론 역시 데스크 차원에서 이러한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불필요한 야간 취재와 기사 생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편집 전략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이슈를 다 다루려는 관행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기사 내용의 획일화 역시 비판적으로 돌아볼 지점입니다. 주요 언론이 동일한 사안을 동시에 다루면서 기사 구성과 논조까지 유사해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속보 경쟁과 ‘빠짐없는 보도’에 대한 강박이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각 언론사가 모두 같은 뉴스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려다 보니, 불필요한 야간 노동이 발생하고, 동시에 매체 간 차별성은 약화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결국 야근 구조 개선은 노동 환경의 문제를 넘어, 언론의 경쟁 방식과 보도 전략 전반을 재설계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모든 뉴스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는 방식이 과연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고 있는지, 아니면 인력 소모와 기사 획일화만 낳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각 매체가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영역에 자원을 배분하는 전략이 병행되지 않는 한, 야근 구조 개선 역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신문사 야근 문제는 복지 차원의 논의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언론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구조 개혁의 문제입니다. 야간 전담팀 운영, 온콜제 도입, 야근 보상 제도화, 속보 처리 기준 재정립, 기사 생산 방식의 선택과 집중까지 포함한 종합적 개편이 이뤄질 때, 비로소 ‘버티는 기자’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기자’가 가능한 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징징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좀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후배들과 언론계 전반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