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많은 기자 여친, 헤어져야 할까요?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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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네이트 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기자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됐습니다.


신문기자인 여자친구를 둔 한 30대 초반 공기업 직원의 하소연이었는데요.


약간 기자들은 남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 많아서 재미있었어요.


글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신문기자인 여자친구가 있는데 너무 저녁 술자리가 많고 해서


이해가 잘 안간다는 게시물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회식을 많이 하고, 사람들과 술을 많이 마시느냐는 질문이었어요.


아울러 이런 모습이 계속된다면 다른 직업을 가지라고 충고할 생각이거나 안되면 헤어질 거라는


의지도 담겨있었습니다.


참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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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예전에 브런치에 관련 글을 하나 썼거든요. 혹시 궁금하시면 보고 오셔도 좋겠습니다.


https://brunch.co.kr/@highstem/277


저도 과거에 연애를 하거나 할때 애인 혹은 친구들이 제 생활에 대해 여러차례 의문을 표한 적이 있습니다.


청와대 출입할때는 평일 5일 가운데 4일 이상 저녁에 술자리를 했던 거 같습니다.


국회 출입떄도 비슷했고요. 게시물 내용처럼 산업부 기자할때는 점심에도 술을 자주 마셨습니다.


사실 기자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부어라마셔라 하진 않지만 취재원을 만날 떄 술자리가 동반되는 경우가 아직도 허다합니다.


코로나 이후 술자리가 많이 사라진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술자리 자체가 없어지진 않았고 2차, 3차를 가는 빈도가 줄었다고 보시면 편할 거 같습니다.


기자가 만나는 취재원들 자체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물론 술자리 안해도 됩니다. 하지만 반강제적으로 가야하는 자리가 많습니다. 선배나 부장, 데스크 모시고 가는 자리가 그렇고요. 그리고 기사쓰는데 도움 준 취재원이 저녁을 제의하는 경우도 있고요. 점심때 만났는데 사람이 좋아서 좀더 딥하게 알고 가고 싶을때 저녁 술자리를 종종하게 됩니다. 취재원과 더 친해지고, 이를 통해 뭐라도 정보를 더 듣고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한 노력입니다. 업무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자생활 하다보면 꼭 업무가 아니더라도 편하고 좋은 사람들과 개인적인 친분으로 술자리도 많이 하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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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술을 안 마시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뭐라고 할일이 전혀 아니고요.


다만 그들은 술자리를 안 가는대신 취재원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훨씬 더 노력합니다.


술은 인간 관계를 쉽게 쌓아주는 도구인데, 이걸 안하면서 기자 생활을 하려면 다른 노력이 수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전 오히려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근데 진짜 왜 이렇게 기자들은 술을 마시고, 인간 관계에 혈안이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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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업자체가 영업직 성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되어 각자 언론사에 소속되면 출입처를 부여받습니다. 그럼 그 출입처를 맡아서 책임지고 관련 기사를 써야 합니다. 보도자료도 쓰긴 하지만 통상 정부부처나 기업, 공공기관과 국회 등은 모든 정보를 다 기자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홍보하려는 좋은 내용만 주로 냅니다.


기자는 그런 정보 뿐 아니라 민감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찾아내고, 발굴하고, 보도해야 합니다. 그런 자료나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자들은 각 출입처의 취재원들을 만나서 이런 정보를 들어야 합니다. 근데 누가 미쳤다고 처음 보는 낯선 기자에게 그런 정보를 줍니까? 편하고 친한 기자에게 한줄 정도 흘려주는 겁니다. 친한 관계를 쌓고, 유지해야 합니다. 영업팀 직원이 영업을 뛰듯이 기자도 취재원을 향해 영업에 나서는 겁니다.


언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기자가 매일 접대를 받고, 좋은 기사만 써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기자들도 있겠지요. 많을 겁니다. 하지만 진짜 기자 생활을 열심히 하는 기자들은 갑이 아니고 오히려 을입니다. 정보는 취재원에게 있고, 그들을 구스르고 달래서 한 마디라도 들어야 되니까요. 접대 받을 시간이 어디있습니까? 우리가 그들을 접대하고 다른 기자들이 모르는 정보를 듣고 기사를 써야 하는데요. 전 일부 편하게 사는 기자들의 사례만 침소봉대된 현실이 좀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보도자료만 매일 쓸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기사를 계속 발굴하려면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서 정보를 듣고 해야 합니다. 처음만나면 어색하잖아요 할말도 없고. 그러다보니 자꾸 술을 찾게 되는 겁니다. 취재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좀더 편하게 술자리 하면서 기자와 알아두고, 정보를 주든 안 주든 나중에 도움이 되도록 사귀어두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술자리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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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 글을 보니까 취재원과의 술자리는 알겠는데, 기자들끼리는 왜 이리 자주 만나느냐고 궁금해하는 대목도 있더라고요.


