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방송 기사를 보면 마지막에 기자이름과 함께 이메일이 기재돼 있다(조선일보는 기자 이름만 있다). 이를 '바이-라인(By Line)'이라고 한다. 기원은 영문 기사 끝에 'Reported by'라고 쓰이는 관행이라고 한다. 이 기사를 어떤 기자가 썼는지 알려주는 표식이자, 기자 개개인이 해당 기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입사 일주일 후 바이라인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대부분은 신입 기자들은 바이라인 선정에 공을 들인다. 예전 선배들은 그냥 편하게 정했다. 이름이 김철수라면, cskim@XXXX.com 등으로 많이 썼다. 신세대 기자들은 좀더 고민을 한다. 정의(justice)나 눈(eyes) 사실(fact) 등 기자의 덕목관련 바이라인도 많다. 나는 foryou로 정했다. 당신을 위한 기사, 여기서 당신이라면 뭐 갖다붙이기 나름이겠지만 보다 약자와 사회 소외층을 뜻하는 걸로 지었다. 매우 허세롭지만 그래도 신입기자로서 낮은 곳을 향하겠다는 내 다짐이 반영된 바이라인이다.
수습 시절 만든 아이디는 기자로 사는 내내 이름 뒤에 붙어다닌다. 매일 기사작성 프로그램에 로그인할 때마다 입력해야 하는 것도 이 아이디다. 한국기자협회는 바이라인을 크게 이니셜형, 재치형, 의미부여형으로 나눴다. 이니셜은 가장 흔한 방식이고, 재치형은 말 그대로 재미있는 아이디를 뜻한다. 박대기 KBS 기자가 대표적이다. 2010년 폭설 현장을 중계하던 그는 온 몸에 쌓인 눈과 이메일 아이디 ‘waiting(대기)’으로 화제가 됐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내 바이라인인 foryou는 의미부여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수습 시절, 내 바이라인이 박힌 기사를 써보는 게 소원이었다. 6개월간의 수습 기간 중에 내가 취재해서 단독 바이라인이 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훈장이자 명예였다. 기자들 사이에선 입봉(방송국 PD는 첫 작품을 찍을때 이런 용어를 쓴다고 한다)이라고 부른다. 수습 기자가 취재해온 내용은 부정확한 것이 많다. 기사 쓰기도 익숙치 않다. 그래서 일진 기자나 선배가 대신 봐주고 그 선배 바이라인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단독 기사를 발굴했을 경우에는 회사에서도 수습의 바이라인만 넣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수습들은 기를 쓰고 좋은 기획이나 단독기사를 발굴하기 위해 경찰서를 누빈다.
아직도 나는 첫 바이라인 기사를 기억한다. 수습 첫 라인이 광진 라인이었는데 지역 시민단체를 검색하다가 장수축구연합회를 발견했다. 축구대회를 한대서 갔는데 은근 재미가 있었다. 선배가 기사를 봐주셨는데 내 바이라인이 뒤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뿌듯했다. 사실 별 기사는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수습이 공들였던 기사라 즐거웠다.
기자들은 자존심이 세다. 하나의 기사를 가지고 협업할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최근 검찰이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 청와대가 반응을 낸다. 그러면 기사를 하나로 합쳐야 한다. 이 경우 바이라인이 2, 3명이 될 수 있다. 이때 누구의 바이라인이 앞에 올 것인가를 두고 갈등이 벌어진다. 한 경제지는 무조건 선배 바이라인이 앞에 오는 관행이 있다. 다만 최근에는 젊은 기자들사이에서 연차가 무슨 상관이냐, 기사에 기여한 대로 바이라인을 붙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7매짜리 기사인데 3.5매씩 썼을 경우 참 애매한데 그만큼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는 것 같다.
바이라인에 이메일이 기재되기에, 논란이 되는 기사는 항의 메일도 폭주한다. 한번은 수백통의 메일을 받았는데 내 이름을 언급하며 '이 기레기야 정신차려라'라고 했다. 의견이 다를수 있으니 이해한다. 다만 부담이 좀 생겼는데 그만큼 기사를 정확하게 써야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사실 9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 신문 대다수 기사에는 바이라인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정치·사회·경제면 기사에는 기자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영미권 언론도 비슷했다. 기사는 기자 개인이 아니라 언론사 전체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게 이제 슬슬 개인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분위기가 변하는 것 같다.
바이라인이 '특별취재팀'으로 붙는 경우도 있다. 말그대로 여러 기자가 붙어서 큰 기획기사를 쓴다거나 할때 이렇게 표기하지만 민감한 경우에도 이런 바이라인을 쓴다. 회사 사장이나 회장에 관해 일방적으로 좋은 기사를 쓸때 기자 개인을 보호하기위해 사용한다. 인수권을 두고 호반건설과 갈등을 보이는 서울신문의 경우 호반건설의 비리와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에 기자 개인이 아니고 특별취재팀 바이라인으로 작성된 경우를 봤다. 그만큼 바이라인은 책임의 문제다. 언론사 기자 뿐 아니라 기자를 꿈꾸는 언론고시생들도 미리 본인의 바이라인을 생각해보고, 그 안에 담겨있는 부담과 사명을 되새기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