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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바라보려면 우산부터 접어야 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트라우마성 기억 정리법

by 작가 전우형

세상에는 많은 '드림 킬러'들이 있다. 그중 가장 나쁜 사건은 내가 스스로에게 드림 킬러가 되는 일이다. '나는 멍청해, 실수투성이야,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이런 되뇜은 어떤 메시지를 가속시켜 불가능을 현실로 가져오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버린다.




행복이란 우리 내면에서 나오는 태도를 말한다.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경우는, 행복이 사실은 내면의 작용이라는 간단한 진리에 얼마나 들어맞는지를 알려주는 '나는 ~이다'라는 진술을 상상 속에 포함시킬 때다. 행복은 우리가 이루거나 얻은 것,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리라는 기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우리가 맡은 모든 일에 가져다줄 수 있는 내면의 믿음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행복이 바로 그 길이다.

- 웨인 다이어 '확신의 힘' 중에서 -


행복은 내면에 이미 존재한다. 많은 것을 가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높은 성취를 이루었거나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도달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타인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타인으로 말미암아 행복을 되찾을 수도 있지만 인간은 원래부터 고독한 존재다. 타인에 기대어 행복을 찾으려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관계의 균형이 무너진다. 결핍이 의존을 부르고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기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워서 매달리게 된다. 이런 관계에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불안과 불신, 집착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불행을 학습하기 쉽다. 스스로 행복을 선택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주머니 속에 행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꺼낼 생각조차 못했던 것뿐이다.


나는 여러분이 적어도 자신의 세상에서는 자신이 유일한 권위임을 느꼈으면 한다. 남을 해칠 의도가 없는 한, 자기의 세상을 완벽하게 만든다고 해서 다른 이의 세상을 망가뜨리지 않을까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라. 주변 사람들의 뭐라고 말하는지, 얼마나 사람들이 자기의 의심과 두려움과 한계로 여러분을 방해하려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러분은 자신의 세상에서 최고의 권위다. '나는' 내 세상의 완벽함이며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립한다.

- 세인트 저메인 '아이엠 담론' 중에서 -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왠지 광오하고 오만해 보인다. 특히 초라한 현재의 내 모습에 비추어볼 때 이런 생각은 현실성이 결여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 불가능한 바람을 붙들고 있으면 오히려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족이 극대화되고, 존재적 불편함이 닫아둔 문을 비집고 들어와 살갗을 파고드는 것처럼 쓰라리다.




현실감각은 분명 중요하다. 무턱대고 나에 대한 기준을 한껏 높여두는 사고방식은 완벽주의를 강화시키고 실패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남 탓을 일삼는 비뚤어진 인간을 양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능성에 대한 상상은 '사적 영역'이다. 현재 시점에서 바라봤을 때 터무니없어 보이는 목표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목표 설정은 개인의 자유이며, 누가 선을 그어줄 수 없는 영역이다. 어릴 때 우리는 무모해 보이는 꿈을 스스럼없이 정하곤 했다.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등급, 석차, 점수 등 수치화된 평가자료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게 된다. 사회적 기준과 타인의 평가에 기대어 꿈의 현실성을 판단하며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꿈의 높이를 낮춰간다.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에 족쇄를 채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벼룩은 2m 이상 뛸 수 있지만, 벼룩을 1m 높이의 상자에 가둬두면 절반도 안 되는 높이를 타율적 한계로 받아들이며 종래에는 상자가 없어져도 딱 그만큼까지밖에 뛰지 못한다고 한다.

괜찮아 사랑이야 6화 낙타 그림.jpg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등장했었던 사막의 낙타 그림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사막의 낙타 이야기도 유사한 메시지를 준다. "사막의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둔다고 해. 아침이 되면 밧줄을 풀어주지.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묶여있던 밤을 기억하기 때문이지." 이 대사는 트라우마로 인해 화장실 욕조에서만 잠들 수 있는 주인공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극 중 장치였지만, 인간 스스로 한계를 내면화하는 방식을 잘 설명해주기도 한다.


