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허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1%의 충족감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은 외롭고 또 괴롭다. 허기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를 먹는다. 그것은 달콤한 초콜릿일 수도, 새콤한 오렌지일 수도 있다. 배고픔과 허전함은 느낌이 유사하기에 먹는 행위를 통해 정서적 허기를 달래 보려고 한다. 하지만 곧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더부룩해진 속사정으로 불쾌감만 늘어날 뿐이다. '스트레스'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발생한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내야만 할 때, 버티고 짜내어야만 할 때 해방에 대한 욕구와 책임감, 의무감 등이 충돌하고 목 뒤쪽이 뻐근해지고 편두통이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인정 욕구는 사랑과 관련되고,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는 것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인정 욕구를 부모의 사랑으로 충족시키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어른에게는 경제적 독립뿐 아니라 정서적 독립도 대단히 중요하다. 정서적 독립은 '가족'이라는 익숙하고 안전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자신에 대한 실망은 자책의 주요 원인이다. 노력의 가치를 과대평가할 때 실패는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 된다. 성공했을 때 내가 열심히 노력한 덕이 되는 반면, 실패했을 경우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내 탓이 된다. 반성과 책망은 다르다. 나의 문제를 스스럼없이 돌아볼 수 있는 것이 반성이라면, 책망은 자신에 대한 원망에 집중하는 것이다. 원망에 빠지다 보면 오히려 원인을 볼 수 없게 된다.
기대감의 크기에 비례해 배신감이 과거의 순간에 자신을 묶어두는 시간은 길어진다. 사람에게 배신당한 느낌은 지극히 고통스럽다. 상대에 대한 실망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실망도 느낀다. 상대에게 부정당했다는 느낌은 인정 욕구를, 충족되지 않은 정서적 허기를 느끼게 한다. 버림받은 것이 아닌데,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 상대방이 자신이 특히 믿고 따랐던 사람이라면, 한 번의 배신은 인간 존재 본연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관계 맺음에서 경계심이 강화되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은 배신의 상처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나쁜 일은 가급적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원치 않아도 의외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조심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저 운이 나빠서일 수도 있다. 내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더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도 있다. 이런 감정은 상대의 배신에 대한 자책을 이끌어낸다. 배신한 상대가 나쁜 것인데, 배신당한 나에게 실망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이런 감정을 느끼기는 매우 쉽다.
어차피 타인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자기 확신이 훼손되었을 때, 누군가의 배신은 단지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그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연결된다. 그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정도로 여기자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종종 이런 일들은 반복되고, 같은 종류의 배신을 또 당했을 때 더 큰 실망감과 함께 비합리적 신념이 뿌리내린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 일단 사람은 의심하고 봐야 돼.' 하지만 애초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다만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 이런 불일치로 관계에서 상처 받는 일은 늘 생긴다.
나쁜 기억은 즐거운 기억보다 강렬한 자극을 남기고, 자극의 여파는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비틀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 커다란 감정의 변화가 요동칠 때, 뇌는 그 순간을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사진 찍듯 상황을 명료하게 기억하려 애쓴다. 배신감은 매우 격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며 인간관계를 흐트러트릴 정도로 강력하다. 그 순간에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꾹 참고 누르지만, 그런 일들을 경험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은 없다.
철수는 실연의 고통을 잊으려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리며, 잠깐의 틈이라도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머릿속이 무언가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잠깐의 공백을 틈타 당시의 기억이 감정과 함께 솟구치기 때문이다. 영희는 매일 저녁 와인을 마시지 않고는 잠들지 못한다. 알코올 없이 잠들었다가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꿈속으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관계의 상처는 맨 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을 흔들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만나서 수다라도 떨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영철은 차라리 나은 편이다. 순희는 이런 수치스러운 사건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어 혼자 끙끙 앓는다.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애써 태연함을 가장한다. 하지만 주위 사람은 그가 결코 평소와 같지 않다는 것을 모두 느낀다.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은 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 상실감은 병이 될 정도로 강력하다. 간절히 생각하는 사람을 보지 못할 때 마음의 병이 생긴다. 현실은 이별통보를 마쳤지만, 마음속에는 그의 빈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너무 오랜 시간 그가 차지해왔기에 다른 무언가로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 주소가 남아 있다. 이미 떠난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내가 더 꼴사납게 느껴지지만 그런 나를 어찌할 수 없어 화가 나고 지친다. 그와의 '관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흔적들이 인정 욕구를 툭툭 건드린다. 마치 내가 버림받은 것 같고, 내 존재를 부정당한 것 같은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들이 마음에 아로새겨진다. 새로운 관계로 인정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불안과 강박이 헐벗은 내면을 흔들기 시작한다. 마음은 물귀신이어서 혼자만 힘든 것을 참지 못한다. 몸과 마음의 상태를 일치시키기 무의식이 작동해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욕구를 떨어트린다. 불면증이 찾아오고, 밥맛이 없어지며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진다. 현재의 마음 상태와 예쁘고 발랄한 표정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을 꾸미지 않고 퀭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면 지금 상황에 대한 괴리감이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일상을 유지하던 패턴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은 곧 병이 난다. 마음의 물귀신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몸과 마음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정서적 허기를 음식으로 채우려는 상황과 허기진 마음이 식욕을 떨어트리는 상황은 서로 같은 종류다. 마음은 인정과 사랑을 먹고 산다. 관계에서 떨어져 나갈 때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고, 마음은 한동안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 믿고 의지하고 기대던 사람으로부터 정서적 허기를 채우고 있던 '관성' 때문이다.
