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50년을 함께할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상처는 사람에게 받는다. 일에 치여 힘든 것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깊숙하고 아프기 때문이다. 귀하게 여기다가도 사소한 다툼에 감정이 돌아서고 화가 나는 것은 상대에게 걸었던 기대 때문이다. 기대 없이는 관계도 성립되지 않지만, 과도한 기대는 실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줄 것인가는 내가 상대를 어떤 사람으로 대하는가에 달렸다. 내가 상대를 바라보는 이미지는 말의 장벽을 뚫고 대기를 통해 전달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런 느낌이 종종 오해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본능과 직감은 자신이 방어해야 할 상대를 골라내는데 탁월하다.
기다림과 조급함은 불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불안이 큰 사람은 관계에서도 의심이 많다. 기다렸던 만큼 불안에 떠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 스트레스는 상대를 괴롭히거나 혹은 자신의 속을 태운다. 약속시간에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을 때 불안이 큰 사람은 상대방이 약속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거나 약속이 어그러질 경우를 상상하고 걱정한다. 불안이 큰 사람에게는 진행상황을 잘 알려주는 것이 좋다.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다면 미리 연락을 주고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인 에티켓이지만 습관화되지 않은 사람은 의외로 이 사소한 노력을 힘들어한다. 불안이 작은 사람은 상대가 조금 늦더라도 어련히 오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약속시간에 늦는 하나의 상황을 자신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서 일반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약속시간에 늦을 때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다.
반복적인 실수는 상대방의 '신뢰'문제로 연결된다. 실수는 가급적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불성실한 사람이다. 핑계는 실수에서 교훈을 제거시키는 수단이다. 최소한의 자기 방어와 핑계가 다른 이유는, 핑계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스스로 상황을 왜곡해서 바라볼 것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핑계를 찾기 시작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 스스로 인정하지 못할 때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반성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반성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가장 효과가 좋다. 다른 사람이 개입하는 순간 방어벽이 생기고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해져서 해서는 안될 말도 하게 된다. 말실수는 급박한 순간에 더욱 두드러진다. 아무 말이나 내뱉다 보면 후회할 일도 늘어난다.
말은 정제해서 내뱉는 것이 상책이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관계를 해치는 가장 흔한 실수가 말실수다. 말하기 전에 여러 번 생각해보는 여유를 가지면 좋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말실수도 줄어든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말을 급히 내뱉을 필요가 없고 말실수도 줄어든다.
말에는 가시가 있어서 누군가를 할퀴기 쉽다. 가시 돋친 말은 감정이 누적되어 있을 때 발산되기 쉽다. 감정이 극에 달한 경우에는 말을 아끼거나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대화가 이어지기는 힘들다. 날카로운 감정이 말에 묻어 나올 때 상대는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게 되고, 피해의식은 상대에 대한 악감정을 키운다. 인간은 손해에 민감하다. 내가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방의 모든 것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같은 말도 곱게 들리지 않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미워 보인다. 미운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은 사람은 없다. 관계를 보다 발전적으로 가져가려면 단어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상대의 스위치가 무엇인지 탐색할 필요가 있다. 역린은 가급적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관계를 테스트하는 용도로 상대방의 민감한 부분을 은근슬쩍 건드리는 경우가 있다. 우리 사이 정도면 이런 것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은 내가 침범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내어줄 부분이다. 민감한 부분은 아프다. 피부에 이상감각이 생긴 것처럼 스치기만 해도 쓰라리고 고통스럽다. 그런 부분을 동의 없이 건드리는 행위가 환영받을 이유는 없다. 도움을 요청할 때 어루만져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만한 관계는 서로의 영역을 보존해줄 때 성립된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줄 때 의외의 힘이 솟아난다.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 인정 욕구를 채워주고 외로움을 덜어준다. 작은 호의와 배려가 인간관계의 윤활유가 된다. 조화로운 관계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관계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구석이 있다. 본능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채워줄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사랑에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기능이 있다. 상대방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해도 어떤 이끌림에 의해 가까워지는 경우가 있다. 무장해제는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 운명적으로 찾아오는 사랑은 존재한다. 비교하고 따지지 않아도 사람에게는 각자의 짝이 존재한다. 운명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 드는 상대는 흔치 않다.
관계가 유지되려면 사소한 행복의 장치들을 삶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주고받음에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관계가, 주고받는 행위들에 의해 더 깊어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받았는가'에 대한 민감도를 떨어트리는 것이다. 주는 행위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주는 행위를 흔히 내가 상대에게 베푸는 호의로 생각하기 쉽지만, 주는 행위 역시 자기만족적인 성격이 있다. 내가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 자기효용감은 더 커진다. 그러니 상대가 즉각적인 반응이나 보상을 하지 않더라도 조급할 필요가 없다. 내가 준 것에 민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돌려받았는가에 대한 민감도 역시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조급함은 관계를 영글어가는 데 있어 독약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를 위해 5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50년간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