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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11. 2020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vs 믿을 수 없는 이야기


#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더 헌트' 그리고 무고한 남자들


열다섯 여중생이 만원 지하철에서 내린 남자를 따라온다. 소매를 잡아당기며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 치한이죠?" 교복 차림의 소녀는 이 남자가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엉덩이와 몸을 만졌다고 주장한다. 소녀가 울먹이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경찰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자백을 강요한다.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벌금을 내는 식으로 조용히 처리하자고 한다. 변호사도 "성범죄는 재판을 해도 99% 지게 돼 있다"고 한다.

 

남자는 너무 억울하다. 여중생의 몸을 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수많은 증거도 소녀의 눈물을 이길 수 없다. 1년 동안 법정 다툼을 벌인다. 결국 남자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 3개월, 집행유예 3년을 받는다. 그렇게 성범죄자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2007년 개봉한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이렇게 성범죄 수사, 재판이 피해 여성의 진술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정해 무고한 남성이 피해를 입는 현실을 꼬집는다. 억울하게 성폭력범으로 낙인찍히는 남자들도 있는 것이다.



덴마크 영화 '더 헌트'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부모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유치원생 클라라. 그녀는 아빠의 친구인 루카스 선생님이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해주자 호감을 느낀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클라라는 루카스 선생님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자발적인 행위였다. 그러자 루카스 선생님은 "이런 건 엄마 아빠에게나 하는 것"이라며 핀잔으르 준다. 클라라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루카스 선생님에게 앙심을 품는다. 그리고 원장선생님을 찾아가 거짓말을 한다. "루카스 선생님 고추가 앞으로 뻗어 있었어요. 막대기처럼"이라고.

         

사실 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절대적 약자처럼 보이는 여자 유치원생의 거짓말은 마을 전체에 진실처럼 퍼졌고, 마을 사람들은 루카스의 집에 돌팔매질은 한다. 루카스는 경찰 조사까지 받고 무혐의로 풀려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며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한 아이의 거짓말로 한 남자의 인생이 송두리째 파멸한다. 진위 여부는 전혀 중요치 않다. 자칭 피해자의 한 마디로 모든 게 결정난다. 


무고죄를 부추기는 JTBC의 일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무고죄 발생 건수는 약 32% 가량 증가했다. 이 가운데 성범죄 무고죄는 전체 사건의 40%에 이른다. 실제로 지난해 성폭력 범죄 피의자 중 20%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찢여죽여도 시원치 않을 더러운 성범죄자도 많지만, 합의에 의한 성관계도 본인이 기분이 나빠졌다고 신고하는 여성들이 있다. 갑자기 말을 바꾸면서 돈을 요구하고, 남자가 이를 거부하자 신고하는 경우도 많다. 진짜 피해자들을 기만하는 파렴치한 행위다.




# '믿을 수 없는 이야기'와 성범죄 피해자를 보는 폭력적 시선 



넷플릭스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드라마는 미국 워싱턴주에 사는 18세 소녀 마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마리는 어느날 새벽 홀로 사는 임대 아파트에서 복면을 쓴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마리의 불완전한 기억과 진술의 사소한 모순이 경찰을 혼란스럽게 한다. 마리 주변 사람들은 마리를 두고 "믿을 수 없는 애다. 과장을 많이 한다"고 한다. 마리가 여느 강간 피해자와 다르게 상처가 크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도 판단의 근거가 된다. 충격적인 일을 당한 사람의 반응은 제각기 다를 텐데도 말이다.  


경찰은 결국 마리의 진술을 허위로 판단하고 그녀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다. 강간 이후 심리상태가 불안했던 마리는 경찰이 압박하자 강간당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 진술을 하게 된다. 이후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미친 애' '정신 나간X'이라는 문자와 전화 폭탄이 쏟아진다. 그녀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간다.


