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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20. 2020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문희상 아들 지역구 세습 논란에 부쳐


본디 글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써야 한다. 드라이하고 냉정한 글이 글쓴이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했던 감정을 충실하게 만들어준다. 근데 도저히 감정없이 쓸 수가 없다. 문희장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씨가 오는 총선에 출마한다. 아버지가 내리 6선을 했던 의정부갑 지역구 후보로 나선다. 문 의장은 "역사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아도 좋다. 나는 떳떳하고 당당하다. 자랑스럽다"고 했다.


석균씨도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습 논란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현직 국회의원 아들이라고 해서 공정한 당내 경선에 참여하는 것조차 막힌다면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 경기의정부갑 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석균씨는 "변호사 아버지 아들이 변호사가 됐다고, 의사 아들이 의사가 됐다고 해서 세습이라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평소 내가 정치하는 것을 만류했고, '정치적으로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도 했다. 이어 "선출직을 세습이라고 하는 건 공당과 지역주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제헌국회 이후 ‘부자 국회의원’은 37번, ‘부녀 국회의원’은 5번 탄생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아들이 아버지 지역구에서 출마한 전례는 거의 없다. 드물게 있어도 아버지 사망 이후 출마했다. 석균씨처럼 현역 의원이자 국회의장인 아버지의 배경을 등에 업고 출마한 사람은 전무하다시피했다. 사람에겐 '염치'란게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20년넘게 일궈놓은 텃밭에 아들이 나선다면 무조건 당선될 것이다. 모두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치를 본다.



석균씨도 이를 모를리 없다. 연일 "아빠찬스를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석균씨가 최근 펴낸 책 이름은 '그 집 아들'이었다. 논리적 모순이다. 석균씨는 지난 11일 의정부시 신한대학교에선 같은 이름으로 북콘서트도 열었다. 아버지의 후광효과를 노골적으로 노린 것이다.


석균씨는 의정부역 근처에 있는 대형서점인 '숭문당'의 대표다. 아버지인 문 의장은 1995년 숭문당을 창업했다. 석균씨의 정치 경력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안병용 의정부시장 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한 게 전부다. 그런 사람이 총선에 나온다는 것부터가 넌센스다. 아무리 젊은 정치, 세대 교체가 중요하다곤 해도 아버지가 정치 거물인 것 빼고 아무것도 믿거나 볼게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석균씨의 북콘서트에는 무려 3000여명이 몰렸다. 문 의장이 너무 막강해서 당내에서도 의장부갑에 나서려는 경쟁자가 없다. 석균씨가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무사히 당선될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선 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게 정의이고, 공정인가?


석균씨 사례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교회를 넘겨주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지만 정의와 공정이 필요한 현 시대에 대단히 부적절한 선례이며, 개인의 노오력은 결코 선천적으로 타고난 조건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확산시킬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음서제는 조선 시대 이후 명목상으론 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자리잡았다는 사실 말이다. 핏줄이 우선인 사회에 발전은 없다. 중세유럽처럼 귀족은 자손 대대로 귀족으로 살고, 개천용이 점점 사라지는 나라에 생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명문대 교수 자녀들이 미성년자임에도 논문에 공동저자로 올라가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 가고, 국회의원의 딸이 KT 공채 과정에서 혜택을 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영화 친구에서 선생이 학생에게 다그쳤던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건도 비슷한 경우였다. 남에게는 가혹하고 자신 혹은 자기편엔 한없이 관대하다. 우리나라 초엘리트들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굳이 불법의 영역만은 아니다. 기자 중에는 고관대작의 자녀가 많다. 교수나 기업 사장의 아들딸도 많이 봤다. 뭔가 부조리해 보였다. 비리와 부조리, 악법을 지적하고 고쳐야 될 언론이 아닌가. 인사담당자한테 관련 내용을 물어봤는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 "언론사도 회사고, 회사는 자선사업자가 아닙니다. 부모님이 잘나서 고관대작 친구들을 많이 뒀다면 기자인 아들딸이 취재원들에게 접근하기도 쉽겠지요"라고. 아마 모든 기업과 기관 등이 비슷한 논리를 내세우며 현대판 음서제를 묵인 혹은 방조하고 있을 거다.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한 우리 사회,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가졌어도 '내 새끼가 먼저'라는 사회 풍조가 수많은 젊은이를 좌절시키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졌을때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교육문제였다. 정유라가 받은 특혜를 보고 수많은 필부, 장삼이사들이 분노했다. 정유라는 이화여대 재학 중 제출한 리포트에 '해도 해도 안 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이라며 비속어를 사용했다. 또 2014년 자신의 SNS에 이렇게 남겼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고. 신이 점지하는 탄생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 찰나의 운명이 개인의 평생을 좌우하는 사회야말로 미개하고 저속한 사회다. 카스트제도가 존속되고 있는 인도를 보라. 그러니 피로 이어지는 특권과 특혜의 젖줄을 하루빨리 끊어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석균씨가 경선에서 떨어지거나, 후보 등록을 자진 철회했으면 한다. 기필코 선거에 나가야겠다면 아버지 후광을 넘어선 본인의 비전을 밝혀야 한다. 아마 이 비전도 아버지나 아버지 친구들이 만들어주겠지만..


+ 덧. 문석균씨가 지난 23일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잘 한 결정이다. 석균 씨는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미련없이 제 뜻을 접으려고 한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 또한 제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억울하기도 했을 터다. 평생을 문희상의 아들로 살아온 그는 앞으로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석균씨에게 좋은 약이 되었으면 한다. 아무리 해도 그가 정치계에서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 인간 문석균으로 살아가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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