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신입 기자다. 어찌저찌 국회 말진으로 인사가 났다고 치자. 선배들은 당신에게 가장 먼저 이런 조언을 할 것이다. "야 빨리 얘기되는 꾸미부터 구해" 혹은 "전임 선배한테 꾸미좀 물려달라고 해." 나는 청와대로 정치부를 시작했다. 5년차에 갔으니 그나마 좀 늦은편이었다. 역시 청와대 춘추관에 발을 딛자마자 반장 선배는 말했다. "좋은 꾸미 찾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꿈도 아니고 도대체 꾸미가 뭔지 이해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마와리나 하리꼬미, 도꾸니끼 처럼 역시나 일본말이었다. 'くみ'는 일본어로 한쌍, 또는 어떤 일을 함께 하기위해 만든 집단이란 의미다. 알음알음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모임을 뜻한다. 언론계에선 소위 기자 몇명이 카카오톡방을 파고, 각종 정보를 공유하며, 정치인이나 취재원 약속자리를 함께 가는 그런 개별적 모임을 가리킨다.
당신이 기자로서 국회 소통관이나 대통령실 기자실에 진입하는 순간 바로 깨닫게 된다. 점심시간만 되면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취재원과 약속을 간다. 그런데 대부분 매일 같이 가는 사람끼리 간다. 그게 바로 꾸미 문화였다. 신문은 신문끼리, 방송은 방송끼리 꾸미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다른 부서 가운데 유독 정치부에서만 꾸미문화가 발달해있다. 이런 이유 때문 같다. 우선 정치부는 챙겨야 할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이 너무 많다. 혼자서 다 커버하기가 힘들다. 여러 기자가 한데 모여 워딩을 서로 나눠야 한다. 어차피 공개된 회견이니 단독할 것도 없다. 그러니 일정한 모임이 필요하다.
또 정치부는 신뢰가 중요하다. 취재원을 만나도 오프 전제로 하는 이야기 등 민감한 사안은 쓰지 않거나 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야 한다. 또 정치부는 식사를 의원과 1대1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수십년 된 베테랑 기자거나 부장, 국장급이면 모르겠는데 일반 기자들이 의원을 독대해서 식사하는 건 잘 못 봤다. 정치인들도 여러명의 기자를 한꺼번에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러니 기자들은 편의를 위해 꾸미를 짜고, 꾸미원들과 약속을 하고, 여기서 들은 내용을 복기해서 꾸미 내에서 공유한다. 꾸미란 너무나 방대한 업무를 믿을 만한 동료 기자와 함께 나누고 돕는 편의상의 조직인 듯 하다.
잘 나가는 꾸미는 취재원들도 안다. 일 잘하고, 인맥 넓고, 기사 잘쓰는 기자들이 모였다고 소문이 나면 취재원도 그 꾸미를 더 먼저 보거나 챙기려고 한다. 그래서 꾸미는 전략적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언론고시를 같이 준비하거나 대학 선후배 등이 함께 만들기도 하지만 일단 어느정도 얘기가 되는 기자라고 인정을 받아야 꾸미에 들어가기도 쉽다. 한 선배가 꾸미결성 팁을 알려줬는데 우선 약속을 잘잡는 사람이 필요하다. 인맥이 넓고 붙임성 있는 성격의 기자다. 기억력이 좋아 복기를 잘하는 기자도 있어야 한다. 또 누구는 화술이 좋아 자칫 어색해질수 있는 약속자리를 부드럽게 이끌면 좋다. 잘생겼거나 예쁜 것도 당연히 플러스가 된다. 모든게 경쟁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언론계, 특히 정치부에선 좋은 꾸미를 들어가는 게 시작이자 끝이다. 정치부 취재는 인맥이다. 아는 의원과 보좌관이 많아야 뭐라도 물어보고 새로운 정보도 듣는다. 아무리 유력매체 기자이고, 서울대를 나왔다고 해도 국회에 처음 발령났을때 그 기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꾸미를 들어가면 일단 취재원 약속이 풀로 차 있다. 수시로 티타임도 하면서 인사를 하기도 좋다. 그렇게 사람을 하나둘씩 사귀어가면서 내공을 쌓는 것이다. 선배들이 왜 그렇게 꾸미 선택을 잘하라고 하는지 정치부에 간지 3개월이 지나서야 조금씩 깨닫게 됐다. 너무나 힘들고 지치는 정치부 생활을 이끌어주는 동아줄이 바로 꾸미였던 것이다.
그러니 좋은 꾸미는 경쟁도 치열하다.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 나도 청와대 처음 갔을때 약 5개월 가량 꾸미에 들어가지 못했다. 국회에서 마크맨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청와대로 간 이른바 베테랑 기자들끼리 만든 여러개의 꾸미에서는 산업부 출입하다가 갑자기 넘어온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일견 서러웠으나 이해도 갔다. 꾸미라는 조직도 어찌보면 비즈니스라 내가 그들에게 줄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처음으로 들어간 꾸미는 대부분 일간지로 구성된 고연차 모임이었다. 내가 막내였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브리핑 워딩을 정확하게 쳐서 빠르게 그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전담했다. 뭐라도 쓸모있는 꾸미원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컸다.
일부 꾸미는 면접도 본다. 대놓고 질문을 하는게 아니고 "저녁자리 한번 같이해 보실까요" 하는 식으로 부른다. 가서 취재원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지,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등을 점검한다. 참 먹고 살기 힘들다.
초선 의원들은 꾸미라는 말을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금세 익숙해진다. "아 이렇게 꾸미인가요?"라고 먼저 묻는 사람도 많이 봤다. 이걸 배워서 친한 의원 몇명이 꾸미를 만들기도 한다. 따로 카톡방이나 텔레그램 방을 파서 현안 관련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나는 무수히 많은 꾸미들이 다툼으로 사라지는 것을 많이 봐 왔다. 서로 너무 일만해도 꾸미가 잘 안돌아 간다. 어느정도의 친밀함이 전제돼야 한다. 다만 친목적 모임으로 전락하면 약속도 안잡고 블핑도 안올리는 죽은 모임이 되고 만다. 그 기준을 어떻게 맞추는지가 참 어렵다.
꾸미가 만능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폭력조직 이름에 꾸미를 붙이기도 한다. 배타성이 너무 강화되면 오히려 안에서 곪는 일도 많다. 그래도 기자 숫자에 비해 너무 일이 많은 한국 언론의 특성상 정치부와 법조팀을 중심으로 한 꾸미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