드라마는 3년 후를 비춘다. 마리가 진술한 것과 유사한 수법의 성폭력 범죄가 인근 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다. 두 여형사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범인을 잡아낸다. 마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묵살하고 고소까지 한 경찰을 찾아가서 말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제게 사과하지 않았어요. 사과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더 잘하세요"


이 드라마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인터넷매체 퍼블리카의 저널리스트인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이 취재한 내용을 재구성했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뷰한 이들은 해당 보도로 2016년 언론상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퓰리쳐상(해설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드라마는 피해자를 존중하지 않는 경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끔찍한 강간의 기억에 대해 계속해서 되묻고, 묻고, 또 물어본다. 경찰과 병원, 상담소에서 계속 그 트라우마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경찰은 정신이 없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힐난하고, 피해자에 대한 주변사람의 비판을 사실로 받아들여 피해자에 대한 선입견을 바탕으로 수사를 한다. 수사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보단 피해자의 신상을 조사해 불쌍한 애, 관심받고 싶은 애로 규정짓는다. 살인이나 절도, 강도에 비해 강간이 별로 큰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현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아, 그러면 모순된 지점에 부딪친다.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피해자가 무고한 사람을 모함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짜 피해를 입은 것인지. 성범죄, 혹은 여성 상대 강력범죄가 터질때마다 일렁이는 해묵은 논란은 이 두개 영화의 지향점을 그대로 따라가며 남녀가 서로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곰탕집 성추행이 그랬다. A 씨는 2017년 11월 26일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여성 손님의 엉덩이를 움켜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 씨의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원심 징역 6개월보다는 약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처음부터 구체적이고 일관된 피해여성의 진술과는 다르게 A 씨의 진술엔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결국 A씨는 대법원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공개된 CCTV를 수백번 돌려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A씨와 여성만이 알 텐데, 스친것과 움쳐잡은 것은 분명 다를테다.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밖에는 없다. 이를 대법원이 인정해준 거다. 남녀 갈등이 한 차례 또 벌어졌다. 명확한 증거도 없으면서 무고한 남자를 몰아간다는 의견과 유일한 증거인 여성의 진술을 믿어야 한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곰탕집 성추행 CCTV


섣부른 일반화는 어려울 것이다. 미투 사태 이후로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여성에 대한 억압과 희롱의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계속 고쳐가야한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대학생 시절 나는 한 논술대회에서 상을 탔다. 시상식 이후 저명한 매체 기자 선배들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자리에는 한 여성 아나운서 지망생도 있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한 아저씨가 그녀에게 “말을 놓으라. 오빠라고 불러도 좋다”고 했다. 머뭇머뭇대자 “나도 나이(50대)에 비해 젊어보인다는 소리 좀 듣는다”고 했다. ‘손이 곱다’거나 ‘우리회사 아나운서보다 네가 더 예쁘다’는 혐오스러운 이야기를 무려 2시간여가량 늘어놨는데 그 자리에 있던 아재들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이 사람 유머가 늘었네”하고 한바탕 웃어댔다. 그 선배는 내게 어디에 사냐고 물었고, 나는 노원에 산다고 했다. 갑자기 그는 노원? 노원? 이라고 무언가를 찾는 듯 하더니 노원이라는 콘돔이 있었다고 했다. 자기도 몇 번 써봤단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아나운서 지망생에게 “너도 혹시 써봤니”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읽었다. 역겹고 짜증나지만 나이가 어리고, 취업준비생이라는 이유로 모멸을 참아야하는 게 분하고 서러워서 내가 다 울컥했다. 이런 사람들이 기자랍시고 밤에는 이렇게 놀다가 낮에는 TV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정의를 논하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게 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일찍 자리를 떴고 선배는 “남자애 데리고 뭘 하겠어”라며 귀가했다. 내생에 가장 참기 힘들었던 3시간이었다. 이런 역겨운 아저씨들이 참 많다. 굳이 언론계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그렇다고 해서 남성 전체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오독하는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 급진적 여성단체 등도 사회를 좀먹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남자든 여자든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기관이 철저히 수사하고 어쩌다 나오는 살인사건보다 매일같이 발생하는 성범죄, 젠더범죄의 중요성을 경찰 등이 인지해야 할 것 같다. 참 답이 없는 문제인데, 이런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싸우게 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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