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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01. 2020

일용직 노동자 변사 미스테리


2013년 4월 28일 새벽 6시. 당시 수습기자였던 나는 선배에게 이런 내용의 사건 보고를 보냈다.



A 경찰서 변사 관련 취재


-지난 3일 강동구 천호동 B고시원에 살던 C모(40·남)씨가 실종됨. 실종 24일 만인 27일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 

-27일 자정에 A 경찰서 형사들이 선원고시원 들러 수사. 하지만 cctv가 17일까지밖에 녹화되어있지 않아 고시원 총무를 소환. 

-작년 9월경에 고시원에 들어온 C씨는 노가다를 하며 월 21만원짜리 고시원 방에 혼자 살았음. 술을 좋아했지만 밖에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고시원에서 혼자 마심.

-C씨의 형은 “자살이 아니라 누가 민 것”이라 주장하고 있음. 고시원 총무가 보기에 C씨는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B고시원은 방이 48개로, 모두 입주자가 있는 상태.

-C씨가 생전에 자주 찾아오던 나이 많은 사람이 있었음. C씨가 실종된 3일 이후 갑자기 발길이 끊김. 찾아오는 이는 총무가 고시원에 오기 전에 고시원에 살고 있었음. 고시원 총무 “아마 그 사람이 밖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한강에 빠뜨렸지 않겠느냐"

-C씨는 1월에도 음주로 쓰러진 적이 있음.




주 52시간 근로제 덕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언론사 신입기자들은 경찰서에서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간 먹고자고 하며 사건 취재를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초짜 기자에게 사건을 얘기해줄 경찰은 어디에도 없다(개인정보보호법에 걸릴 수도 있다). 사건이 없으니까 1시간 주기로 돌아오는 보고 때마다 선배에게 판판이 깨졌다. 그래서 수습들은 경찰서 주변을 배회하며 사건을 신고하러 온 사람 등에게 "왜 오셨느냐"고 캐물었다. 어떻게든 외곽에서 취재하는 것이다. C씨 변사 사건도 그렇게 주워들었다.


당시 경찰은 C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자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고시원에 같이 살던 사람은 C씨를 두고 엘리트라고 했다. C씨는 결혼하지 않았고, 매일 술을 마셨다. 그는 호주로 유학을 다녀와서 영어를 잘했고 대학도 나온 인물이라는 게 고시원 동기의 설명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노가다를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공구리(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골재 따위를 적당히 섞고 물에 반죽하는 것) 치다가 친해졌단다. 그는 C씨를 두고 "한강에 갈 스타일이 아니다.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의문의 지점은 C씨 앞으로 든 보험이었다. 고시원 동기는 C씨가 사망하기 1~2달전에 형과 가서 생명보험을 들었다고 했다. 공교롭게 보험 가입 2달만에 사망한 것이다. 고시원 총무도 "C씨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 하체에 힘이 없어서 혼자 한강까지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다리에 힘이 없는데 어떻게 노가다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래서 노가다도 많이 못했다고 하더라. 다리를 어디서 다친 모양"이라고 했다. 


수소문 끝에 C씨와 같이 노가다를 하던 이를 찾았다. 그는 "C씨가 형 도움 덕에 보험을 하나 들었다고 했다. C씨가 자꾸 술을 먹고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는데 병원비가 많이 나오니 보험하나 들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고시원에 자주 찾아오던 지인과도 통화했는데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경찰에서도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평소 파란색 슬리퍼를 주로 신던 C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당시 정장 차림인 점도 의문이 들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다리가 아픈 C씨가 일부러 정장 차림으로 한강에 몸을 던졌거나 누군가 살해해 한강에 유기한 것이다. 그러나 유서는 나오지 않았다.     


C씨는 3형제였다. 3형제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 의지할 곳이 많지 않았다는 게 C씨 지인들의 공통된 워딩이었다. C씨는 한가지 일에 매여있는 걸 싫어했다. 안정된 직장보다는 일당제로 일하는 게 편하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술을 마셨다. 외로움을 잊기위한 수단이었을 터다.





취재는 여기까지였다. 보험은 의혹일 뿐, 확인이 잘 되지 않았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기자들은 너무 한 사람의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거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살 혹은 타살로만 보면 안돼. 우리는 죽음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돼. 큰 틀에서 봐야지"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갔지만 알겠다고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C씨의 명복을 빌었다. 기자가 되고나서 내가 목도한 첫 죽음이었다. 한 경찰은 "한강물을 다 빼면 시체가 수백구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C씨와 같은 이가 많다는 이야기다. 사연없는 죽음은 없다. 모두가 억울함과 의혹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수습기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던 경찰서 기자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초중고를 나와 대학에 가고, 전역 후 취직했다. 온실 속 화초같은 삶이었다. 다만 기자가 되고나서 뛰었던 거리의 세계는 다른 영역이었다. 위험하고 안타까운 일이 비일비재했다. 모두가 잘 사는것만 같았는데 꼭 그런건 아니었다. 못보고 못들은 삶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거리의 인생은 삶의 어두운면과 맞닿아 있다. 다툼과 갈등이 있고, 가끔 범죄도 벌어진다. 눈 감으려 해도 우리의 삶이다. 



간절히 바라던 기자였던만큼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다만 실제로 부딪치니 감당이 잘 안됐다. 그래도 기자니까 일반사람 보다는 조금더 깊숙이 우리의 삶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작은 한국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울고 웃고 떠들고 싸우고 한다. 8년간 보고 들은 날 것의 삶을 정리하며 행복에 대해 기록하려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일까. 거리의 삶을 주제로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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