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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pr 14. 2023

에이스 기자들


대학교에서 연말마다 언론인 모임을 한다. 그해 새로 입사한 신입 기자들이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하는데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유독 법조나 정당팀 소속 기자들만 출입 부서를 밝힌다는 점이다. "안녕하세요! OO일보 2023년 입사 XXX입니다. 법조팀에서 중앙지검 맡고 있습니다" "OO방송 여당 말진 XXX 기자입니다. 이재명 마크맨 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식. 반면 경찰팀이나 문화부, 국제부 소속 신입들은 주로 매체만 얘기하고 소개를 끝냈다. 현장을 누비는 후배 기자들이 멋있고 대견하면서도 좀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언론사는 유독 에이스와 비에이스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정부나 경찰, 검찰 등 인사 기사를 많이 쓰다보니 그런 성향이 옮겨온 것 같다. 나는 다원화가 생명인 21세기에 발맞춰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다채로워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는데 언론사의 평가 요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른 부서에 비해 고생도 하고, 중요한 기사가 상대적으로 더 많고, 취재도 어려운 부서를 맡은 기자가 더 인정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정치부 대통령실, 정당, 외교부나 국방부 출입이 그렇다. 사회부 법조팀, 경찰팀(요새는 경찰팀이나 사건팀은 잘 안쳐주는 것 같지만) 등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행정과 입법, 수사 권력이 집중된 출입처를 오래 맡고 단독도 많이 가져오고 취재원과 원활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남보다 많은 정보를 소유한 기자들이 에이스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법조팀 경력이라고는 성완종리스트 사태 때 3주 가량이 전부인 나로서는 검찰과 법원, 변호사 업계 전반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정치인이나 기업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법조팀 기자들의 스트레스는 옆에서 봐도 참 대단한 듯 했다. 단독 기사는 쏟아지고 확인은 안 되고, 검사들은 전화를 받지 않고 위에서는 기사를 가져오라고 채근하고.. 취재가 어려운 만큼 단독을 하면 인정을 받고, 나라를 뒤흔들 만한 이슈를 대중에게 던질 수 있는 곳이 법조팀이다. 정치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 좀 유난이라는 생각도 지울수 없다. 정치부와 법조팀 출입 기자들 일부는 대놓고 타 부서 기자들을 무시하고, 얘기 안되는 기자로 치부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난 의원들과 식사 자리에서 당이나 나라의 미래에 대해 훈계하고,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펼치는 기자를 보며 "그럴거면 본인이 의원을 하시지"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삼킨 적이 많았다. 검찰이 경찰을 무시하듯, 사건팀 기자를 향해 형사소송법도 잘 모른다며 우습게 보는 법조 기자도 목도했다. 권력을 쥔 무리가 권력이 없는 집단을 깔보는 버릇이 출입 기자들에게도 그대로 녹아드는 모양이다. 


정치부와 법조팀에 몸담으며 다른 부서 기자보다 훨씬 더 고생하고 노력해도 받는 월급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하는 보람과 원동력을 찾다보니 이런 오만한 성향이 자연스레 몸에 녹아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에이스 기자라는 말은 훌륭한 기자를 칭찬하기보단 윗선에서 좀더 기자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뽑아내기 위해 붙이는 명사일지도 모르겠다. 후배를 에이스와 비에이스로 나누고, 비에이스를 향해 "너도 에이스가 되고 싶어? 그럼 생을 더 갈아넣어서 취재를 해. 그러다 보면 정치부나 법조팀도 보내줄 수 있어" 하는 식으로. 

 


나도 과거에는 칭찬에 목마른 적이 있었다. 회사 내외에서 인정받고, 어차피 돈을 포기하고 기자를 선택했다면 언론계에서 에이스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그러나 이제는 좀 내려놓았다. 정치부와 법조팀 기자들도 소중하지만 소위 비주류 부서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생산하는 기사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론인 모두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꿈을 꾸고 일을 시작한다. 나쁜 기업, 나쁜 정치인을 한줄 기사로 경계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다만 경제부 기자가 세금 제도가 어떻게 바뀌고 우리가 낸 돈이 어떤 예산으로 얼마나 편성되는지 쓰는 것도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국민에게 전하기 위해 전장(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곳만 가긴 하지만)으로 뛰어드는 국제부 기자도 소중하다. 넘쳐나는 스포츠 덕후들에게 재미있는 기획기사로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포츠 기자와 바뀌는 교육 제도 개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 기자도 각자 맡은 위치에서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 생태계를 책임지는 기업의 성장전략을 취재하는 산업부 기자도 절대 편하지 않다.  


기자라는 직업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기레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 에이스 기자가 되기 위해 뛰는 수많은 기자들이 있다. 정치부와 법조팀, 또는 사건팀이 아니라고 이들을 비에이스로 묶는 것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인 것 같다. 어차피 자기 만족이겠다만 좀더 겸손하고 배려심 있는 기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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