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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ug 14. 2021

정보보고


입사 이후 가장 신기했던 문화는 '정보보고'다. 기사로 쓰기는 민감하거나 애매하고, 하지만 출입처나 각 부처에서 일어난 재미있고 혹은 소소한 뒷얘기를 정리해서 회사에 보고하는 문화다. 정보보고는 언론사 모든 부서가 다 하지만 특히 정치부에서 보편화 돼 있다. 그만큼 말과 정보가 넘치는 동네이기 때문이리라. 청와대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오죽하면 기사보다 정보보고가 중요하다는 말까지 있다. 취재원과의 관계를 고려해 기사는 못 쓰더라도 돌아가는 상황은 제대로 보고하라는 뜻 같다.


정보보고의 루트가 어떻게 올라가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다만 일선 기자들이 올린 보고가 정리되어 사장이나 더 위에 선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높은분들이 정부나 기업 등의 고위관계자를 만날때 좀더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게 정보보고의 의의일까. 난 아직도 정보보고를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해야하니까 하는데, 이런 정보들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 감이 잘 안온다.


정보보고는 주로 사람을 만나야 나온다. 취재원과 식사자리에서 나눈 말과 대화가 주된 정보보고 거리가 된다.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취재원들은 기자들이 정보보고 하는 걸 다 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다가 민감한 주제가 나오면 "이건 정보보고도 하지말아달라"는 식으로 먼저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기자들은 밥 자리도 맘편하지가 않은게, 끝나고 나서 대화 내용을 기억했다가 복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십가지의 키워드가 튀어나오고 술이라도 마실라치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대화의 커다란 흐름 위주로 기억해 정보보고 거리를 만들게 된다. 과거에는 몰래 녹음도 많이 했다는데 요새 같은 시대에 상대방의 허락없는 녹취는 큰일 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냥 정보보고 꺼리 몇개 놓치고 취재원과의 신뢰를 쌓는게 훨씬 낫다.


이렇게 모인 정보보고는 개인에겐 큰 자산이 된다. 몇년간 정리된 정보보고만 읽어봐도 출입처 내부의 돌아가는 상황이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다만 보안이 중요하다. 보통 정보보고는 팀장과 부장에게만 공유하는데, 내용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과거 모 청와대 관계자와 나눈 대화가 유출된 적이 있었다. 밤늦게 그분에게 전화가 와서 "우리가 식사 자리에서 한 얘기가 SNS에서 떠돌고 있다"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도 어떤 루트로 그 내용이 새어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부터 정보보고 보안에 정말 신경쓰게 됐다. 나를 믿고 얘기해준 분에게 피해가 갈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만 정보에 민감한 것은 아니다. 기업에는 대관 담당 직원들이 있다. 국회를 출입하며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법을 만들도록 힘을 쓴다거나 CEO가 국회국정감사나 청문회에 불려올 일이 있을때 빼는 역할을 하는 것도 대관의 업무이지만, 사장이나 회장에게 현안과 전망 관련 보고서를 쓰는 직원들도 있는데 이들은 기자들이 정보보고를 하는 것처럼 일한다.


국정원과 경찰도 비슷하다. 국정원의 경우 국내정보 파트를 담당하는 IO가 사라져서 예전처럼 국내 정보에 민감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보수집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경찰의 경우 각 서마다 '정보과'라는 것이 있는데 각 집회를 관리 감독하는 역할과 함께 각 경찰서가 맡고 있는 지역 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국정원이 존안자료 수집을 멈춘 이후 이러한 경찰의 정보가 정부 내에서 주요하게 쓰이고 있다. 들어보니 정보에 대한 급을 나눠서 일주일에 몇개, 하루에 몇개 써야 한다고 한다. 기사 발제 뿐 아니라 정보보고 압박에 시달리는 기자와 상황이 똑같은 것 같다. 아니, 기자의 경우에는 정보보고 내용이 좀 틀려도 크게 상관은 없는데 이들은 수집한 정보를 윗선에 보고하고 이를 통해 각 정책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좀더 책임감이 클 것 같기도 하다.


각계 각층에서 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역시 21세기에는 정보를 많이 가진 이가 힘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정보는 찌라시의 형태로 바뀌어 여기저기 사고 팔리고 있다. 주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이는 정해져있고 기자와 국정원, 경찰과 기업 사람들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접근하고 어필하려고 애쓰고 노력한다. 취합된 정보는 윗선에 보고되고 중간에 새고, 또 누군가에 의해 팔리며 결국에는 고위 관계자들이 정보를 준 사람들과 술한잔 하며 그 사람이 준지도 모르고 떠들고 공유한다. 참 기막힌 정보의 사이클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네티즌들이 소식에 가장 빠르다 해도 그렇게 물밑에선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이 제한된 이들의 입과 손을 타고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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