일단 기자들 사이에는 꾸미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거 관련 글도 쓴적이 있거든요? 한번 보시면 이해가 더 빨라지실 수도 있겠습니다.


https://brunch.co.kr/@highstem/280


출입처라는 제도 때문에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과 함께 소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청와대 기자단은 300명이 넘는데, 각 회사에서 1~3명씩 나와있습니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고 자리도 바로 옆자리니까 서로 자연스럽게 알고 지내게 됩니다.


일단 기자는 취재원과 1대1로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기자 여러명과 취재원 1명이 동시에 술자리를 갖는 게 일반적입니다. 취재원 입장에선 여러명의 기자를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고요. 기자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합니다. 1대1로 만나면 최소 한시간 이상 계속 대화를 해야하는데 처음 만날 경우에 할말이 없지 않겠어요? 이미 취재원과 관계를 맺은 기자와 같이 보면 취재원도 편하고 기자도 편합니다. 그렇게 1차로 기자-취재원 자리가 많습니다.


끝나면 취재원은 가고 기자끼리 한잔 더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같은 출입처를 맡은 타사 기자가 훨씬 더 편합니다. 우리 회사 선후배보다 더 편한 경우도 많습니다. 타사 선배도 명확히 선후배가 나눠지지만 오히려 나이가 같거나 학교가 비슷하면 친구처럼 지낼수도 있고요. 그리고 오늘 만난 취재원과의 대화를 같이 복기할 수도 있고, 맡은 출입처 현안 얘기나 취재원 얘기도 더 하면서 출입처 이해도도 높일 수 있습니다. 기자 사이의 평판도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취재원들이 타사 기자한테 저의 신상이나 평가를 물어보기도 하니까요.


자기는 술을 안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즐기지 않는다면 술자리를 안해도 됩니다. 취재원이나 타사 기자들도 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다른 방식으로 친분을 쌓고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15년차 기자인 저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기자들은 매일 업무를 위해, 생존을 위해 술자리를 뛰는 겁니다. 사치나 즐기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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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입장에선 이해가 당연히 어렵겠습니다.


왜 업무 시간이 끝났는데도 계속 술을 마시느냐. 왜 일요일에도 출근을 하느냐. 야근이 왜 이렇게 많고, 연차가 올라가는데도 왜 이렇게 매일 전정긍긍하느냐. 기사 거리를 어떻게 매일 발굴하느냐. 그게 가능한가 등등.


근데 어쩌겠습니까. 저희 일이 그런것을.


저는 언론사의 취재 구조와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에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채로 사람을 만나서 정보를 듣는게 너무 구닥다리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종 데이터를 활용해서 인사이트를 얻고, 보다 근본적이고 깊이있는 기사를 쓰는 게 필요합니다. 몇년 후에는 이런 방식이 더 활성화될지도 모릅니다.


근데 일단 그전에 내일 쓸 기사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출입처 핵심 키맨과 만나서 저녁먹고 술 마시면서 최근 현안 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데 나만 빠지면 뒤처지고, 물 먹을 텐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경쟁이 일상인게 기자이고요. 이런 데일리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일단은 이런 업무 구조가 쉽게 바뀔거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개인 가치의 문제입니다. 어쩔수없는 기자업무를 감내하고라도 사회를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남아서 일하는 겁니다. 하지만 개인 시간과 이런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만두고 떠날 수 있습니다. 어느쪽도 욕할 수 없고, 비판하기 어렵습니다. 개인 선택입니다.


문제는 네이트 판 글 처럼 주변 사람들의 우려입니다.


저는 기자 개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좀 다른 직업 구조라는 점을 이해해주고, 당사자가 기자질을 너무 재밌어하고 하고 싶어하면 어느정도는 이해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걱정과 우려도 좋습니다. 그리고 술자리를 좀 줄이는게 좋겠다는 조언 정도면 모르겠는데 직업을 그만두게 한다고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되기도 어렵고 수행하기도 어려운데, 또 그만큼의 보상은 없고 건강도 나빠지는 이 직업. 기자질을 저도 사실 어떻게 15년 동안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밤까지 술 마시며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 접대를 받는게 아니고 조그마한 정보 하나라도 더 들으려는 을(乙) 기자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자들을 걱정하면서 신경써주는 애인과 배우자, 지인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럴바엔 그냥 때려치라거나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무작정 힐난하지는 말아주세요.


저희도 저희 나름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니까요. 조금만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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