매일 담배를 이삼십 개비씩 피우던 흡연자가 갑자기 금연을 결심했을 때,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지고 세상이 불만으로 가득 차며 강박적으로 단것을 찾게 된다. 금연의 고통은 너무 심해 혼자 성공하는 이가 드물 정도다. 몸이 니코틴에 적응해버렸기에 생겨나는 금단현상이다. 관계가 깊어질 때 우리는 그 관계에 '적응'해버린다. 당연히, 습관처럼, 숨 쉬듯 누군가를 찾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상대방과 함께하던 순간들로 채운다. 혼자인 시간이 의미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상대방을 만날 순간을 기다리느라 애가 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기도 한다. 기억의 대부분에 두 사람이 함께였다면, 그런 이별은 혼자인 순간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이다. 사랑의 독약을 마신 사람은 홀로 숨 쉬는 법을 잃어버린다. 사랑은 의존이고 적응이며 두려움이다.
살아가는 한 사람은 이별을 한다. 떠나감은 필연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별의 고통에 적응해야만 한다. 이별의 고통은 너무나 커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도록 현재 위치에 발걸음을 묶어버린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용기보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클 때 애써 찾아온 인연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 선택의 순간에 놓이면 상대방과 내가 맞지 않는 이유들이 무수히 생겨난다. 사랑에 냉소적이 되고, 그런 한심한 감정 따윈 한때의 열병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관계에는 언제나 사랑이 존재한다. 사람이 사람을 원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영혼에는 누구에게나 빈자리가 있으며, 그 주소는 새로운 사랑을 기다린다. 마음의 곳간에 양식을 채워줄 존재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름다워진다.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솔직함을 발산할 용기가 생긴다. 스스로도 몰랐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사랑이 가진 자력이 내면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관계는 사랑에서 시작되어 사랑으로 끝난다. 시작과 끝은 한쌍이어서 만남 뒤에는 반드시 이별이 찾아온다. 영원할 것 같던 관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별의 상처가 두려워 관계를 꺼려해서는 안된다.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켜준다. 이별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은 단단해진다. 관계의 성장통으로 말미암은 마음의 상처도 언젠가는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아난다. 힘들었던 순간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마는 것처럼, 시간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망각의 선물을 받은 인간은 대부분의 순간을 잊어버리지만, 추억들이 모여 그동안의 삶을 기억해준다.
관계는 삶을 풍성하게 한다. 겨울의 추위에 맞서려면 정서적 온기가 더욱 필요하다. 마음의 온기가 남아있을 때 몸의 한기를 이겨낼 힘이 생긴다. 마음이 힘든 순간에 몸을 챙겨줄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다. 마음이 힘들면 자신을 살필 여력도 부족해진다. 몸과 마음을 동화시키려는 무의식이 몸의 활기를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몸살기로 홀쭉해진 얼굴을 볼 때 마음의 고통이 부자연스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밥을 떠먹여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다.
의지는 종종 우리를 배신한다. 의지를 맹신하지 않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의 균형이다. 사소한 일에도 불쑥 화가 치미는 이유는 사실 몸의 컨디션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로도 예민한 자신을 탓하거나 인내심이 부족한 의지를 탓할 것이 아니라, 떨어진 몸의 컨디션을 정상화시켜주어야 한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다. 이별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따뜻한 밥이 우선이다. 밥만 잘 먹어도 어지간한 상처는 낫는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이렇게 힘든데도 여전히 배는 고픈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자기 사랑의 태도다. 이별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겨낼 작은 습관은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역경을 이겨낼 힘은 기본에 충실할 때 생겨난다.