1. 나무에 묶인 낙타는 긴 밤을 서성이며 고통스러운 밤을 보낸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낙타는 자신이 묶여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낙타는 상황을 재해석한다. '나는 묶여있는 게 아냐. 내가 스스로 남아있는 것뿐이야.' 낙타는 스스로 도망가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기로 한다. 한계를 받아들인 낙타는 낮이 되고 나무에 묶이지 않아도 도망가지 않는다.


2. 도망치려 했던 낙타는 다시 붙잡혀 나무에 묶인 채 긴 밤을 보낸다. 고통스러운 밤을 경험한 낙타는 다시 그런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고통이 두려운 낙타는 더는 도망칠 생각을 못한다. 자유를 향한 도전을 포기해버린다. 낮이 되고 자신을 구속하던 밧줄이 사라져도 낙타는 그저 그 자리에 남는다.


기억의 깊이는 고통에 비례한다. 아프고 힘들었던 사건은 상처로 각인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깊이 파인 상처는 치유되는데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흉터도 크게 남는다. 어떤 사건이 만들어낸 정신적 흉터,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현재의 제약으로 연결되는 것이 '트라우마'다. 흔히 트라우마에 대해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떠올리지만, 특정한 신체적, 정신적 반응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트라우마성 기억들이 우리 삶에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큰 실수로 친구들에게 심하게 놀림을 받았던 아이는 깊은 수치심을 각인한다. 사람을 대하기 어려워지거나 인간관계를 좁게 가져가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가급적 사람을 덜 만나는 길로 다니기도 하고 멀리 아는 사람이 보이면 일부러 돌아가기도 한다. 직장을 구할 때도 가급적 사람보다는 기계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일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릴 적 부친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극도의 공포를 느꼈던 아이는 남자를 대하는 것을 더 어렵고 껄끄럽게 느끼기도 한다. 이 사람의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여성들에게 쏠린다. 그의 사회적 경험이나 공감능력은 제한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성 기억이 만들어내는 일견 하기에 사소해 보이는 회피성 제약들은 삶의 방향을 한쪽으로 비틀기도 하고 자아실현의 한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향적 사고와 비합리적 신념, 선택의 제약과 꿈의 한계를 설정한 채 살아간다. 심각한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이다.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없기 때문에 해결을 위한 노력조차 하지 못하고, 병에 대한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에 치료받을 시기를 놓쳐버린다. 오랜 시간 굳어버린 사고방식은 말기 췌장암과 같다. 어찌할 방법도 없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상황은 불행의 다른 이름이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때때로 극한 상황은 어떤 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선택을 내린 것은 '나'지만 가만히 필름을 되돌려보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배경에 반드시 존재한다. 트라우마성 기억을 만들어낸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밤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그렇게 혼자 두지 않았다면, 하필 그때 그곳으로 지나가지 않았다면,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달려 나가기 전에 주위를 한번 살폈다면....' 어떤 선택은 뼈아픈 사건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선택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당시의 자신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런 과정이 다시금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트라우마성 기억을 넘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다. 잘못은 누구에게나 있고 지분은 매번 다르다. 힘든 기억을 극복하려면 결국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다. 두려워 회피할수록 그림자는 커지고 당해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에 포기하게 된다. 아프고 힘든 기억도 시간의 흐름에 깎여나간다. 시간이 흐르고 기억을 들여다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차분히 복기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커다란 사건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필수적으로 자책과 후회가 남는다. 이 두 가지는 오랜 시간 당시의 사건에 붙잡아두는 악질적인 생각과 감정이다. 자책에서 벗어나 책임의 균형을 찾을 때 굳어있던 발걸음을 떼고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우산을 쓴 채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이미 비는 그친 지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우산을 쓰고 있었다. 비에 젖는 것이 두려워 언제 비가 올지 몰라 우산을 쓰고 다녔던 것이다. 꿈을 바라보려면 먼저 우산을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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