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사가 나서 출입처가 바뀌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뀐 출입처의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부처라면 장관, 기관이라면 기관장, 경찰이면 경찰청장, 검찰이면 검찰총장 등등이요.
번호는 출입처 공보실에서 줄때도 있고 안 줄때도 있습니다.
안주더라도 저는 무조건 발령받은 그 주에 출입처장의 번호를 어떻게든 확보해서 문자나 전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번호를 안 주면 더 땡큐입니다. 제가 다른 기자들과 차별화될 여지가 있는 거니까요.
이른바 신고식이죠. 제가 새로 왔다는 걸 기관장에게 알리는 겁니다.
인사를 한 이후 부터 저는 하루에 1-2번씩은 기관장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뭐 취재도 되고, 오늘 간담회 어디서 보니까 좀 피곤해 보이시더라 등등 스몰토크 다 포함해서요.
물론 답이 없는 경우가 90%가 넘습니다. 다들 바쁜 분들이시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매일 연락을 하다보면 그쪽에서 저를 기억하고 뭔가 다른 기회가 옵니다.
따로 티타임을 한다든가, 식사를 할수도 있고요. 아니면 발표한 정책의 뒷얘기나 디테일을 따로 기관장에게
들을 수도 있습니다.
뭐라도 해보는 거고, 그 노력과 정성을 알아주는 기관장들이 또 의외로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기관장 밑에 있는 실무자분들을 무시하고 스킵한다는 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취재가 막히거나 뭔가 민감한 문제는 실무자에게 물어보기 좀 그렇습니다.
그럴때마다 기관장이나 출입처의 가장 높은 분에게 연락하면 의외로 사안이 잘 해결됐던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저를 신기해하는 취재원도 많았습니다.
저도 당연히 좀 민망하고, 소소한걸 저렇게 대단한 사람에게 물어도 되나 싶을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냥 미친척하고 보냅니다. 제가 잘 몰라서요.. 이러면서요. 그러면 또 의외로 설명을 잘 해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새 기자분들은 다 너무 착하고 예의가 바릅니다.
그래서 높은 위치의 취재원에게 연락하는 걸 머뭇하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맨날 대리 과장 한테만 전화할 필요도 없고, 그때 그때 판단해서 전무 상무 부사장에게도 하고. 장관 차관에게도 하고.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루트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는 매우 효율성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기자입니다.
민감한걸 대리에게 물어보면 그는 과장 차장 부장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의 결제를 받아야할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사장에게 직접 물어보면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거지요.
물론 사장님께서 홍보팀을 좀 지적할수도 있겠습니다. 왜 홍보 안거치고 바로 문의가 오게 만드느냐는 식으로요.
홍보팀이나 공보팀 분들께는 너무 죄송합니다만.. 그렇다고 기자가 홍보를 꼭 거치라는 법은 없잖아요?
각자 역량과 능력과 관심에 맞게 취재원을 다르게 접근하면 되는거지요.
근데 가끔 고인 출입처에 가면 이렇게 CEO나 기관장에게 기자가 직접 전화하면 역정을 내는 그런 홍보팀이나 공보팀이 있습니다.
제가 세종시에서 산업통상자원부를 출입할 때 한국수력원자력이 딱 그랬습니다.
당시 황주호 사장에게 뭐 물어볼게 있었습니다. 미국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와의 소송 건 때문에요.
한수원 홍보팀에게 사장 번호를 물어봤는데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개인정보라면서요.
그래서 저는 국회 산자위 소속 한 국회의원에게 황 사장의 번호를 받았고요, 바로 연락을 드려서 질문지를 전달했습니다. 뭐 이렇다할 만족스러운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근데 갑자기 한수원 홍보팀장이 연락이 오더라고요. 역정을 내면서요.
왜 자신에게 말을 안하고 바로 사장에게 물어보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사장 번호를 물어봤고, 안 주셔서 다른 루트로 번호를 구해서 연락드린거라고 하자 그쪽에선 자신이 난처해졌다고 계속 화를 내더라고요.
제가 취재하나하나 공보팀에 허락받고 해야 하느냐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장에게 직접 전화한 기자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대단하다는게 아니고, 그만큼 그런 전문적인 출입처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도자료 쓰고, 사장의 기자간담회때만 소통하고.
저는 하루하루 쓸게 없어서 뭐라도 알아본건데 홍보팀이 이렇게 나오니 참 황당했습니다.
너무 오래 홍보일을 하다보니 본분을 잊은거지요. 그냥 기자를 자신들이 휘두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보통의 기관장들은 자신에게 연락하는 기자에게 잘 응대합니다.
정보를 주지 않더라도 서로 예의를 갖추고 소통합니다.
다만 권위에 찌든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기자의 연락을 싫어하고 기분나빠하기도 합니다.
또 국장급 기자와만 소통하려는, 소위 급을 맞추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자를 잘 대해달라고 징징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에게 연락하는 기자의 수고를 인정해주고, 또 다른 기자들과 다르게 대해주는 그런 기관장들이 일도 참 잘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뭐 나이가 엄청나게 많지는 않지만요.
요새 젊은 기자분들은 너무 착하고 예의가 바른것 같습니다.
취재원을 막대하라는게 아닙니다. 다만 좀더 능청스럽게, 더 뻔뻔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높은 사람일수록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더 자주 연락하고 하면서 내게 정보가 들어오는 루트를 다변화 해야 합니다.
홍보팀 공보팀만 파면 안 됩니다. 홍보팀과 기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건 좋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실무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CEO와 친해져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해서 당신들의 기관장을 열심히 취재하고 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실무자와 대화를 나눌 아이템 거리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기자는 정해진 창구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도자료를 받아쓰고, 홍보팀이 연결해주는 사람만 만나고, 허락된 질문만 던져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취재는 원래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민망하고, 때로는 눈치도 보이는 일입니다. 그래도 그 한 걸음을 누가 대신 해주지는 않습니다.
후배기자들이 너무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높은 사람에게 연락하는 걸 어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예의를 지키되, 괜히 스스로 선을 긋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가 취재원을 대하는 데 꼭 정답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더 많은 사람과 닿아보려는 사람, 한 번 더 물어보는 사람, 민망해도 끝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법만 아니라면 이 행위를 규제하려는 사람은 그냥 무시하세요.
그냥 그렇게 권위라는 허물에 둘러쌓여 평생을 살아온 발전없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